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5.10
"처음에는 햄버거였어요. 그때는 새끼손톱만 한 크기였죠."
한여름에도 마스크를 쓰고 자신을 인터뷰해달라고 요청한 B는 나에게, 자신의 오른쪽 엄지손톱을 내밀었다.
작은 인터넷 언론에서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조회 수를 탐하던 나 같은 기자에게, B가 제보한 내용은 사무실에서 취재 안 나가냐고 눈치 주는 부장의 눈총을 피하는 아주 좋은 미끼였다. 사무실 근처 카페에 일부러 약속시간보다 1시간 일찍 나와 B를 기다리던 나는, 옆 테이블에서 들리는 '공중부양하는 법'같은 허무맹랑한 이야기나 하는 테이블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시간을 잡아먹었다.
약속시간에 맞춰 나타난 B는 마스크도 벗지 않고 작은 여행 가방을 소중히 자신의 의자 옆에 두었다. 물가 상승률이 반영되지 않아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씩 사 먹을 수 있는 법인카드로 사준다는 음료도 마다한 채, B는 혼자 온 게 맞냐고 물었다.
"영상취재하는 것도 아니라서, 저 혼자 왔습니다. 그나저나 이상한 물건이 있어서 제보한다고 하셨죠? 어떤 물건이길래 경찰서나 박물관이 아니라 기자에게 연락을 하신 건가요?"
B는 주변을 조심히 살피고는 가져온 여행 가방을 테이블 위에 눕힌 뒤, 안을 보여주고는 3초 만에 닫고 자물쇠까지 채운 뒤 다시 테이블 밑으로 내려놓았다.
한라봉 크게 정도의 구체. 가방을 아주 살짝 열고 닫아, 색은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구 형태의 물건이었다.
"공?"
"처음에는 햄버거였어요. 그때는 새끼손톱만 한 크기였죠."
기자는 사건을 논리정연하게 재구성하는 직업이라면, 제보자는 사건의 인과관계를 뒤죽박죽 섞는 직업이다. 특히 자신의 제보가 세상을 뒤흔들 제보라고 생각하는 제보자들은 전후 사정 설명 없이, 냅다 본론으로 들이 박는다. 이럴 때는 수첩을 펴고 뭔가 적는 척하는 게 최선이다.
"새끼손톱 크기에 햄버거 1개, 새끼손가락 1마디 크기에 노트북... 이 구슬을 입에 넣고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졌어요.. 그런데... 그런데.."
"잠깐, 잠깐만요. 그러니까 방금 보여준 공, 아니 구슬이 소원을 이루어주는 구슬이다. 그리고 소원을 이루는 방법은 입에 넣기만 하면 된다?"
"네에... 입에 구슬을 넣고 소리를 내던, 속으로 빌던 소원을 말하면 내 눈앞에 원하는 것을 이루어줘요. 단 물질적인 소원만 이루어주더라고요. 사람의 마음을 얻거나, 로또 당첨되게 해주세요, 돈벼락 맞게 해주세요, 같은 소원은 안되고요."
역시 부장의 잔소리보다는 가치 있고, 내 시간을 쓰면서 듣기에는 가치 없는 제보. 헤드라인 정하는 데만 1시간이 걸릴 애매모호한 제보다. 분명 자극적인데, 너무 자극적이어서 턱도 없는 제목이면 아예 클릭을 안 해버리니까.
"얼마 전에 대한민국 기술로 로켓도 쏘아 올린 세상에, 소원을 이루어주는 구슬이라니 일단 믿기는 어렵네요. 어쨌든 소원을 들어주는 구슬이 B 님의 입, 아니 손에 들어왔고, 들어보니 몇 번 사용했다고 주장하시네요. 그런데 크기는 무슨 말입니까?"
"소원의 크기, 그러니까 원하는 물건의 가치에 따라 구슬의 크기가 달라져요. 햄버거같이 작은 소원은 새끼손톱 정도, 하지만 물건의 가치가 점점 올라가면 그만큼 구슬의 크기가 커져요."
"지니도 소원을 3번만 들어주는데, 구슬의 크기가 커지는 것으로만 소원을 들어준다면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네요."
나도 모르게 햄버거 단품 가격에 구슬 크기를 비교하면서, 물품의 가격에 따라 구슬의 크기가 커지면 나의 드림카를 소원으로 빌면 구슬의 크기가 볼링공만 하겠다는 상상을 3초 만에 했다. 그리고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소원의 가치에 따라 구슬의 크기가 정해진다고 하셨죠? 그리고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구슬을 입에 물고 있어야 하고요. 하지만 방금 본 구슬은 입에 물고 있기에는 너무 큰데요?"
"맞아요. 한번 커진 구슬은 다시 작아지지 않더라고요. 아무리 작은 소원을 빌어도 작아지지 않고, 이뤄지지 않아요. 이전 소원보다 무조건 더 큰 소원을 빌어야 해요. 그러면 구슬은 계속해서 커지죠."
그리고 B는 자신의 마스크를 턱으로 슬쩍 내렸다가 올렸다.
"어... 얼굴이..."
"구슬이 커진 만큼, 내 욕망도 커져만 갔어요. 마치 언덕 위에서 아래로 굴러가면서 끊임없이 커지다가, 부서져야만 멈추는 스노볼처럼요. 계속 커지는 구슬을 입에 물다가 턱이 빠진 게 셀 수 없이 많아지면서, 결국 양쪽 볼을 다 찢는 성형수술을 받지 않고서는 안되겠더라고요."
B의 목소리는 축 가라앉았지만, 약간의 떨림이 느껴졌다.
"도대체 무슨 소원을 빌려고, 이런 수술까지 받는 겁니까?"
B는 여행 가방을 한 번 슬쩍 본 뒤, 대답했다.
"이 소원을 들어주는 구슬을... 악마의 구슬을... 더 더 더 가질 거예요. 아마 이 구슬을 만든 존재는 인간의 턱 구조상 가장 최대로 벌릴 수 있는 사이즈까지 커지게 구슬을 만들었을 거예요. 지금의 사이즈가 최대이겠죠. 최대 사이즈 구슬에 걸맞은 소원이라면, 작은 사이즈 구슬 1개 정도는 더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만약 구슬을 받게 되면, 기자님도 드릴게요."
흠, 이제는 부장님의 눈총을 받는 게 더 따듯하겠군. 적어도 부장님은 빨간 마스크처럼 내 입을 찢지는 않을 테니까.
"아니요. 괜찮습니다. 죄송합니다만, 다음 일정이 있어서 여기까지 들어야 될 것 같네요."
나는 남은 커피를 한입에 쭉 빨아마신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B도 별말 없이 자연스레 일어섰다.
"기자님... 그래도 이렇게 만나주신 분은 기자님이 처음이에요. 그런데 혹시 괜찮으시면 커피 1잔만 사주실 수 있나요? 새로운 구슬을 받아서 소원을 빌면 꼭 기자님을 위한 소원을 빌게요."
이젠 내가 구슬로 보이나 보다.
어릴때 재밌게 봤던 미드 '로스트 룸'의 등장인물인 '크로이펠츠'는 특수한 사건으로 생긴 동전의 능력을 이용해 죽은 아들을 강제로 살려놨다.
내 기억으로는 동전을 입에 무는 것으로 아들을 실체화 했는데,
거기서 소원을 이루는 방법으로 입에 무는 요소를
재밌게 본 '강철의 연금술사'의 '등가교환의 법칙' 요소를 추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