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힘사 — 가장 잔인한 폭력은 자기 자신에게

비폭력을 실천하면서, 폭력적이었습니다

by 오로빈

욕을 내뱉는 순간 가장 먼저 그 말을 듣는 것은 내 귀다. 소리를 지르는 순간 가장 먼저 그 진동을 받는 것은 내 몸이다. 주먹을 휘두르는 순간 가장 먼저 긴장하는 것은 내 근육이다.


상대방에게 도달하기 전에, 모든 폭력은 먼저 나를 통과한다.




ahiṃsā-pratiṣṭhāyāṃ tat-sannidhau vaira-tyāgaḥ

"아힘사에 확고히 자리 잡으면, 그 가까이에서 적대감이 사라진다." — 요가수트라 2.35


아힘사(비폭력). 요가 8지의 첫 번째 지인 야마의 첫 번째 원칙이다. 흔히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라고 배운다. 맞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나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다.




제주에서 게스트하우스 매니저로 일하던 시절, 회식 자리에서 불판 위의 붉은 고기가 왠지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자리에서 선언했다. 완전 채식을 하겠다고.


약 3년간 제주에서, 인도에서, 유럽에서. 어디를 가든 채식주의자로 지냈다. 나름 아힘사를 잘 실천하고 있다고 여기면서.


그런데 불편한 순간이 있었다. 채식하는 사람들끼리 모이면, 육식하는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경멸하는 제스처를 취할 때가 있었다. 비폭력을 실천한다면서, 다른 선택을 한 사람에게 폭력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나 자신도 돌아봤다. 채식을 고수하기 위해 주변 사람에게 불편을 주고, 나 자신을 억지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좋은 의도로 시작한 것이, 집착이 되어, 다른 방향의 폭력이 되어 있었다.




이것은 채식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분리수거도, 미니멀리즘도, 같은 패턴이 반복되었다. 매번 좋은 의도로 시작했지만, 그 의도가 집착이 되는 순간 아힘사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이해를 통해 집착을 내려놓는 순간, 다시 아힘사로 돌아왔다. 이 나선의 끝에서 발견한 것이 있다. 아힘사에도 층이 있다는 것. 가장 바깥의 행위부터, 가장 안쪽의 이해까지. 그 이야기는 책에서 풀어보려 한다. (현재 열심히 집필 중이다.)


아힘사는 도착지가 아니다. 나선이다. 같은 자리를 도는 것 같지만, 한 바퀴 돌 때마다 조금씩 깊어진다.




그리고 이 나선을 가장 강렬하게 수련한 장소가 있다. 엄마 앞이다.


엄마와의 관계는 내 가장 큰 숙제였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편안했던 순간보다 소리 지르고 화내던 순간이 더 많이 떠오른다. 수련을 시작하고, 정말 중요한 것을 발견했다. 화의 원인은 상대방이 아니라, 내가 가진 기대였다는 것. 엄마의 말 뒤에 있는 기대를 알아차리는 순간, 화가 올라올 자리에 이해가 들어왔다.


이것이 매트 밖 아힘사 수련이다. 참는 것이 아니라, 이해에서 오는 친절.




오늘 하루,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을 관찰해 보시라. '왜 이것밖에 못 하지?' '또 실수했네.' '다른 사람은 잘하는데.' 머릿속에서 나를 향한 말 중, 아힘사가 아닌 것이 몇 번이나 있었는지.


세어보는 것만으로 수련이 시작된다. 알아차리는 것이 시작이니까.




다음 이야기에서는, 사티야(진실)를 다룬다. "괜찮아요"라고 말할 때, 우리는 정말 괜찮은 걸까.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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