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먹다 남긴 퓨레와 맛밤을 맛있게 주워 먹다가 문득 입가에 맴도는 단어가 있었다.
짬타이거. 짬밥 먹고 자란 고양이를 부르는 군대식 은어다.
먹성 좋은 아기를 둔 덕에 ‘짬’ 구경은 못해봤다. 아이가 볼우물이 생기도록 힘차게 젖병을 빠는 동안 분유는 쭉쭉 줄어들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연우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다 연우 거야. 천천히 좀 먹어.’였다. 열이 40도가 넘어도 이유식 한 그릇은 늘 맛있게 뚝딱 먹던 아기. 바나나 하나를 다 먹고도, 다섯 살 사촌형이 남긴 것 마저 탐내던 연우가 요 며칠 전부터 밥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어린이집에서 물컹한 가지도 잘 먹는다며 칭찬받은 게 불과 며칠 전이었는데. 입 안에 질감이라는 게 들어오면 먼지라도 먹은 것처럼 혀를 넣었다 뺐다 하며 뱉는다. 좋아하던 토마토소스도, 크림소스도 마찬가지다. 밥은 국에 말아서만 먹고 반찬은 전부 뱉는다. 이번엔 다를까 싶어 몇 번이나 시도해 보지만 역시나 꽝이다. 물기 없는 소스와 굵어진 밥알을 보니 있던 입맛도 뚝 떨어진다.
‘이 아까운 걸...’ 아기가 먹는 거라 프랑스산 무염버터에 한우를 넣고 볶은 엄마표 소스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건 못 버리겠다. 퇴근해서 귀찮음을 무릅쓰고 만든 하루의 수고가 담긴 음식이다. 아이가 고구마를 쥐고 있는 동안 나는 아이가 남긴 밥을 먹는다. 이 맛있는 걸, 왜 싫다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연우가 요즘 먹는 것에 흥미를 잃은 듯하다. 예전에는 엄마가 뭘 먹고 있으면 자기도 달라고 울더니 요즘은 나 혼자 먹고 있어도 조용하다. 덕분에 나도 먹는 음식이 조금 달라졌다. 예전에는 연우가 자는 동안 초코파이 아니면 우유에 말아먹는 시리얼이 하루 한 끼였다. 그런데 요즘은 회사에서 점심도 챙겨 먹고 집에 와선 연우의 짬까지 배부르게 먹는다. 자기 전에 연우가 치즈를 먹으면 나도 무릎을 위해 한 장, 우유를 마시면 허리를 위해 나도 사이좋게 한 잔.
바나나맛 단지 우유를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 한 번에 다 마셔본 적이 없다. 밥통이 작은 집안에서 태어나 온 가족이 모여도 치킨 한 마리를 다 먹지 못했다. 시험기간 땐 먹는 것도 귀찮아 삼키기만 하면 되는 알약 같은 식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먹는 것에 관심 없는 만큼 몸무게도 정직했다. 몸무게 앞자리는 고등학교 때도, 회사를 다닐 때도 4였다. 대학교 때 친구들은 나를 종이인형이라 불렀다. 변비 때문에 힘들다 하면 그 납작한 배에 뭐가 있겠냐며 웃었다.
그 종이인형이 연우를 낳기 전날 밤, 처음으로 ‘60.0‘이라는 숫자를 마주했다. 그리고 임신기간 중 쪘던 살은 딱 2킬로그램을 남겨두고 출산 후 조리원에서 다 빠졌다. 나머지쯤이야 아기를 키우다 보면 자연스레 빠질 줄 알았다. 하지만 몸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고작 몇 킬로그램 차이인데 이제는 내가 봐도 제법 튼실해 보인다. 그야말로 살찐 고양이다.
어릴 때 누군가 싫어하는 음식을 물으면 ‘밥’이라 했다. 진짜 밥보다 ‘고래밥’을 더 좋아했다. 돈가스가 나오면 샐러드와 밥은 털끝 하나 건드리지도 않아서, 다 먹고 나면 고기 자리만 동그랗게 비었다. 지난 평생 동안 덜 먹고 지낸 밥이 빚처럼 몰려오는 중이다. 밥을 자주 짓다 보니 밥처럼 맛난 것도 없다.
요 며칠 안 먹은 연우 밥을 먹고 벌크업 됐을 리 없다. 아기를 낳으면 뼈가 벌어져 체형이 바뀐다고 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체질도 바뀐단다. 아기만큼 엄마의 수면 패턴도, 식사 패턴도 바뀌니 그럴 수밖에.
엄마가 되면, 그렇게 짬타이거가 된다.
이 글을 읽은 남편의 한 마디,
‘우리 집 진짜 짬타이거는 나인데?’
그러고 보니 내가 먹고 남긴 것들은 다시 남편의 뱃속에 꾸깃꾸깃 들어가고 있다는 웃픈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