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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Dec 18. 2023

한말글과 외국말의 투쟁사

이대로, 한말글운동, 한글쓰기, 일본어, 영어 

한민족은 5천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민족의 역사가 5천년이란 것은 말의 역사도 5천년이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말은 있었지만 그것을 적는 글은 우리 것이 없었다. 


처음엔 중국 글자인 한자를 빌려 한말(우리말)을 적었다. 그러다 1500여 년 전인 신라시대 때 향찰, 이두, 구결을 만들어 썼다. 이것들은 한자의 소리와 새김, 뜻을 빌려 우리 말투로 글을 쓰는 표기법이다. 설총(665~?)이 만들었다는 이두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런 주체적인 움직임은 오래가지 못했다. 신라 제35대 경덕왕(재위 742~765)이 중국(당나라)의 것을 모방하는 한화정책을 강력하게 쓰면서 우리말과 정신과 문화가 당나라 속국처럼 변했다.


이렇게 정착한 한자글 문화를 혁명적으로 전복한 사건이 조선시대 4대 임금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1443년)다. 세종대왕이 한말을 한글로 적고 읽을 수 있도록 한글(훈민정음)을 만들었으나, 사회 구석구석까지 퍼지지는 못했다. 최만리 같은 한자 중시론자들이 한글 사용을 경시하고 핍박했다. 하지만 부녀자를 비롯한 서민층과 의식 있는 학자들의 노력으로 한글은 면면히 목숨을 이어왔다.


대한제국 말에는 순 한글 신문인 <독립신문>이 창간(1896년 4월 7일) 되는 등 한글 사용이 기운이 일어났지만, 이도 잠시 일제 식민지 시대가 시작되면서 한글 암흑시대를 맞았다. 그래도 주시경 선생을 비롯한 한글 운동가들의 노력으로 한글은 살아남았고, 드디어 해방을 맞았다. 


해방과 함께 한글도 일어섰다. 그러나 해방 이후 시간이 가면서 친일세력이 득세를 하듯이 한자 중시세력-한글 방해세력이 고개를 쳐들면서 한글도 다시 수모를 겪곤 했다. 지금도 한글 세력과 한글 훼방 세력의 대결이 끝나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우리말글 독립운동의 발자취>(지식산업사, 이대로 지음, 2008년 10월)는 '국어 독립운동군'을 자임하는 이대로 선생이 독립운동사를 한글운동 차원에서 조명한 책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한글운동에 뛰어들어 50년 이상 한글운동을 벌이고 있는 저자의 전기라고도 할 수 있다.


이대로 선생은 한글운동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한글 대통령'이라고 불릴 정도로 신뢰와 명성이 높다. 취직도 마다하고 오로지 한글 지키기, 빛내기 운동에만 모든 것을 바치며 매진해왔으니 그런 대접을 받을 만하다.  나는 <광주문화방송>의 한글 회사 이름 사용에 관심을 가지면서 자연스럽게 이 선생을 알게 됐다. 그래서 이 책도 읽게 됐다.


이 책을 읽으면, 한글의 수난사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거꾸로 말하면 끈질기게 발전해 온 한글의 투쟁사를 알 수 있다. 문자가 없던 고대 시대부터 한글날이 국경일로 제정되고 국어기본법이 제정된 2005년까지를 한글세력과 반한글 세력의 치열한 싸움을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흥미진진한 것은 이 선생이 직접 관여해온 1960년 이후 한글운동 대 반 한글운동 세력의 싸움이다. 일제 식민지 교육을 받은 학자, 관료, 정치인이 주로 한글 반대세력의 주축을 이룬 데 반해 한글 세력은 조선어학회의 맥을 잇는 최현배 선생을 비롯한 일부 학자와 지식인, 학생들이었다. 객관적으로 조직력과 자금력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 싸움이었지만, 한글 세력은 열정과 의지로 맞서 한글 반대세력의 공세를 저지하며 오늘날까지 왔다. 아직도 강고한 한글 반대, 억압 세력이 있지만 한글이 여기까지 오는 데는 이 선생과 같은 사람들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선생은 한글 반대세력의 대표로 김종필 전 국무총리, 이희승 전 서울대 교수, 남광우 전 서울대 교수, 국립국어원과 학술원, 포스코와 대한항공, 농심 등 재벌,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꼽는다. 역대 대통령 중에서는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이 대표적인 한글 억압 정책을 폈다.


반면,  해방 이후 초대 한글학회장을 맡았던 외솔 최현배 선생과 2대 회장 허웅 선생을 한글운동의 가장 선두에 놓는다. 그리고 그 뒤에 한글 기계화, 정보화에 앞장선 공병우 박사, 기독청년회 명예회장이었던 전택부 선생, 김동길 교수, 백기완 선생 등을 세운다. 지금 보면 이념적으로 같은 진영에 있기 어려워 보이는 사람이 한글 사랑에는 일치했다는 것이 흥미롭다.


저자인 이 선생은 한글운동에 평생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중국의 영향 아래 있는 때는 중국 글자(한문)를 섬기고, 일본의 식민지일 때는 일본말을 나라말로 섬기고, 이제 미국말까지 섬기는 것을 우리는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 책을 쓴 뒤 15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왕성하게 글로 행동으로 한글 지키기, 빛내기 운동을 하고 있다. 요즘엔 광화문 광장 앞에서 가짜 고증으로 만들어 건 한자 광화문 현판을 떼고 우리 문화의 자랑인 한글로 된 간판을 달 것을 요구하는 기자회견과 집회, 기고를 맹렬하게 하고 있다. 또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의 공동대표를 맡으며 한글 지킴이와 훼방꾼을 뽑아 알리는 활동을 20년 이상 계속하고 있다.


한자와 영어의 홍수 속에서 한글이 그나마 버티고 선전하고 있는 것이 이 선생과 같은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 덕분임을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됐다. 이 선생은 한글 지키기와 빛내기에 무엇보다 언론의 역할이 크다고 강조한다. 언론인의 필독서로 이 책을 감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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