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감았다 뜨면 또 벌써, 생일 촛불 앞에 있다. 촛불을 불고 잠시 눈을 감을 때 흐르는 고요. 행복한 고요가 우리 사이에 몇 번이나 채워졌다. 이제는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다시 그 고요를 마주할 즈음 주고받은 선물을 생각한다. 달력, 필통, 파우치, 책...... 왠지 이번에는 다른 것을 주고 싶어 진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울이 싫은 이유를 뱉는다. 지하철 한 번 타고나면 진이 빠져. 숨 막혀. 출근길에 너와 나눈 문장을 고스란히 느낀다. 힘들이지 않아도 앞사람과 옆 사람에 의해 꼿꼿해지는 몸. 뻣뻣해진다는 말이 더 맞겠다.
우린 언제나 널찍한 곳에 있었다. 펼쳐진 바다, 하늘, 논, 호수, 별, 산등성이 같은 것에 기대어 자랐다. 그곳들은 드넓어서 너와 나를 깃들게 해 주었다. 때로는 황량하다 느낄 때도 있었지만, 몰아세우는 빽빽함보다는 훨씬훨씬훨씬 나았다. 너도 나만큼, 널널과 깃들다 보다는 빽빽과 뻣뻣 같은 단어와 가까워졌겠지.
어깨와 목이 잔뜩 굳어버린다. 몸과 마음 사이에는 아주 빈틈이 없어서 몸 따라 마음도 굳는다. 피로를 품(풀)기에 내 방은 너무 빽빽하다. 지금껏 살았던 방들 가운데 가장 좁고 어두운 곳에서 지내는 요즘. 공간이 주는 막연한 우울감은 딱히 없다. 요가 동작 하나도 버거운 비좁음, 그 체감적 불편이 슬플 뿐이다.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은 너를 슬프게 하기도 한다. 네가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기에 굳지 않길 바란다. 꼭 풀어지면 좋겠다. 좁은 방에서도 요가 대신 기댈 수 있던 것들을 떠올린다. 오랜 샤워와 따뜻한 차. 딸기향 바디 스크럽과 살구향 차를 고른다. 이것들에 이완의 마음을 고이 담아본다.
이완:
1. 바짝 조였던 정신이 풀려 늦추어짐
2. 굳어서 뻣뻣하게 된 근육 따위가 원래의 상태로 풀어짐
안녕. 다짜고짜 명사 풀이로 시작하는 편지를 적는 이유는... 너의 스물네 번째 생일에 주고픈 선물이 물건이 아니라, 저 상태이기 때문이야. 빽빽한 곳에서 살아가려면 잘 이완되어야 해.
이렇게 시작하는 편지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