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익은 김치만 한 사람이 없다.
한국인의 밥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김치다. 외국인이라고 해도 한국을 아는 사람이라면 자연히 '김치'를 연상하게 된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대부분 김치를 좋아하고 즐겨 찾는다. 추어탕집이나 칼국수 집에 가면 달랑 두 개 나오는 김치가 음식의 감칠맛을 더해준다. 고기를 구워 먹을 때도 신김치를 함께 구워 먹으면 입안의 행복이 배가 된다.
이모네서는 매 해 김장을 하시는데 우리 엄마가 결혼한 이후로 우리 집 몫의 김치를 매년 보내 주셨다. 덕분에 우리는 김치 부자였고 김치를 원 없이 먹을 수 있었다. 이모네 김치로 말하자면, 직접 배추를 재배하여 김장을 하기 때문에 익기 전에는 그 맛대로 맛있고, 익으면 맛이 정말 기똥차다. 이모네서 김장을 할 때마다 엄마가 함께 김장을 하셨는데 나는 한 번도 김장에 제대로 참여해 본 적이 없다. 그저 많이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와, 김장이 생각보다 고된 작업이구나'라는 생각 했다.
이모네 김장은 배추와 무 뽑기부터 시작된다. 배추를 김장하기 전 며칠 전부터 뽑아 놓고 그 배추들을 깨끗이 씻어 잘 절여놓는다. 그렇게 디데이가 오면 이른 새벽부터 김장을 시작한다.
힘이 필요한 작업은 이모의 장성한 두 아들(나에게도 오빠들이다.)이 도맡아 하고, 동네 주민들이 함께 모여 김장을 한다. 수년간 함께 합을 맞춰온 탓에 모든 과정이 착착 진행된다.
김치 속에 들어가는 재료를 위한 수없는 칼질 후, 신선한 재료들이 알맞게 들어간다. 그렇게 준비된 김치 속을 야무지게 버무려 적당히 배추 사이사이에 집어넣고 고이 잘 포개 접어 김치통에 잘 담는다. 그러한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면 수많은 배추 포기들이 김치통에 실려 이 집 저 집으로 실려간다.
그렇게 김치가 우리 집 밥상에 오른다. 김장에 참여하지 못했으니 수육과 갓 담근 김치를 먹는 그 순간에는 나는 없었음이 아쉽다. 그러나 김치통을 열어 그릇에 담아놓으면 아삭아삭 김치에 밥 한 공기가 뚝딱이다. 좋은 재료와 함께 정성이 담긴 김치라 언제 먹어도 질리지가 않는다. 활용도는 또 얼마나 높은지 김치찌개, 등갈비, 김치찜, 김치전, 잔치국수 고명 등등 말로 다할 수가 없다.
이모의 연세가 많아지고,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이모네서 김치를 받아먹는(?) 우리는 조금 죄송스러워졌다. 엄마가 함께 김장을 하고 어느 정도의 성의 표시는 하고 오지만, 그 수고에 비할 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매번 우리가 가서 도와드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재작년부터 우리가 김장을 해보겠다 마음먹었는데 이모가 이미 배추고 뭐고 준비를 다 해놨으니 아무 말 말아라 하셔서 작년까지도 이모네 김치를 맛있게 먹었다. 아직도 푹 익은 김치가 한 통 남아있어서 김치 찌개며 묵은지 갈비찜 등을 종종 해 먹는다.
드디어 작년 11월, 우리 집에서의 첫 김장이 예정되어 있었다. 엄마, 나, 동생 이렇게 셋이서 우리가 김장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면서도 '에라 모르겠다. 하면 하는 거지 뭐' 생각하며 각오를 다졌다. 절인 배추부터 사야 하니 어디서 사야 하나 고민을 하는 와중에 아빠께서 친구들이 살고 있는 강원도에서 김치를 주문하겠다고 하셨다. 와우, 이런 일이. 일하느라 힘든 엄마와 우리를 위한 배려였다. (이 자리를 빌려 우리의 허리와 손목과 근육을 지켜주신 아부지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렇게 김치 5박스가 도착했다. 무게가 제법 나가서 둘이서 한 박스씩 조심히 부엌으로 운반했다.
배추김치가 3박스, 총각김치가 2박스였다. 각 1박스씩은 그동안 우리의 김치를 책임져주신 이모 댁에 보내기로 했다.
박스 안 비닐에 꽁꽁 쌓인 김치들을 김치통에 담는 작업만 해도 꽤 시간이 걸렸다.
