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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호라 Apr 14. 2022

지하 창고에서 맛 본 천상의 맥주

필스너 우르켈 양조장에서(18.10.11.)

전날 가이드 투어로 워낙 많은 곳을 돌아다녔기 때문에 다음날은 큰 욕심 없이 보내게 되었다. 느지막이 일어나 필젠에 있는 ‘필스너 우르켈 양조장’을 방문하기 위해 프라하 중앙역으로 향했다. 프라하 중앙역에서 필젠까지 가는 열차는 수시로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매우 여유롭게 출발할 수 있었다. 프라하 중앙역에서 왕복 열차표를 끊은 뒤, 역사 안의 카페에서 커피와 크로와상 샌드위치로 간단히 브런치를 즐겼다. 그때까지는 좋았으나 개찰구를 찾느라 애를 먹었다. 전광판이 두 개 있었는데 우리가 보기에 혼란스럽게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작은 전광판을 보고 개찰구를 찾아갔는데 지도상 필젠으로 향하는 방향이 아닌 것 같았고, 지나가던 역무원에게 물어보니 그 열차가 아니라고 했다. 


우리는 개찰구에서 열차를 기다리다가 전광판을 다시 확인하고 다시 개찰구로 왔다 갔다 하기를 반복했다. 거진 한 시간 동안 그러다 J와 나는 서로 각자 지치고 짜증이 나서 말을 잃어갔다. 이때가 여행 중 가장 지치고 힘들었던 때로 손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마침내 우리는 어떻게든 중앙에 있는 전광판을 다시 확인하고 무사히 필센행 열차에 올랐다. 프라하 역의 안내판은 여행객들에게 친화적이지는 않았지만 열차 시설은 꽤 괜찮았다.


덕분에 다시 즐거운 기분을 회복한 상태로 필센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행히 숙소에서는 여유롭게 나왔었기 때문에 우리가 예약해두었던 브루어리 투어 시간에는 늦지 않게 도착했다. 필센 시내 구경도 할까 생각했었던 건 무산되었지만. 필젠 역에 내리자마자 필스너 우르켈 양조장으로 향하는 안내 표지판이 보였기 때문에 이 마을이 역시나 양조장 덕에 먹고사는 마을이구나 하는 점을 느끼면서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었다. 걸어서 10분도 안 되는 거리였다. 만약 필센 역에서 양조장으로 가는 길까지 어려웠다면 우리는 양조장 투어를 하기 전에 완전히 진이 빠져버리고 말았을 것 같다. 


필스너 우르켈 양조장은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다. 잘츠부르크에서 방문했던 스티글 양조장에 비하면 필스너를 처음 개발하고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양조장답게 훨씬 더 큰 규모였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맥주와 걸맞은 음식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이 보였고, 조금 더 안쪽에 브루어리 투어 티켓을 교환할 수 있는 리셉션이 있었다. 그리고 탁 트인 광장 안쪽으로 기념품 샵이 보였다. 우리는 먼저 오후 1시로 예약해두었던 투어 티켓을 교환한 뒤, 한 시간 가까이 남은 시간 동안 기념품 샵을 여유롭게 구경하기도 하고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냈다. 기념품 샵에서는 필스너 우르켈 맥주뿐만 아니라 이 양조장에서 생산하는 보다 맥주를 여러종류 팔고 있었고, 여러가지 모양의 전용잔과 필스너 우르켈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 모자 등 매우 다양한 품목의 기념품이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물론 기념품과 맥주는 브루어리 투어를 마친 뒤에 구매하기로 했다.

한 시부터 시작한 투어는 리셉션 2층에 있는 작은 필스너 역사관에서 간단히 필스너 우르켈 양조장의 역사 설명으로 시작되었다. 투어를 진행하는 직원은 영어로 말했는데 체코 억양이 섞여있기도 하고 영어가 짧아 반도 못 알아듣는 수준이었지만 투어를 즐기는 데에 큰 무리는 없었다. 이후 약 30인승의 봉고차를 타고 브루어리 내를 5분 정도 이동했다. 먼저 방문한 곳은 양조 후 포장이 이루어지는 생산 라인이었다. 병에 맥주가 담기고 라벨을 붙이고 병뚜껑을 닫기까지의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이 재밌었다. 초록색 병이 라인을 따라 여러 줄로 줄지어 움직이다가 일렬로 움직이는 모양이 참 신기하기도 해서 동영상을 찍으며 꽤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다음으로는 맥주를 양조하는 시설을 보았다. 한 층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는데 매우 큰 엘리베이터였다. 정원을 가득 채우면 100명 정도까지 수용 가능한 정도의 크기였다. 그 큰 엘리베이터가 왜 필요할까 싶긴 했지만 투어를 진행하는 가이드는 체코에서 가장 큰 엘리베이터라며 자부심을 내뿜으며 설명했다. 우리는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옛날에 사용했던 보일링 장치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시설 모두를 관람할 수 있었다. 브루어리 투어의 하이라이트는 다음으로 가게 된 지하창고였다. 


