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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세일 Dec 27. 2022

역사상 최고의 곰

역사 이야기

유방이 모든 조건에서 우월했던 항우와의 싸움에서 최후의 승자가 되고 한나라를 창업할 수 있었던 것은 한초삼걸(漢初三傑)이라 부르는 장량, 소하, 한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한나라 창업 과정에서 한신의 역할은 압도적입니다. 비록 유방의 휘하였지만, 한신은 독자적인 세력을 갖고 있어 언제든 자립할 수 있었습니다. 한신의 모사 괴통은 유방이 고통은 나눌 수 있어도 성과를 나눌 수는 없는 상이라는 이유를 들어 자립하여 항우, 유방과 함께 천하를 셋으로 나누라고 여러 차례 설득합니다. 지략가인 괴통의 눈엔 초가 망하고 나면 한신은 언제든 한나라를 전복시킬 수 있는 위험인물이기에 결국 토사구팽당하리라는 게 눈앞에 보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한신의 생각은 다릅니다. 자신의 뛰어난 군사적 재능은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지만, 유방에게는 있고 자신에게는 없는 재능, 즉 독자적으로 한 나라를 세우기에는 부족한 인간적인 흡입력의 부재를 알고 있습니다.


기원전 202년, 제위에 오르던 날 유방은 초왕으로 임명된 한신에게 묻습니다. “장군의 지휘 능력은 백만 대군도 부족할 것이오. 내가 통솔할 수 있는 병력은 어느 정도인 것 같소?” 한신이 대답합니다. “신은 다다익선이고, 폐하는 10만이면 족할 것입니다.” 기분이 상한 유방이 다시 묻습니다. “그런 재능을 갖고도 장군은 왜 신하가 되었소? 분위기가 어색해진 가운데 한신이 답변합니다.


“병지장(兵之將)과 장지장(將之將)의 차이입니다. 신에겐 ‘병사들의 장군’이 될 능력은 있어도 ‘장군들의 장군’이 될 능력은 없습니다. 그러니 ‘장군들의 장군’이 될 능력은 지닌 폐하의 신하가 되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반전으로 상황은 유쾌하게 마무리되었지만, 이 말은 한신이 뼈아프게 인식한 자신의 한계였을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괴통의 천하삼분지계를 따르지 않았겠지요. 물론 괴통이 본 자신의 미래를 한신 자신도 볼 수 있었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었겠지만.


한나라 창업의 일등공신 초왕 한신이 재위 9개월이 지나지 않아 반역을 이유로 ‘후’로 강등당합니다. 그로부터 다시 5년이 지난 기원전 196년, 한신은 처형되고 삼족도 몰살당해 토사구팽의 전형이 됩니다. 최후의 순간, 한신은 괴통의 계략을 쓰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고 합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가져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어쩌면 한신은 역사상 최고의 곰이고, 유방은 최고의 되놈일 것 같습니다. 전무후무한 용병술을 지녔지만, 자신의 미래는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했으니 이 또한 어리석음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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