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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loura Apr 22. 2021

가스 라이팅이 얼마나 무섭냐면요.


가스 라이팅.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




최근 배우 서예지의 조종설 관련해서 가스 라이팅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들려온다. 다 큰 성인이 멍청하게 그걸 당하냐며 욕을 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그게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어떻게 아느냐고? 나도 당해봤으니까. 한때는 고도의 심리전에 능하다고만 여겼던 사람이 조금씩 나를 조종하고 숨통을 조여왔지만 그 사람에게 벗어나려고 할 땐 이미 늦었다. 벗어날 수 없다는 무기력이 나를 더 무겁게 짓누르기 때문이다.


명절이면 회사에선 유과, 참기름과 같은 것들을 명절 선물로 주곤 했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몇몇은 한라봉을 받았다. 다른 몇몇은 사과를, 그리고 나머지는 유과만 받았다. 사장이 특별히 신경 써서 내려주신 등급별 하사품이다. 받은 사람들은 민망해하기도 미안해하기도 했고 못 받은 사람들은 치사하게 먹을 걸로 차별하느냐며 기분 나빠했다. 회사는 사장의 사랑을 받는 자와 못 받는 자가 구분되었고 사랑받는 자들도 더 큰 사랑을 받기 위한 고군분투가 시작되었다.


정치적 라인은 질색이던 나 조차도 조금씩 세뇌되었다. 사장이 매일같이 다정한 격려를 건네더니 어느 날은 눈길도 주지 않고 내 옆사람만 입이 마르게 칭찬을 했다.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괜히 내가 잘못한 게 있는지 신경이 쓰였다. 유치하다 생각하면서도 그런 상황에 놓이면 초연해질 수가 없었다.


사무실 직원들이 다 같이 모여 과메기를 한쌈씩 하고 있을 때 과메기를 못 먹는 직원에게 한 손으로 양 볼을 짓누른 채 억지로 먹이는 사장의 모습을 보며 소름이 돋았다. 그러면서도 어느 날은 나를 불러 혼자서만 먹으라며 인자한 할아버지 마냥 마지막 남은 단팥빵을 손에 몰래 쥐어주었다. 사장은 호의를 빌미로 나를 통제하려 들었다. 나는 너를 위해 이렇게 진심을 보여주는데 너는 고작 이만큼의 충성심이냐며 섭섭해했다. 왠지 모르게 죄인이 된 것 같은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 그 시절에 쓴 일기를 보고 경악했다. 부당한 대우가 아니라 오히려 회사의 관심과 지원을 받고 있으며, 배부른 상황이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잘 버티자는 다짐글이 쓰여 있었다.


뭔가 한참 잘못되었다는 걸 이제야 깨달은걸 보면 가스 라이팅이 이렇게나 무섭다.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는 가스 라이팅 하는 사람이 자주 하는 말.


1. '다 너를 위해서야.' 비슷한 말로는 '나 좋으려고 하는 게 아니잖아?' '나만큼 너를 생각해주는 사람은 없다.'가 있다.

2. '맞아, 아니야?' '좋아, 안 좋아?' '할 거야, 안 할 거야?'와 같은 이분법식 대답을 강요한다.

유치원생이 와도 할 수 있는 수준의 대답을 강요하며 그걸 내 생각이라고 세뇌시킨다.

3. '너만 알고 있어.' '너한테만 하는 말이야.' 혹은 둘만의 비밀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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