브루어리 투어에서 관람객들에게 공개된 범위는 지하창고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고 하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어마어마한 규모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지하창고는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필스너 양조를 위해 초기에 필요했던 공간이었다. 낮은 온도의 하면 발효 맥주를 신선하게 보관하기 위해 현재는 냉각기를 사용하지만 예전에는 그런 설비를 갖출 수 없었기 때문에 지하 창고에서 얼음과 함께 맥주의 신선도를 유지시키고 발효시켜야 했던 것이다. 과연 그런 용도답게 지하 창고에 들어가자마자 꽤 서늘해서 코끝이 시릴 정도였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자 필스너 우르켈 양조장에 꼭 방문해야 할 이유가 있다면 이것인 듯싶은데, 옛날 방식의 양조 방식을 일부 유지하면서 그 방식으로 얻어진 ‘언 필 터드(Unfiltered: 효모를 거르지 않은) 필스너 우르켈’을 지하창고에서 방문객들에게 한잔씩 시음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이날 지하 창고에서 마신 필스너는 정말 잊지 못할 천상의 맛이었다. 지하실의 분위기가 곧 안주 역할을 했고, 평소에 캔 또는 병으로 구입해서 마셨던 필스너와는 완전히 다른 맥주였다. 전날 저녁에 필스너를 잘 관리하고 있다는 레스토랑에서 마셨던 맛있는 필스너와도 또 다른 색다른 매력이 있었다. 보통의 필스너 우르켈은 약간 쌉싸름하면서도 깔끔한 맛에 바닐라 향이 끝 맛에 살짝 느껴지는 듯했는데, 이곳에서 마셨던 필스너는 쓴 맛이 훨씬 덜하고 향긋하면서도 알싸한 홉의 향 또는 효모의 맛이 느껴졌다. 가이드는 이 언필터드 필스너를 기념품 샵에서 팔고 있다고 얘기해주었고 우리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무조건 구매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투어는 약 한 시간 반 만에 마무리되었다. 투어를 모두 마치고 나니 양조장의 많은 시설들을 방문객들에게 공개한다는 것 자체가 필스너 우르켈에 대한 신뢰를 더 두텁게 해주는 듯도 했다.


투어를 하고 나니 기념품 샵에서 구매하고 싶은 새로운 품목들이 생겨났다. J와 나는 그 마음을 갖고 지하창고에서 따라 마셨던 길쭉한 모양의 잔 각 1잔씩과 평소에 많이 보았던 묵직한 머그잔도 각 1잔씩, 그리고 언필터드 필스너 두병, 한국에서는 팔지 않는 750ml짜리 큰 캔에 담긴 필스너를 구매했다. 이로써 우리 캐리어에 들어갈 맥주 전용잔은 그전에 구매했던 8잔에 4잔을 더해 총 12잔이 되었다. 다행히도 이때 구매한 잔들이 마지막이었다. 양손 무겁게 기념품 샵을 나온 뒤에는 몹시 배가 고픈 상태였기 때문에 양조장의 입구 쪽에 있는 펍 겸 레스토랑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필스너 두 잔에 안주로 시킨 메뉴는 차가운 돼지고기 볶음 같은 요리에 바게트가 함께 나온 다소 난해하고 처음 보는 요리였지만 맛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다만 전날 저녁에 먹은 요리와 맥주가 더 맛있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양조장은 양조장 투어로만 끝내고 저녁은 다른 데서 먹었으면 더 좋았을 듯싶다. 필젠에서 프라하로 돌아오니 어느덧 해가 지고 난 뒤였다. 하루가 유독 금방 지나간 것 같아 아쉬웠지만 지하 창고에서 마신 필스너의 맛을 기억하며 만족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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