우리는 우선 김치 냉장고를 치우고 정리하며 김치가 들어갈 자리를 확보했다. 집에 있는 김치통을 모두 모아 한 번씩 세척하고 엄마가 김치를 한 포기씩 들어 김치통에 담았다. 우리는 엄마를 옆에서 보필했다. 김치 국물도 대접으로 퍼서 김치를 담은 통에 자작하게 옮겨 담았다. 배달된 김치를 통에 옮겨 담는 것만도 쉬운 작업은 아니어서 김장을 하지 않아도 되게끔 배려해준 아부지께 다시 한번 감사했다. 맛을 보니 고랭지배추라고 어찌나 시원하고 달큰한지 맛있었다. 익으면 얼마나 더 맛있으려나 기대가 되었다.
며칠 전 아침밥을 먹는데, 김치를 드신 아빠가 말씀하셨다.
"허어, 이거 김치 맛이 왜 이래? 뒤집어지나 봐."
내가 뒤집어지는 게 뭐냐고 여쭤보니 김치가 익으려고 뒤집어지는 거란다. 허, 참 김치가 참 이상하게 익어가는구나 싶었다. 예전에는 할머니가 익은 김치를 먹으며 어 이거 왜 이렇게 시지? 했더니 "아, 이거 미쳐서 그래, 미쳐 가는 거야." 하셨다. 알고 보니 그 뜻은 너무 익어서 미친 거란다. 잘못 익어서 미친 거라는 건가? 잠시 생각했다. 김치의 삶이라고 해야 할지, 배추의 삶이라고 해야 할지, 그 시점에서 보니 이들이 얼마나 다사다난하게 살다가는가 싶었다.
힘들게 싹을 피워 열심히 잎을 피워냈더니 송두리째 뽑아 찬물에 담가 헹구고 칼로 몸을 쩍쩍 가른다. 그것도 모자라 짜디짠 소금에 절여지며 연해지고 간간 해지는 시간을 버텨야 한다. 그 고통을 겨우 참아냈더니 이제는 매운 고춧가루로 저며진 뭉탱이들을 잎 사이사이에 쑤셔 넣는다. 그렇게 어딘지 모를 곳에 실려 이곳저곳으로 실려가는데 도착해보면 밥상이라는 곳에 올라가 있다. 그렇게 우리에게 매콤함, 시원함, 아삭함을 주고 떠나는 숭고한 삶이다.
익지 않은 김치는 매콤한 맛이 강하다. 깊은 맛은 없지만 시원하고 아삭아삭하다. 잘 익은 김치는 매콤하면서도 시원하고 부드럽다. 아삭아삭한 맛은 좀 덜하지만 그때부터 깊은 맛을 내며 활용도가 높아진다. 김치가 익어갈수록 그 풍미가 깊어지는데 잘 익은 김치만 있으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 이 음식 저 음식과 먹어도 궁합이 잘 맞아서 술술 넘어간다. 이렇게 귀중한 김치를 잘 보관하면 오래도록 맛있는 김치를 먹을 수 있지만, 반찬통에 덜어져 냉장고를 들락날락하는 김치는 금세 맛이 변해 버린다. 너무 푹 익어버린 김치를 먹으면 흔히 '김치가 시어빠졌다, 시어 꼬부라졌다'라고 하는데 거의 식초와 같이 신맛과 쓴맛이 나서 먹을 수가 없다.
문득 본인은 괴로울 수 있으나, 제 한 몸 불살라 밥상에 올라 많은 이들에게 든든한 밥심이 돼주는 김치 같은 삶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만히 내 삶을 김치에 비추어 본다. 나는 지금 배추와 김치의 삶 중 어디쯤인가? 아직 덜 익어 풋내가 나는 김치인가, 적당히 잘 익어 아삭아삭한 김치인가, 보관을 잘못했거나 너무 오래돼서 시어 꼬부라진 김치인가. 제 때에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있어야 할 곳에 서 있지 못한다면 김치통에 오래도록 머무르다 그저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르겠구나.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는 못할 망정 나에게 나오는 악취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힘든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 앉은 식탁, 갓 지은 하얀 쌀밥과 잘 익은 김치와 함께라면, 그 한 끼가 고되고 힘들었던 그날의 충분한 위로가 될 것이다. 그렇게 밥 한 공기 뚝딱하고 나면 내일도 다시 잘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잘 익은 김치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다.
오늘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