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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말초 Jan 22. 2024

몽당연필 모양 타임머신

재주넘기 두 번째 주제: 아무튼 노래

달이 너무 빨리 핼쑥해지고, 또 금방 차오른다. 어떤 노래가 한순간에 좋아지고 또 금세 질린다. 좋아서 아껴 듣고 있어요 언젠가 들었던 이 문장은 오른손잡이가 왼손으로 쓰는 글씨처럼 어색하다. 그런 거 잘 못한다. 소중해서 아껴두는 마음 같은 거. 지금 듣고 당장 빠져야 한다. 적어도 음악에서만큼은 그렇다. 아끼지 않은 만큼 빨리 닳는다. 뾰족하고 반짝거리는 연필 끝이 뭉툭해지는 모습처럼 음악은 점점 또렷한 잔상을 남기지 못한다. 뭉툭해진 연필은 깎을 수 있지만, 뭉툭해진 음악은 재생목록 아래로 내려간다. 그 위에 새로운 음악이 쌓인다. 새로운 시간이 쌓인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은 타임머신을 만들 줄 안다. 크리스토퍼 놀란처럼 거창한 상상력과 막대한 자본을 들이지 않고도 가능하다. 노래가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어떤 노래를 유심히 반복해서 들으며 한 시절을 보낸다면, 그 시간과 뗄 수 없는 BGM으로 흐르게 한다면, 노래는 그 자체로 타임머신이 된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시간과 집중력, 그리고 세월이다. (아무튼 노래, 이슬아)


책에서 마주친 문장 덕에, 졸지에 타임머신 부자가 됐다. 어림잡아 100개는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아낄 줄 모르는 마음은 ‘어떤 노래를 유심히 반복해서 듣는’ 타임머신 제조법에 유용하다. ‘가을방학-첫사랑’ 타임머신은 혼자 새벽길을 걷던 열아홉 말초에게로, ‘검정치마-에브리띵’ 타임머신은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 스물 말초에게로, ‘곽진언-자랑’ 타임머신은 문수와 손잡던 스물둘의 말초에게로, ‘잔나비-여름가을겨울봄’ 타임머신은 분당에서 방방 뛰던 스물셋 말초에게로 데려간다.


스물넷 끝자락의 말초가 만드는 타임머신 이야기를 시작해야겠다. 바다 사람이 바다 없는 곳에 혼자, 오래 있는 동안 들은 노래가 너무 많다. 요즘은 차세대의 노래를 아끼지 않는다. 뭉툭해지면 깎고 또 깎아 몽당연필이 될 때까지 깎아먹고 있다. 이들의 노래 중 나사렛이라는 노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난 한 번도 당신 믿은 적은 없지만, 교회 앞을 지날 땐 아랫배가 저려.


후렴구에는 한 번도 믿은 적 없다는 예수께 용서를 구한다. 믿는 마음과 믿지 않는 마음을 구분할 수 있는가. 믿은 적 없는 이에게도 용서를 구할 수 있는가. 사실은 많이 믿고 있다는 뜻인가. 잘 모르겠지만, 모든 사람이 누군가에게 용서를 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애틋해진다. 찬양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노래는 이미 찬양이고 기도일 때가 많다.


많이 읽으면 쓰게 된다. 많이 들으면 부르게 된다. 아끼지 않는 마음으로 쓰고 부르다 보면 기도하게 된다. 기도하다 보면 살게 된다. 그러다가 어떤 날은 너무 뭉툭하게 산다. 질리지 않는 노래가 있을까? 질리지 않는 삶이 있을까? 그저 다시 연필깎이를 돌린다. 오랜만에 재생목록 맨 아래에 있는 음악을 누른다.



(번외 편)

이번 글모가 '노래'에 관한 내용이니만큼 열음과 나는 글모 후 서로의 플리를 공유했다. 전부가 아니라, 가장 위와 아래 목록만- 그러니깐 아득한 시간과 현재의 시간을 대조해 봤다.


이 사진은 내가 보낸 가장 위의 재생목록. 몽당연필이 되어가고 있는 차세대의 음악과 이랑의 음악이 있다. 이랑 님은 열아홉 살 때 미쓰라의 야간개장이라는 라디오를 듣다가 알게 된 가수다. 지난 글모 주제인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을 쓰다가 '슬프게 화가 난다'라는 워딩이 떠올라서 다시 듣다가 추가했다. '삶과 잠과 언니와 나'는 먼저 세상을 떠난 언니에게 보내는 곡이다. 슬프고 아름답다.


언니가 쓰려했을 일기와 주려고 했을 다음 생일 선물이, 추려했던 춤과 들으려 했던 음악과 읽으려던 책이 궁금하다고. 그렇게 말한다. 아직은 잘 모르는 그 마음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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