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는 '저항 정신'

<필경사 바틀비>, <모비 딕>, 허먼 멜빌, 소설가, 소설

by 오태규

오랜만에 지인의 소개로 소설을 읽었다. 한국에서는 <백경>으로 더 알려진 <모비 딕>의 작가 허먼 멜빌이 쓴 단편 소설 <필경사 바틀비>(문학동네, 허먼 멜빌 지음, 공진호 옮김, 2011년)다. 참고로 '백경'은 '모비 딕'의 일본식 제목이다.


허먼 멜빌(1819~1891)은 지금이야 너대니얼 호손, 에드가 앨런 포와 함께 '미국 문학의 르네상스'를 이룬 대표 작가로 꼽히지만, 생존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대표작인 <모비 딕>도 출간 당시 3000부도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필경사는 멜빌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 헐값으로라도 글을 팔기로 하고 쓴 중편 소설이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배경은 미국 뉴욕의 월스트리트에 있는 변호사 사무실이다. 주인공 바틀비는 이 사무실에서 잘나가는 변호사(소설의 화자)에 고용돼 일하는, 소송 서류 등을 필사해 주는 필경사 중 한 명이다. 소설 내내 고용인인 변호사와 피고용인인 바틀비가 주고받는 언행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런데 필경사 바틀비의 언행이 기이하다. 변호사가 서류 필사를 시켜도 "나는 안 하는 것으로 선택하겠습니다"라고 하면서 거절한다. 변호사가 우체국 심부름을 시켜도 똑같이 "안 하는 것으로 선택하겠습니다"라는 말을 반복한다. 영어로는, "I prefer not to~"라는 투의 말이다. 그런데 이 말투가 묘하다. 'prefer to'는 원래 어떤 일이나 행동을 하고자 하는 의사를 표현할 때 쓰는 말인데, 뒤에 부정적인 일이나 행위를 붙임으로써 소극적인 거부를 하는 말로 바뀐다.


변호사가 일을 시키는데도 바틀비는 "안 하는 것으로 선택하겠습니다"라고 하면서 매번 거부하니, 변호사도 미칠 지경이다. 그래도 그를 동정하면서 내쫓지 않고 인내한다. 하지만 주위에서 바틀비에 대한 혹평이 쇄도하자, 변호사도 어쩔 수 없이 그와 결별하기로 한다. 변호사는 그가 사무실에서 떠나지 않으니까 아예 다른 곳으로 사무실을 이전한다. 이사 뒤에도 이전 사무실에 계속 떠나지 않던 바틀비는 건물주의 신고로 부랑자를 취급하는 구치소로 보내진다. 그는 거기서 식음을 폐하고 죽는다. 그가 죽은 뒤 그의 신상이 일부 알려진다. 그는 우체국에서 발신자와 수신자의 부재로 배달 불능이 된 우편물을 소각하는 일을 했었다.


소설을 다 읽어도 "안 하는 것으로 선택하겠습니다"라는 바틀비의 말투가 어떻게 나오게 된 것인지 알 길이 없다. 배달되지 않는 편지와 그의 어투가 연관이 있는지도 짐작하기 어렵다. '참 이상한 말투인데, 왜 그런 말을 쓰지'라고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문학가들은 역시 한 수 위인 것 같다. 소설가 김중혁은 "그 말투를 계속 듣고 있다 보면 짜증이 나고, 화가 난다. 더 듣다 보면 우습기까지 하다. 결국엔 그가 왜 그런 식으로 말하고 싶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타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아르헨티나의 거장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프란츠 카프카를 연상시킨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행동하기를 완강히 거부해서 사람들을 당혹하게 만든다. 그가 왜 그러는지 작가는 아무 설명도 하지 않지만 우리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연민까지 느낀다."라고 평했다. 두 소설가의 평을 나 나름대로 요약하면, 생각하게 만든다는 게 이 소설 가진 매력이자 힘이라는 뜻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의 해석이 더 설득력이 있게 다가온다. 안 교수는 그 말투에서 저항권과 불복종의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고 말한다. 배경이 자본주의의 심장인 월스트리트이고 화자가 그 제도를 법률적을 뒷받침하는 변호사라는 점, 필경사 바틀비가 계약에 기초한 합리적인 지시마저 거부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읽으면, 충분히 그런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윤석열의 내란 때 거리로 쏟아져 나온 장삼이사의 시민들, 21대 대통령선거의 투표장으로 몰려가는 유권자 행렬이 바로 '바틀비' 라는 생각이 든다. '너희가 짜놓은 판을 그대로 순순하게 따를 수 없다'라는 일반 시민의 저항과 불복종 정신이 그들을 광장으로, 투표장으로 끌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거장의 소설은 짧지만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100쪽 안팎의 얇은 책이니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볼 만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이준석은 '한국의 아이히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