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단상] 영화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을 보고
-전쟁터에서 아기와 나 중 하나만 꼭 죽어야 한다면.
영화에는 어린아이들의 죽음이 많이 등장한다.
불과 개전 일주일 채 되지 않아 수많은 사람이 죽는다.
그중 키릴이라는 아기가 있었다. 키릴은 18개월(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밖에 안된 어린 아기였는데 폭격으로 죽었다.
키릴의 부모는 망연자실한다.
영화도입부에서 사람들은 전쟁이 났다는데 진짜전쟁이 났는지 긴가민가한다. 이 영화감독조차도 민간인은 공격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서, 평화롭게 아기와 살아가던 부모가 개전 일주일도 안되어서 한 순간에 아기를 잃은 것이다.
며칠 동안 한 장면이 계속 어른거렸다.
죽은 키릴을 싼 이불보를 들춰 아기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쓰다듬던 키릴엄마의 모습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 마음이 어떨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코가 시큰하다.
생각했다. 나랑 우리 아기 중 누가 죽어야 한다면 당연히 내가 죽어야지. 너무나 당연히, 그래서 우리 아기가 살 수 있다면 내가 죽어야지 생각했다.
만약 내가 저 상황이었다면 나는 영원히 아기가 있는 저 병원을 떠날 수 없을거라고도 생각했다.
너무 가슴아팠다.
그러다 문득 어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물도 전기도 음식도 다 끊기고 포탄만 날아다니는 전쟁터에서
나 또는 나랑 남편은 죽고 아기만 남는다?
그게 더 비극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돌봐줄 이 없는데서 아기만 살고 보호자는 죽는다면 아기의 운명은?
그렇게 생각하니 차라리 내가 사는 게 낫겠다.
생지옥에서 영문도 모른 채 혼자 모든 고통을 겪게 둘 수는 없다. 엄마가 죽은 줄도 모르고 한없이 엄마를 찾으며 울게 둘 수는 없다.
오히려 아기는 부모의 품에서 가고 부모인 내가 생지옥을 겪든, 죽 든 살든, 아기를 잃은 고통에 몸부림치든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로 하여금 자식이 먼저 죽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다니
전쟁은 역시 몰상식의 결정체다.
우리 아기랑 비슷한 또래여서 계속 떠오르는 아기 키릴의 명복을 빌고, 그 부모의 치유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