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13
인간 노화의 비밀이 밝혀진 지 100년, 그 기술이 상용화된 지 80년이 지난 어느 먼 미래. 분명 어릴 때 배운 역사 과목에서 사람들은 늙고 병든 것이 두려워 종교라는 것까지 만들었다고 배웠다. 그런데 지금 내 눈앞의 저 시위대는 이렇게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우리에게 늙어감을 빼앗지 말라] [죽음을 대비할 시간을!]
웬만한 국가 하나쯤은 현금으로 구매할 수 있을 정도로 세계에서 제일 큰 바이오 회사인 '아크'가 벌거숭이 두더지쥐를 이용해 더 이상 사람이 늙지 않는 기술을 상용화하는데 성공했다. 선진국들 특히, 부유층들 사이에 그 기술을 사용하겠다고 돈을 퍼부은 덕택에 대중화된 그 기술로, '늙어감'과 관련된 모든 사회적 제도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사라진 것은 정년퇴직제도. 이미 늙어버린 사람은 어쩔 수 없지만 한창 젊을 때 그 기술의 혜택을 받은 사람이 늘어나면서 은퇴라는 개념이 사라졌다. 평생 일할 수 있는 늙지 않는 젊은이(Not old, Forever young)를 뜻하는 NOFY(일명 노피)들이 사회의 대부분을 차지하면서 노후를 위한 연금제도를 운용하는 국가가 거의 없어졌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보험과 의료제도 또한 노환, 질병보다는 사고 위주의 시스템으로 개편되었다.
늙지 않는 기술로 인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인구로 인해 식량위기, 에너지 위기를 우려했던 초기 여론과는 다르게 운 좋게도(대부분의 과학자들이 그렇게 평한다.) 화성과 달 식민지 개척 성공과 출산 제한 정책으로 식량과 에너지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1차 농업혁명>, <2차 산업혁명>, <3차 IT 혁명>, <4차 AI 혁명>을 뒤이어 현재는 <5차 DNA 혁명>이라고 불리면서 모든 인류가 행복할 일만 남았는데....
"인간에게 늙어갈 자유를!"
"우리에게서 휴식의 기회 제공하라!"
"죽음을 준비할 시간을!"
어떤 사건을 계기로 노피들 사이에서 영원한 젊음에 대한 회의감이 돌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늙지 않으면서 신체의 젊음을 유지하는 것에 비해, 인간의 정신이 이 젊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자살률이 급속도로 늘기 시작했다. 늙지 않아 은퇴가 사라지면서 평생 일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 노화와 질병이 사라지면서 평균 수명이 급격하게 늘었지만, 죽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젊은 상태로 갑작스러운 사망이 잇따른 것이다. 노화와 질병으로 고통받으면서도 대신 죽음을 준비할 수 있었던 이전 세대와 달리, 죽음 자체를 겪어보기도 전에 죽음을 맞는 노피들이 많아졌다. '영원한 젊음'을 반대하는 노피들은 이 기술을 저주라고 불렀다.
"이 선 넘지 못하게 해! 거기 정신 똑바로 안 차리나! 이 시위 언제까지라고 했지?"
"일단 집회 신고 시간까지 앞으로 1시간 남았습니다."
"아이고, 올해 반노피 시위만 3월도 안 지났는데 30번이 넘네. 나 죽겠다."
"과로사로 죽는 사람 안 나온 지가 언젠데 죽는다 타령이십니까?"
"멸종된 줄 알았던 과로사로 죽는 사람, 100년 만에 발견돼 충격! 내일 뉴스 헤드라인이다. 크크크."
반노피 세력과 여론이 많아지자 정부는 한쪽으로는 반노피 시위를 통제하는 '채찍'을, 다른 한쪽으로는 노피들이 휴식을 취하고 죽음을 준비할 수 있도록 '육아휴직'처럼 일명 '죽음 휴가'를 의무적으로 부여했다. 나도 얼마 전까지 1차 '죽음 휴가'를 다녀온 후 복귀했다.
"마지막 교대시간입니다. 들어가서 쉽시다."
나는 얼굴 보호대를 벗으면서 시위대를 막고 있던 버스 뒤로 넘어갔다. 선임이 나에게 어깨동무를 하면서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친다 지쳐, 나도 죽음 휴가 나 한 번 다녀올까. 아 너 얼마 전에 1차 죽음 휴가 다녀왔지? 뭐 했냐?"
