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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민 Nov 29. 2020

쓰레기를 훔치다.

1. 정말 절실한 분 오세요.

 우스울 정도로 구겨진 얇은 셔츠를 입고, 소명은 오이도행 전철 위에 올랐다. 지금 같은, 그러니까 일요일 오전 시간에는, 어딘가로 출발하는 사람들이 전철을 이용했다. 소명도 그의 목적지를 떠올렸다. 오랜만에 본가로 향하는 길이었다. '출발'은 고사하고, 힘겹게 디딘 몇 걸음을 억지로 끌려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마지막으로 현관을 나섰을 때가 문득 생각났다. 어머니는 소리를 지르며 울었고, 아버지는 무어라 욕을 했지만, 두 사람 다 따라 나오지는 않았다. 소명은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그때에는, 그가 무언가 이룬 채이기를 바랐다. 문 하나를 둔 안쪽에서 참 많이 울었지만, 그 문을 등지고 걸어가는 길에서는 두려움조차 건조했다. 2년이 지났다. 소명은 이뤄 낸 것이 없었다. 마치 2년이라는 시간이 삭제된 듯이, 꼭 같은 모습이었다. 옷이라도 좀 괜찮은 것을 입을걸 하고 소명은 셔츠 소매를 문질렀다. 짐이랄 것도 없이 종이봉투 하나만을 들고 있는 그가 스스로도 초라해 보였다. 소명은 부모님 얼굴을 뵙고, 동생에게는 선물을 건네주고, 오늘 안에는 다시 전철에 올라 자취방으로 가는 것을 계획했다. 찾는 물건이 없었다면 퉁명스러운 아버지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덕원입니다" 상냥한 목소리가 차내에 울렸다. 전철이 너무 빠르게 달리는 것 같다고, 소명은 생각했다. 

전철이 소명을 무참히 흔들었다. 튕겨내 버릴 듯이, 하지만 자신은 영영 한 방향으로만 내달릴 듯이. 바지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소명은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어 문자를 확인했다. 어디서 회원가입을 잘못했는지, 스팸문자가 하루에 열 통씩은 오는 것 같았다. 평소에는 읽지도 않고 지워버리지만, 소명은 확인 버튼을 눌렀다. 마음이 싱숭생숭했기 때문이었다. 오전의 가볍게 부서지는 햇살이 액정에 반사되어, 소명을 방해했다. 얼마 전 화면을 크게 깨어먹은 탓에, 햇살은 천 개의 빛 조각처럼 보였다. 그 순간 전철이 터널로 들어섰다. 

"정말 절실한 분 오세요. 

도움드릴게요."

소명은 한참 동안 두 줄의 문장을 쳐다봤다. 전철이 터널에서 나설 때까지 보고 있었다. 누가 어떤 도움을 주겠다는 것일까? 장기나 성을 팔 수 있도록, 그래서 돈을 벌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말일까? '정말 절실한 분'이라는 글자가 자꾸 신경 쓰였다. 그 글자는 소명의 눈동자 뒤에서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하며 정신없게 굴었다. 누가 이런 문자에 기댈 수 있을까? 문자를 받고, 숨이 턱 막히며, 통화버튼을 누르는 익명의 누군가가 떠올랐다. 소명은 자신에게 절실하게 도움이 필요한지 생각해보았다. 아닌 것 같았다. 아직 소명의 삶에서 가장 나쁜 때는 오지 않은 것도 같았다. 소명의 인생 중 최악의 시기를 대비하여, 이 문자메시지를 남겨두어야 할지도 몰랐다.

또 한 번의 진동이 소명을 땅굴에서 끄집어냈다. 이번에는 주희의 카톡이었다. 

"꿈을 펼치리라. 한국 신인작가 공모."

소명은 다시 땅굴로 끌려들어 갔다. 세련된 공모 포스터 밑으로 주희가 연달아 보내오는 카톡이 차례차례 떴다. 

"언니, 이거 해 보는 거 어때?"

"회화? 분야도 있대."

머리가 지끈하고, 귀 부근이 당겨왔다. 요즘 바빠서 안될 것 같다는 답장을 대충 보내자, 주희는 더 말이 없었다. 소명은 다시 "이따 보자."라고 전송했다. "절실한 분 오세요." 하는 말이 주희의 높은 목소리로 들려오는 것 같았다. 주희의 음성은 종착역인 오이도에 도착한다는 알림에 지워졌지만, 소명은 앞으로 그 글귀에 오랫동안 사로잡혀 있을 것만 같았다. 글자를, 또 자간 이면에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곱씹을 것이었다. 

주희와 작년 이맘때쯤 만났던 것을 제외하면, 가족을 보는 것은 2년 만이었다. 아주 어릴 적에는 소명을 아끼는 가족을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지금은 무척 불편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소명뿐은 아니었는지, 도어록 번호가 바뀌어 있었다. 소명은 마치 잘 모르는 사람 집에 들어갈 때처럼, 초인종을 누르고, 자신이 누구인지 설명했다. 

"이소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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