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회사에 꽤 진심이었다.
스무 해째, 나는 여전히 출근한다
어느덧 회사를 다닌 지 스무 해가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 출근을 하던 날은 아직도 또렷한데,
이제 나는 회사에서
연차가 많은 사람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회사에 꽤 진심이었다.
‘꽤’라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그 시절의 나는 삶의
대부분을 회사에 걸고 살았다.
별을 향해 살던 평범한 회사원
스무 해 전, 내 목표는 단순했다.
임원.
회사원이라면 한 번쯤
마음속에 품어보는 자리였다.
그 별을 따기 위해
나는 남들보다 먼저 출근했고,
남들보다 늦게 퇴근했다.
야근은 특별한 날이 아니라 일상이었고,
주말 출근도
“이 정도는 해야지”라는 말로
스스로를 설득하며 받아들였다.
그때의 나는
회사가 요구하는 모든 것을
성실함이라는 이름으로 삼켰다.
인사평가가 인생 점수가 되던 시절
연말이 다가오면
내 감정은 회사 일정에 맞춰 움직였다.
인사평가 점수가 잘 나오면
그 해는 잘 산 것 같았고,
점수가 낮은 해는
내 인생 전체가 부정당한 느낌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다.
회사에서 매긴 숫자 하나가
내 삶의 가치를 대신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평가가 좋지 않은 해에는
“내가 부족해서 그렇다”라며
스스로를 더 몰아붙였다.
일을 더 잘했어야 했고,
더 참았어야 했고,
더 오래 버텼어야 한다고 믿었다.
퇴근조차 눈치가 필요했던 시간들
퇴근 버튼을 누르는 순간에도
나는 주변을 한 번 더 살폈다.
선배들이 아직 자리에 앉아 있지는 않은지,
괜히 먼저 가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닌지.
컴퓨터를 끄고도
다시 켜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많았다.
할 일도 없는데
자리에 다시 앉아 있던 날들도 있었다.
그렇게 나는
인사평가에 울고 웃던 시절을 살았다.
그래도, 그때의 나는 나름 괜찮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절의 나는 불행하지 않았다.
매달 월급은 꼬박꼬박 나왔고,
그 월급으로 결혼을 했고,
가정을 꾸렸다.
회사는 나를 보호해주는
튼튼한 울타리처럼 느껴졌다.
회사 안에서만 잘 살아남으면
인생은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넘어갈 거라고 믿었다.
나만의 인생 테크트리
내 인생에는 분명한 경로가 있었다.
사원으로 시작해
부장을 단다.
임원이 된다.
월급이 껑충 뛴다.
돈을 모아 건물주가 된다.
그리고 퇴사 후, 경제적 자유를 누린다.
지금 보면 단순한 도식이지만,
그때의 나는 이 경로를 의심하지 않았다.
이 길만 성실히 따라가면
보상은 반드시 따라온다고 믿었다.
회사만 열심히 다니면, 언젠가는
그래서 나는 의심하지 않았다.
회사만 열심히 다니면
언젠가는 반드시 보상을 받을 거라고.
회사는 성실한 사람을 배신하지 않을 거라고,
오래 버티는 사람이 결국 이길 거라고 믿었다.
그 믿음은
나를 스무 해 동안 회사에 붙들어 둔 힘이기도 했다.
나는 회사에 꽤 진심인
아주 전형적인 월급쟁이였다.
그리고 그때는 몰랐다.
이렇게 회사에 진심인 삶이
훗날 나를 지켜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주 조용히
나를 흔들기 시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