"1차 죽음 휴가라서 위에서 시킨 대로 교육 좀 듣고 하고 끝이었습니다. 눈 깜짝할 새 가더라고요."
"내가 저번 죽음 휴가 때 뭐 했더라... 유언장 쓰고, 묘비명과 묘지 정하고, 유산상속 절차 정하고... 아 너도 그거 있었냐? 그 그 뭐더라..."
"톤틴연금말씀이십니까?"
"어 맞아, 톤틴인지 도다리인지, 아무튼 매년 살아있는 사람한테만 연금을 죽고, 받을 사람이 죽을 때마다 남은 사람이 받는 금액이 많아진다고 했던가?"
"네 맞습니다. 은퇴가 업어져서 퇴직금도 없는 마당에 평생 일하기도 싫긴 한데, 지금 당장 낼 돈도 없어서 가입은 안 했습니다. "
"나도 상품 파는 것 같아서 안 하긴 했는데..., 뭐 필요하면 나중에 들지 뭐. 시위대 해산까지 푹 쉬고 난 한 숨 잘 테니까 간부 오면 깨워주고. 그럼 수고!"
선임은 추운지 버스 안으로 훅 들어갔고, 나는 주머니에서 막대사탕을 하나 꺼내 물었다. 예전에는 그 기술로 암에 걸리지 않는다고 해서 담배를 마음껏 폈었지만, 그래도 괜스레 꺼림칙한 마음이 들어 1년 전부터 담배를 끊었다.
'보자, 내 나이가 이제 만으로 85살. 100년 전이었으면 주름살 가득한 얼굴에 운이 좋으면 지팡이, 운 나쁘면 호흡기 꽂고 병원 침대에 있을 나이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 그런데 겉모습은 수술을 받았던 25살. 85세에 1차 죽음 휴가, 15년 뒤인 100세에 2차 죽음 휴가. 거기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지, 아니면.....'
나는 안쪽 주머니에서 편지봉투를 꺼내, 봉투 겉에 적힌 글자를 바라봤다.
<내 죽음은 내가 결정하고 싶으신 분들을 위한 안락사 패키지>
1차 죽음 휴가를 다녀온 자들에게 배송되는 우편. 정부에서는 부정하고 있지만, 정부에서 일하고 있는 숨어있는 반노피들이 1차 죽음 휴가를 간 사람들 중 일부한테 보낸다는 소문이 있는 그 우편이었다. 흔한 광고지 형태이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다. '영원한 젊음'이 저주 같아 죽고 싶지만 스스로 죽기 두려운 사람들을 위해 반노피 세력들이 안락사를 제공하고, 원한다면 아래 번호로 연락하면 된다. 그러면 비밀 접선같이 일회용 전화번호로 연결되어 특정 장소에 서 픽업하여 데려간다. 그 뒤 그들의 소식은 알 수 없다.
나는 절반 정도 녹은 막대사탕을 아작아작 씹어먹은 뒤, 막대기를 바닥에 휙 뱉었다. 내 뒤 버스 너머로 반노피 시위대의 구호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인간에게 죽음을 준비할 자유를!"
"영원한 젊음은 축복이 아닌 저주다!"
그리고 다음으로 들린 구호를 신호로, 나는 봉투를 열지 말지 마음을 정했다.
"늙고 죽음 또한 내가 선택한 길이다! 그 누구도 나에게서 빼앗아갈 권리는 없다!"
출근 준비하면서 과학 팟캐스트를 듣는데, 벌거숭이 두더지쥐 내용을 듣게 되었다.
벌거숭이 두더지쥐는 인간 수명으로 비교했을 때 10배 넘는 수명을 가지고 있고, 암에 걸리지도 않는다고 한다. 사고가 아니라면 늙지도 않아서 죽을 때는 젊은 상태로 갑자기 죽는다. 그래서 노화를 연구하는 곳에서는 이 생물을 주로 연구한다고 한다.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945595&cid=43667&categoryId=43667
인간은 늘 불로장생을 꿈꾼다. 영원한 생명이 아닌 영원한 젊음을. 그래서 만약 인간이 불로장생에 성공한다면?
늙지 않고, 병들지 않는 젊은이들만 사는 세상에서 개인과 사회는 어떻게 움직일까라고 상상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