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추다.
어떤 사실이나 감정 따위를 남이 모르게 하다.
남이 보거나 찾아내지 못하도록 가리거나 숨긴다.
지독한 냄새가 난다. 머리맡에는 방금까지 마셨던 술이 쏟아져 있었다. 식탁보는 술에 취한 듯 흠뻑 젖어있었다.
18:00
무겁고 피곤한 마음을 핑계 삼아 술을 사 가지고 들어왔다. 어제 먹다 남은 피자를 꺼내 물 한 컵과 함께 전자레인지에 돌려놓고 옷을 갈아입었다. 동시에 전자레인지는 동작을 멈췄다. 촉촉한 피자를 한 입 베어 물고는 물 한 컵을 개수대에 버리고는 맥주를 양껏 따랐다. 거품이 가득한 맥주를 한 모금 마시더니 맘에 들지 않는 표정을 하고는 "투샷 추가"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소주를 따랐다.
한 모금 마시고는 피자를 우걱우걱 집어넣었다. 다시 투샷 맥주를 입 안 가득 들이켰다. 기분 탓인지 맥주는 시원하지 않았다. 베트남에 가서 비아 허이 = 생맥주를 마실 때 종종 얼음을 넣어주곤 한다. 냉장고를 허이 열었다. 얼음을 몇 알 꺼내 컵에 넣고는 다시 샷을 추가하였다. 피자 토핑 페페로니를 주워 먹고는 다시 술을 한 모금 아니 들이부었다.
해당 사진과는 관련이 없음. 조용한 틈을 타 째깍째깍 분침과 초침이 만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주와 맥주가 완벽하게 만나지는 소맥이 되는 시간, 대략 18:33 얼른 소주와 맥주를 컵에 따르고는 대차게 흔들었다. 한 모금 먹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한채 피자도 우걱우걱 한 모금 먹었다. 약간 취기가 올라오는 듯 어지러웠지만, 아직 혀는 꼬이지 않은 듯하다. 다만 지진이 난 것만 같은 흔들림을 느꼈다. 맥주에 흠뻑 젖은 핸드폰이 울리고 있었다.
"지금 버스 탔어. 짐이 많아서 혹시 터미널로 나올 수 있니?"
"시간 맞춰서 갈게."
오늘이었던가? 생각을 더듬을 틈도 없이 답장을 해버렸다. 아무런 이벤트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마신 술은 얼음이 녹아 기억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20:30
핸드폰이 사정없이 울렸다. 정신없이 잠금을 풀고는 들여다보았다.
"어디야? 조금 있으면 도착해."
"지금 내렸어."
"혹시 잠들었니?"
전화를 걸어 깜빡 잠들었다고 말했고, 어디냐고 물었다. 연락이 안돼서 마냥 기다릴 수 없어 지하철을 탔다는 말을 들었고, 괜스레 미안해졌다. 탓이라고는 쓰러져 식탁보를 적셔버린 맥주밖에 없었다.
어림잡아 30분 후면 그녀가 도착한다. 일단 감추어야 한다. 소주병과 맥주병을 치웠다. 그러고 식탁을 행주로 닦아보았다. 냄새는 닦이지 않는다. 일단 증거 인멸을 위해 소맥병을 들고나가 분리수거를 하고 돌아와 식탁보를 욕조에 던져 손세탁을 했다.
빠르게 빨래를 널고, 새로운 식탁보를 깔았다. 곳곳에 탈취제를 뿌리며 창문을 활짝 열었다. 마지막으로 세수를 하고 이를 닦았다.
21:00
도어록이 열리는 소리,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
양손 가득 짐을 내려놓고는 배가 고프다고 말했다.
잘 감추었단 생각에 긴장했던 마음이 가라앉았고, 뭐가 먹고 싶냐고 물었고, 이 밤에 짜장면이 먹고 싶다고 말했다. 예전에 짜장면을 만들어 자랑한 적이 있었고, 늘 해달라고 이야기해왔었다.
전에 사둔 춘장과 냉장고에 있는 양파와 파 마늘을 꺼냈고, 먹다 남은 삼겹살을 꺼냈다. 기름을 넉넉히 붓고 춘장을 볶았다. 웍에 넓게 퍼트린 춘장 가운데에 기포가 올라올 때쯤 불을 끄고, 덜어 놓았다. 그러고는 설탕을 넣고 녹여주었다. 그다음에 삼겹살을 넣고 튀기듯 볶으면서 1차로 양파와 파를 조금씩 볶았다. 2차로 양파와 파를 더 넣어주고 적당히 물이 뿜어져 나올 때? 아니 그냥 물을 넣고 춘장을 넣고 볶았다. 전분물을 살짝 부어 짜장을 만들었다. 중국면이 없어 우동사리를 꺼내 삶아 접시에 담았다.
그녀는 말했다.
한 잔 더 먹을 수 있어?
# 모든 이야기는 술을 자주 먹는 것 외에는 픽션입니다.
금주는 시작이 반입니다. 감춘다고 감춰질 술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