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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wol Jan 03. 2024

내 집은 어디 있수꽈?

01. 집 구하기




쉼표와 같았던 잠깐의 제주 생활이 해를 넘기면서 제주 정착이라는 새로운 페이지를 열게 되었다. 정착의 시작은 무엇보다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것


제주에서의 집 구하기는 신구간* 시기에 입주 가능과 연세만 가능 이라는 알쏭달쏭한 퀴즈에 답을 찾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연세, 밖거리**, 신구간 입주... 육지에서는 도통 보기 힘든 집 관련 단어들과 보편적으로 쓰이는 중개 어플 이나 플랫폼, 부동산의 도움이 보통이지 않은 제주에서의 집 구하기 미션이 주어지고야 말았다


지금은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는 보통 손없는 날이라고 하는 풍습이 제주에는 신구간이라는 이름으로 일년에 딱 일주일정도 집중적으로 몰려있다. 그 기간을 이용해 이사도 하고, 집 수리, 대청소 등 집안 관리의 대소사를 해치운다. 그 풍습과 이어지는 것이 바로 연세다


신구간 시기에 입주해 1년 뒤 신구간 시기에 재계약 또는 이사를 하는 루틴이 이어져오며 월세나 전세가 아닌 1년치 세를 일괄 지불해버리는 연세가 보편적인 이유다


지금은 외지인도 많아지고 신축 건물도 많아지면서 신구간 입주가 필수는 아니지만, 여전히 신구간을 선호하는 사람도 많고 대체로 연세 지불을 원하는 곳도 많다. 그리하여 육지와는 다른 이사 시스템을 하나씩 배워가면서 상황과 조건을 고려해 나만의 제주 보금자리를 구해야 했다


이왕이면 부정적인 미신은 지키는게 마음이 편한지라 입주는 가능하면 신구간에 하기로 정하고, 보증금과 함께 일괄로 지불하면 1개월치 월세를 깎아주는 연세는 내 지갑 사정을 생각해 월세로


나의 제주 집 구하기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직장까지 대중교통으로 어려움없이 갈 수 있을 것  

제주에서 뚜벅이로 산다면 다들 놀라지만, 입도 5년차인 지금도 여전히 뚜벅이다. 장롱 면허도 아닌 무면허. 모두 불편하지 않냐고 물어보지만, 크고 기사 딸린 차를 탄다는 것은 참으로 편한 일이다. 물론 그에 따른 육체적, 시간적인 품은 들지만

2. 번화가가 아닌 한적한 동네일 것

직장이 제주 시내권임에도 불구하고 북적이는 생활권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인프라가 완벽하지 않은 제주에서 시내권을 벗어난다는 것은 그것과도 더 멀어진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조금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제주에 ‘있고’ 싶었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편의 시설은 있을 것

대형마트까지는 아니더라도 생필품을 쉽게 살 수 있는 곳, 편의점이나 농협이어도 좋으니 은행’같은' 것이 있는 곳. 한적한 동네를 원하는 것이지 아무 것도 없는 것을 원하는 것은 아니니까. 상상이 가질 않겠지만, 주변에 정말 아무 것도 없는 민가도 제주에는 여전히 많다는 것

4. 신축 건물일 것 

바닷가 근처의 집에 산다는 것이 참 제주 삶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바닷바람은 실로 어마무시하다. 순식간에 모든 것을 녹슬게 만든다. 또한, 구옥은 멋스럽지만 기름 보일러가  대부분이라 겨울 난방비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 그리고 자연을 좋아하고 곁에 두지만 벌레와 함께 동거하는 것은 열외이기 때문에


오일장 신문과 교차로 신문을 밤낮으로 열심히 뒤지다가 제주의 모든 것은 당근으로 통한다는 것을 새삼 느끼며, 직장까지 대중교통으로 어려움없이 갈 수 있는 한적한 동네에 적당한 편의시설이 있는 신축 건물을 만나게 된다


아래로 가면 옛 항구가 나오는 바닷가, 위로 가면 나무가 빽빽한 조용한 숲길이 나오는. 바닷가도 아닌 중산간도 아닌 그 중간 어디 쯤에, 버스가 다니는 큰 길이 밀접하지도 또 그렇다고 도보로 이동하기에 멀지도 않은 곳에 위치한 집이었다


주로 한달살이를 하러 온 외지인에게 집을 내어주었다는 주인은 직장으로 인해 1년 계약을 원하는 나를 꽤 반겼고, 관리비도 없고 수도요금도 포함되어 이미 시세보다 저렴한 월세를 조금 더 깎아주겠노라 그러니 어서 이 곳을 너의 보금자리로 만들라는 눈빛을 보냈다


이미 그곳으로 하겠다는 마음의 결론을 내고서도 한 번은 튕기는게 인지상정이지, 하며 생각해보겠다는 대답을 하고는 돌아서서 나왔다. 그리고 나는 근처에서 어둠이 내려앉는 시간까지 동네를 탐방하며 더 단단하게 내린 마음의 결론을 주인에게 전했다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상상도 하지 못하고, ‘이제 다 끝났다'는 홀가분한 마음만 간직한 채로 제주에서의 집 구하기의 기나긴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 신구간 : 24절기의 마지막 절기인 대한(大寒) 후 5일째부터 새로 시작하는 입춘(立春)이 되기 3일 전까지를 이른다. 이 시기에 인간의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신들이 임무 교대를 위해 하늘로 올라간다는 속설이 전해져 인간이 사는 지상에 하늘의 신들이 없는 기간인 ‘신구간(新舊間)’이라 부르며 이 기간에 집을 고치거나 이사하는 풍습이 전해져 오고있다

** 밖거리 : 바깥채를 뜻하는 제주 사투리. 제주의 전통 가옥은 안채인 안거리, 바깥채인 밖거리로 나뉘어 있다. 부모와 결혼한 자녀 부부 혹은 형제끼리 안거리, 밖거리를 나누어 각자의 살림을 꾸린다. 한 지붕 아래 두 가족은 텃밭과 마당을 공유하면서도 독립된 공간을 갖는다. 핵가족화된 현재는 안거리에 주인이 살며 밖거리만 세입자를 두는 형태가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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