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여름 하면 떠오르는 것은 지는 꽃, 석양, 시원과 섭섭이다. 여름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시원과 섭섭 중 섭섭의 비중이 더 크다. 어떤 단어를 제대로 마주하고자 할 때는 익히 알고 있던 단어라고 해도 꼭 다시 한번 사전을 열어 살펴본다. ‘늦여름: 늦은 여름’ 한자로는 ‘만하’ 그리고 영어로는 late summer 혹은 the last part of summer. 그렇다면, 늦여름은 여름의 마지막 조각. 마음 가는 대로 이름을 붙여본다. 여름의 마지막 조각은 어떤 모습일까.
늦여름과 함께 초여름을 떠올린다. 여린 잎이 푸르게 변하는 계절. 무엇이든 살아날 것만 같은 계절. 어쩌면 계절은 네 조각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여름 안에도 초여름, 한여름, 늦여름이 있듯 말이다. 모든 것이 용솟음치던 열기가 사그라든 여름의 끝자락. 해바라기도 능소화도 시선을 떨군다. 활짝 피어있는 꽃보다 고개를 숙여 땅을 바라보는 꽃의 모습이 좋다. 시드는 듯 보이지만, 고요히 다음 계절을 맞이하는 모습. 또 만날 수 있다는 희망.
늦여름은 ‘온유’와 닮아있다. 가장 푸르던, 뜨겁던 순간을 내려놓고 다가올 가을을 겸손히 기다리는 것. 꼿꼿하게 서 있으려 하지 않는 것. 지는 꽃의 아름다움에는 온유의 향기가 베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