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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Sep 05. 2022

'이카이노' 없이는 '이쿠노 코리아타운'도 없다.

오사카, 코리아타운, 재일동포

오사카총영사(2018.6~2021.6) 일을 끝내고 돌아온 지 어느덧 1년이 쑥 지나갔다. 시간도 꽤 흘렀고 멀리 떨어져 있는 탓에 총영사 시절 오사카의 기억이 가물가물 멀어지고 있지만, 가끔 새로운 소식도 반갑게 접하고 있다.

그 중에서 제일 희소식이 일본 안에서 재일동포들이 가장 밀집해 거주하고 있는 오사카의 이쿠노구 코리아타운에 관한 것이다. 내가 총영사로 일하면서 오사카를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꼭 들려봐야 할 곳"으로 추천할 정도로, 애정을 많이 가지고 있던 장소다.

내가 귀국한 뒤 이곳에서 몇 개의 괄목할 만한 변화랄까, 움직임이 일고 있다. 하나는 코리아타운 안에 '오사카 코리아타운 역사자료관'을 만들자는 운동이다. 또 하나는 코리아타운 안에 있다가 지난해 4월 폐교된 미유키모리소학교 터를 '이쿠노 코-라이브스 파크(Ikuno Co-lives Park, 약칭 이쿠파 IKUPA)로 꾸며 다문화공생 발신 거점으로 만드는 계획이다. 

먼저 역사자료관은 이곳을 기반으로 성공한 재일동포 대표 기업인 도코야마물산의 전 회장이었던 홍성익(화가)씨가 주도하고 있다. 2023년 개관을 목표로 한일의 유지들이 '일반사단법인 코리아타운 역사자료관'을 구성해, 설립자금 모금 등 활발한 준비작업을 하고 있다. 법인이 발표한 설립 취지문을 보면, "코리아타운의 토대가 된 이카이노의 역사는, 한반도와 일본 사이에서 태어난 다양한 흐름이 고대로부터 차곡차곡 쌓여 현재 이쿠노구에서의 다문화공생 마을 만들기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20세기 이후의 역사는, 한반도와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역사가 여기 이쿠노 코리아타운에 집약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라고 자료관의 필요성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홍성익씨의 아버지가 이곳에 개설한 반가식공방(반가쇼쿠코보) 20주년에  맞춰 2023년에 역사자료관을 개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운동을 더욱 키워 '재일동포 역사기념관'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옛 이름 이카이노, 지금 이름 이쿠노야말로 재일동포 역사 100년의 애환과 발전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마침 내년은 제주와 오사카를 잇는 뱃길인 기미가요마루(군대환)가 취항한 지 꼭 100년이 되는 해다. 반가쇼쿠코보 20년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겠지만 기미가요마루 취항 100년이 훨씬 역사적으로 의미가 크므로 그것을 앞세우는 게 좋지 않을까 본다. 이런 나의 생각은 서울대 일본연구소가 발행하는 <관정일본리뷰>에도 기고한 바 있다.(관정일본리뷰 제55호, 6월 29일자)

물론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기 때문에, 지금 시동을 건 역사 자료관이라도 성공을 거두기 바란다. 이를 위해 한국에 있는 사람들도 모금운동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모금 참여 방법은 자료로 첨부했으니 참고 바란다.

또 하나는 미유키모리소학교 터를 다문화공생 발신지로 만드는 작업이다. 코리아타운의 한가운데 있는 이 학교는 전교생의  70% 정도가 한반도 뿌리를 가진 학생들이 다녔을 정도로 재일동포의 삶과 인연이 매우 깊다. 학교 바로 앞에는 오사카 제4 조선초급학교와 총련 오사카본부 건물도 있다.

이 학교가 폐교된 뒤 이 학교 터를 다문화공생을 위한 발신지로 삼겠다는 이 지역의 재일동포와 일본 시민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폐교 터가  올 가을부터 이쿠파크로 변신한다. 이쿠파크 쪽은 옛 학교 건물과 운동장을 다문화 공생을 위한 교육, 문화, 공연, 전시 상설 공간으로 삼는 계획이다. 이쿠파크가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가면 코리아타운에 재일동포 삶과 문화를 발신하는 가장 큰 규모의 상설 기지가 탄생하게 되는 셈이다. 기대가 매우 크다.

