성덕. 성공한 덕후란 뜻이다. 언니는 내가 조카를 아이돌 팬질하듯 대하는 걸 보고 이 별명을 붙여주었다. 열광하듯 사랑하는 스타를 가까이에서 보고 만질 수 있는 기쁨, 그 감개무량함이란. 연우가 태어나기 전까지 나는 그렇게 진지하게 조카덕질을 했다.
일주일 동안 조카의 모습이 담긴 영상 수십 개를 편집해 7분짜리 돌잔치 영상을 직접 만들었다. 자동차와 고양이를 좋아하는 조카를 위해 세상에 하나뿐인 그림책도 직접 만들어 선물했다. 언니가 조카의 어린 시절을 추억하면 ‘아 그때 줄무늬 티셔츠 입고 아이스크림 처음 먹은 날?’ ‘아니면 노란색 상하복 입고 카페 가서 걸음마 연습한 날인가?’ 하고 한술 더 떠서 대답했다. 그때마다 언니와 형부는 소름 돋아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연우가 태어나며 내 인생에 두 번째 아이돌이 생겼다. 가끔 보는 조카처럼 열광하는 덕질은 불가능했다. 하루 종일 붙어 있는 연우는 무대 뒤까지 다 보여주는 스타 같았다. 그만큼 신비로움은 사라졌지만, 더 깊고 친밀한 유대감이 생겼다.
나의 학창 시절엔 아이돌 1세대가 유행했었다. 대형 기획사에서 나온 양자 구도의 아이돌과 그 팬덤이 어마어마했던 기억이 난다. 그중에도 인상 깊었던 것이 새드파(Sad波**)**라는 ****팬덤 문화다. 그들이 내세운 피켓 문구가 ‘너의 기쁨 뒤에 가려진 눈물까지 사랑해’였다. 중학생이던 나는 그 뜻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화려하고 빛나는 것을 동경하던 나와는 달리, 무대 뒤의 덜 꾸며진 인간 자체를 사랑한 그들이 참 어른스러워 보였다.
학창 시절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사랑이라는 감정이 단순히 밝은 빛만을 뿜어내는 것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아이를 키우며 사랑의 다양한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그 예로, 연우에 대한 사랑이 커지면 커질수록 불안이 함께 커졌다. 어느 날 갑자기 연우를 잃게 될까 두려워졌다. 아니면 반대로 ‘내가 혹은 남편이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에 사로잡혔다. 뉴스에서는 젊은 가장의, 산모의, 어린아이들의 안타까운 소식이 매일같이 들려왔다. 죽음은 내가 겪지 않았을 뿐, 지금도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뱃속에 있는 아기의 심장 소리를 들으려면 한 달을 꼬박 기다려야 했다. 병원에 정기검진 하러 갈 때만 짧게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활발하던 태동이 느껴지지 않으면 그때부터 걱정이 시작되었다. 아기의 작은 몸부림을 찾기 위해 동그란 배를 하루에도 몇 번씩 더듬었다. 그때 맘카페를 통해 뱃속에 있는 태아의 심장소리를 들려주는 휴대용 기계가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의료기기로 분류되어 되팔기도 어려운 그 기기를 살까 말까 고민하는 글들이 하루에도 몇 개씩 올라왔다. 나와 같은 불안에 사로잡힌 임산부들이 한둘이 아니었음을 실감했다.
불안은 아이가 태어나서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한동안 분리수면을 하면서도 매 시간마다 연우방에 들어가 잠든 아기의 코 밑에 손가락을 갖다 대었다. 아이가 통잠을 자는 것이 곧 엄마의 통잠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이제 마음을 조금 놓아볼까 싶을 때쯤이면 연우는 긴장의 끈을 더 바짝 당겼다. 손에 감아준 반창고를 삼키고 켁켁 거리며 우리의 심장을 쥐락펴락 해대기도 했다. 결국 119에 전화해 요란을 떨다가, 다음 날 똥 속에 파묻힌 반창고를 기쁜 마음으로 발견했다. 어떤 날은 키즈카페에서 붙잡을 새도 없이 뛰어놀던 연우가 갑자기 다리를 절뚝거렸다. 볼풀장에서 빠져나온 직후에 몇 발자국 걸어보지도 못하고 금세 주저앉았다. 발목을 삐었나 싶어서 이곳저곳을 눌러보고, 관절을 돌려보아도 아픈 기색이 없었다. 영문을 모르니 더 겁이 났다. 연우를 안아 들고 집으로 오면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빠르게 뛰는 심장만큼이나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사십 분 만에 다시 걷기는 했지만 다음날 아침 눈을 뜬 연우는 또다시 주저앉았다. 아이는 체념한 듯 걷는 걸 포기하고 바닥을 기어 다녔다. 아이를 보며 온갖 절망스러운 생각이 다 들었다. 병원에서는 ‘일과성활액막염’이 의심된다고 했다. 이름도 어렵다. 고열 후 몸속에 남은 염증 때문에 일시적으로 걷지 못하는 흔한 증상이라고. 다행이었지만, 짧은 하루 동안 ‘억장이 무너진다’는 말이 어떤 건지 뼛속까지 배웠다.
아이에 대한 사랑은 그저 한없이 밝고 명랑한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아이를 품고 살아보니, 해맑고 천진난만한 모습 뒤에는 부모의 불안과 두려움, 죽음까지도 함께 있다는 것을 느낀다.
소중한 만큼 오래도록 잃고 싶지 않다. 지키려는 마음이 강해질수록 불안이 높아진다. 하지만 이제는 걱정하는 것이 부질없음을 조금은 알겠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감사하며, 온 마음을 다해 흠뻑 즐기는 것만이 뒤에 숨겨진 불안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