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의 공백 기간
브런치와 인스타에 글을 적지 않았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처음엔 이제 혼자서도 잘 쓴다는 생각으로,
다음은 소설을 쓰고 있으니까 괜찮다는 생각으로,
그러다 어느새 두 공간을 접속하는 것조차 꺼려졌고 이내 피해 버렸다.
그동안 뭐했어?
요즘 뭐하고 지내?
이런 말을 들을 때도
처음엔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답했고,
그다음은 소설을 적고 있다고 답을 했었지만,
근래에는 말을 얼버무리면서 멋쩍게 웃어넘기게 됐다.
뀰 님과 숭 님과 혜윤 님을 좋아했다.
그들이 쓴 글이,
그들이 적어낸 책들이,
그들이 즐겼던 프로젝트가,
좋아하는 것들을 꾸준히 해나가는 에너지가 썩 좋았다.
세 분 덕분에 처음으로 글쓰기에 몰입하는 경험을 했고
목요일의 글쓰기라는 모임도 따라 만들게 됐었다.
기록하는 게 좋은 습관이라는 걸 배우고
브런치를 통해 쓴 글을 공유하기 시작했으며
성장해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나와의 차이를 보면서 조급한 마음을 가졌던 때도 있지만
꾸준히 기록해가면서 나만의 속도로 살아가겠다는 다짐의 글도 적을 수 있었다.
(나만의 속도로 살아가기: https://brunch.co.kr/@ohmung/12)
그때의 나는 기록과 공유의 가치를 알고
실천해나가는 중이었다고 생각한다.
하나 브런치를 멀리한 2년의 공백 기간 동안 경험을 기록으로 남긴 게 거의 없다.
내가 무언가 했던 활동은 소설을 적고 응모해보는 경험뿐인데, 그때의 작은 느낌조차 적어둔 게 없다.
처음 소설을 적기 시작할 때는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도 많이 구했다.
전체적인 스토리부터 각 캐릭터에 대한 설명까지 열심히 전달했고 답을 들었다.
한 달 정도를 구상하고 소설을 적기 시작했는데 막상 적어보니까 예상했던 경험과 많이 달랐다.
'아, 소설을 잘 쓴다는 건 평범한 것도 자기만의 문장으로 풀어내는 거구나.'
소설을 적으며 가장 뼈저리게 느꼈던 생각이다. 잘 적히는 날에는 하루에 50Page도 적어냈지만, 며칠 뒤에 다시 적힌 내용을 쭉 읽어보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른 작가들과 나의 문장력 차이를 쉽게 실감할 수 있었다. 당연히 소설은 제시간에 완성되지 못했고 때늦게 마무리만 지은 채 치워버렸다.
당근마켓에서 일하셨던 장류진 작가님의 책 '일의 기쁨과 슬픔'을 읽고서는 나는 더 잘 해내겠다고, 그렇게 적기 시작한 장편소설이지만 오히려 더 씁쓸한 결과만을 맞이했다.
이후 5월 말 창비에 도전하고자 단편소설을 적었는데, 이때는 적은 내용을 누구와도 공유하지 않았다. '중뼝아리'와 '이력서'라는 제목으로 적어낸 두 소설은 당연히 당선되지 않았다. 아마 이때쯤부터였던 것 같다. 지인들의 안부 질문에도 말이 목에 걸려서 잘 나오지 않았던 게.
19년 3월, 브런치에 글을 적는 건 멈췄어도
여행지에선 혜윤 님의 '퇴사는 여행'을 밤새 읽으면서 가슴 설렜고,
퇴사한 뀰 님과 숭 님의 'DO NOTHING CLUB'을 보면서 응원하고,
뀰 님이 '규림문방구' 개인전을 할 때는 직접 찾아갔다.
하지만 좋아하던 뀰, 숭, 혜윤 님의 소식도 근 몇 개월 정도는 찾아보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해내지 못했다는 마음의 짐을 계속 지니고 있던 것 같다. 짐은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가라앉고 있었고 나는 남들과 맞닿는 공간인 브런치, 인스타그램과 함께 그 짐을 외면해버렸다.
누구도 무어라 하지 않았고,
남들은 내게 관심도 없는데,
그냥 그렇게 됐다.
다른 관점으로 보면 해보고 싶던 일에 도전해봤고 다음 단추를 잘 꿰매면 될 일인데 그게 안됐다. 2년의 시간 동안 나의 기록은 멈추어 있었고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없으니 자신감이 생기지 않았다. 첫 직장에서의 일도 아쉽게 끝이 났고, 소설을 적는 것도 실패했다는 생각에 차츰차츰 자존감이 갉아먹힌 듯하다. 무언가 하나를 하려고 해도 삐그덕 대고 망설여졌다.
일을 쉬는 동안 도전의 기회가 없던 것은 아니다. 고맙게도 부족한 나에게 5차례 정도 일자리 제안이 들어왔고, 그중에 한 번은 해보고자 마음도 먹었었다. (그게 PM직무였다.)
다만 해본 적도 없는 PM직무를 지인의 추천을 받아서 도전한다는 게 걸렸고, 원래 2년 이상의 경력직을 찾는 자리였기에 상당히 망설여졌다. 도전해보고 떨어지면 그걸로 끝일뿐인데, 혹시나 추천해준 사람의 얼굴에 먹칠을 하진 않을까 이런 생각이 한번 드니 적어놓은 이력서의 전송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내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을 떨쳐내질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은 글을 적는 것밖에 없다.
그렇게 꾸준히 기록 해나가 조금씩 조금씩 자존감의 탑을 쌓는 거다.
규림님이 말한 것처럼,
지나가는 시간을 잡아둘 수는 없지만
흘러가는 생각들은 묶어둘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