이런 소식을 접하면서 우연하게 읽게 된 책이 <오사카 재일조선인의 역사와 일상>(도서출판 선인, 김인덕 지음, 2020년 8월)이다. 저자인 김인덕씨는 오사카 출신의 재일동포가 전남 순천시에 세운 순천 청암대학교 교수로 있으면서 이 학교의 재일코리안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내가 서울대 일본연구소의 관정일본리뷰에서 쓴 글을 보고 연락이 와 만났더니, 이 책을 건네주었다. 이렇게 세상 인연은 돌고 돈다.

김 교수는 사학이 전공인데 한일현대사를 공부하면서 재일동포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2003년에는 1년간 교토에 있는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니치분켄)에서 방문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재일동포의 삶을 직접 경험하기 위해 굳이 멀리 있는 이쿠노 코리아타운에서 살았다. 이런 이유로 이쿠노 코리아타운의 삶을 누구보다 잘 안다.

이 책은 김 교수가 재일코리안연구소의 프로젝트를 하면서 2012년부터 5년 동안 쓴 9편의 글을 모아놓은 것이다. 9편의 글 주제는 모두 제 각각이지만  촛점은 모두 이카이노, 이쿠노 코리아타운에 맞춰져 있다. 대부분 사료를 바탕으로 쓴 글이지만 그곳에 직접 거주한 경험이 없고 깊은 애정이 없었다면 나올 수 없는 생생한 표현이 인상적이다. 그래서 그런지 책을 읽으면서 이카이노의 과거와 이쿠노의 현재가 연결되고 기록과 현장이 교차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제1장(최근 주거 집거지역의 특성과 사회, 경제적 상황-역사적으로 보는 이쿠노지역 재일코리안 연구)은 현재의 이쿠노 코리아타운이 발전해온 역사를 잘 정리해 놨다. 말하자면 이 책의 총론이다. 이쿠노 코리아타운이 도쿄 신오쿠, 도쿄 아라카와구의 미카와시마, 가와사키에 있는 코리아타운과 어떻게 다른지, 왜 오사카에 제주도 출신 동포가 많은지 등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또 이쿠노 코리아타운에 사는 동포들이 과거 겪었던 애환을 자료를 토대로 잘 보여주고 있다.

내가 이 책에서 처음으로  안 사실도 꽤 있는데, 일제시대에 서울 다음으로 조선 사람이 가장 많이 살았던 도시가 오사카였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최전성기 때 제주도민의 4분의 1이 오사카로 건너와 살았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것은 모르고 있었다. 10여년 전 몽골에 갔을 때 현지 사람으로부터 서울이 울란바타르에 이어 몽골 사람이 가장 많이 사는 도시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그런데 당시 조선사람에게 오사카가 지금 몽골 사람의 서울과 같은 의미라고 생각하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오사카 조선촌(이카이노, 코리아타운)은 조선식 먹거리의 유입 통로이면서 쓰루하시의 불고기 냄새가 상징하듯이 한국 음식의 원류적인 기능을 하고 있으며, 한국과 일본 먹거리가 공존하는 공간임이라는 점을 다룬 제3장(재일조선인의 일상 보기 : 먹거리를 중심으로)도 흥미 깊다. 제7장과 제8장에서는 김시종 시인의 시와 소설과 원수일의 '이카이노 이야기'를 통해 오사카 재일동포들의 인식과 삶을 돌아보고 있는데, 문학이 어떤 학술논문보다도 생생하고 입체적으로 사람들의 삶과 인식을 드러내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제9장(재일동포 민족교육 속 민족학급 운동)에서는 오사카 지역, 간사이 지역에서 유독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민족학급을 포함한 민족교육의 경위와 활동, 과제를 개괄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민족교육 문제는 총영사 시절에 내가 가장 힘을 쏟았던 분야 중 하나인 데 김 교수가 썼던 시기에 비해 지금은 더욱 많이 발전하고 다양해졌다는 것을 느꼈다. 이외에 인물과 저작물을 통해 오사카의 모습을 살펴 본 다른 글들도 모두 지금의 오사카 모습을 잘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은 점은 "하루 아침에 이뤄지는 역사는 없다"는 사실이다. 마늘 냄새, 돼지 냄새가 풍기고 일본인의 차별과 멸시에 시달리던 이카이노 시절이 없었다면, 과연 1년에 2백만명 이상의 일본인이 한국의 멋과 맛을 즐기러 찾아오는 지금의 다문화공생의 발신지 이쿠노 코리아타운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무호남 무국가'라는 말이 있듯이, '무이카이노 이쿠노 무코리아타운'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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