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장 보기
오늘은 모월 2일.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히 장바구니와 현금을 챙기고 다시 한번 리스트를 확인하며 집을 나선다. 발걸음은 샐러드용 채소가 알맞게 떨어졌다는 지인과 함께 오늘의 목적지인 제주시민속오일장으로 향한다. 오일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는 각자 살 것보다 무엇을? 언제? 얼마큼? 먹을 것인지가 더 큰 관심사였다
제주시민속오일장은 매월 2일과 7일에 열리는 오일시장으로 전국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만큼 제주도민은 물론 제주를 찾은 관광객으로 시장 입구부터 북새통을 이룬다. 주차장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만큼 시장으로 뻗어있는 도로는 이미 자동차로 꽉 막혀있고, 귀가 따가울 정도로 경적의 향연을 지나고 나면 드디어 오일장 입성
도시에 살 때는 대부분 대형마트에서 직접 구매를 하거나 동네 슈퍼를 이용했었다. 실제로 물건을 보고 사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기도 하고 딱히 살 것이 없어도 어떤 제품이 있는지 구경하는 것도 꽤 좋아하는 편이라 배달 서비스보다는 직접 발품을 파는 일이 일상이었다. 하지만, 제주 전역을 통틀어도 서울 하나의 자치구보다 적은 대형마트나 슈퍼의 숫자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앞으로 생필품을 비롯해 식재료를 어떻게 사서 먹고 살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지게 만들었다
날의 제주시민속오일장 추천 스팟
1. 땅꼬분식
분식으로 건물을 지었다는 땅꼬분식. 떡볶이부터 튀김, 꽈배기를 먹다 보면 그 이야기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식사를 하기보다는 출출한 속을 가볍게 달래기 좋은 곳이다. 포장을 해가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지만 서서 먹거나 작게 마련된 취식 공간에서 먹는 게 가장 좋으며 꽈배기는 공장의 것처럼 쉴 새 없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갓 나온 것을 손에 꽉 쥐고 걸어 다니며 먹기 아주 안성맞춤이다.(함덕에서 한식 뷔페도 운영했었는데 지금은 아쉽게도 폐점)
2. 춘향이네
오일장 초입에 정식 매장도 운영하고 있는 춘향이네. 깔끔한 매장이 아닌 투박한 시장 구석 한편에서 먹는 게 제 맛. 식사 시간이 아니어도 웨이팅 줄이 한 바퀴, 두 바퀴… 줄은 길지만 일하시는 분들의 운영 스킬이 척척이라 로테이션이 아주 깔끔하다. 고기국수부터 비빔밥, 돔베고기 등 다양한 식사 및 안주 메뉴가 있고 그 가격 또한 제주 물가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하다. 무엇을 시키던 아주 탁월한 메뉴 선택이며 제주 막걸리 한 병까지 추가한다면 그 무엇이 부러울쏘냐
2. 할망**장터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를 보면 고두심, 김혜자 선생님이 시장에서 채소를 파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제주시민속오일장에는 그 연배의 할머니들만이 모여 판매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 그게 바로 ‘할망장터’다. 할망장터는 장이 서는 날, 만 65세 이상 할머니라면 누구나 자릿세를 지불하지 않고 먼저 자리를 잡아 직접 재배하거나 채취한 농산물, 수산물 등을 가지고 판매할 수 있다. 외국어보다 어렵다는 할망의 제주어 듣기 평가를 통과한 사람만이 흥정에 성공할 수 있고, 시장가보다 저렴한 값을 지불하고 물건을 얻을 수 있다
날의 세화해녀민속오일장 추천 스팟
1. 맛나분식
삼춘***, 얼마예요?라고 물으면 7천만 원, 자 거스름돈 3천만 원!이라고 호탕하게 웃으시는 사장님과 언제나 밝은 미소로 손님을 맞이하는 사장님의 따님이 함께 운영하는 곳. 문을 여는 새벽부터 테이블은 손님으로 북적이고 대충 장이 파하는 3시가 되기도 전에 모든 재료를 소진하고 일찌감치 문을 닫는 곳이다. 제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보통의 칼국수를 비롯해 큼직한 오징어 튀김과 수제 고추 튀김이 환상적이다
2. 광주김치
터프한 여사장님이 손님을 맞이하는 광주김치는, 명성에 걸맞게 모든 종류의 김치가 메인이다. 그중에서도 파김치는 날의 원픽이다. 전라도식으로 담근 파김치는 감칠맛이 좋아 파김치를 먹기 위해 그날의 식사 메뉴를 정할 정도다. 김치 외에도 다양한 반찬을 판매하는데 기본 손맛이 좋아서인지 살 때마다 실패한 적이 없다
3. 벨롱장****
세화해녀민속오일장은 세화 해변에 인접해 있는 곳에서 열리고 있는데, 이 날짜에 맞춰 해변에서는 ‘벨롱장'이라는 플리마켓이 함께 열린다. 제주 플리마켓의 원조격이라고 불리는 벨롱장은 핸드메이드 제품부터 꽤나 퀄리티가 좋은 다양한 제주 기념품을 만나볼 수 있어 정겨운 오일장과는 또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전 세계를 반 마비 상태로 만든 그 시기를 계기로 잠정 중단 후 현재는 깜깜무소식인 것이 조금 아쉬울 따름
그 물음에 스스로 찾은 답은, 생필품이나 공산품은 자칭 제주의 코스트코라는 제스코나 시간을 내서 몇 없는 대형마트를 이용하고 열리는 날짜를 체크해 오일시장을 찾거나 간단하게 필요한 식재료는 읍내 규모의 마을에는 꼭 있다는 하나로마트를 이용했다. 또, 종종 제주 토박이 지인들을 통해 제철 채소나 과일, 수산물을 무상으로 얻었다
멀리까지 나가지 않고 무겁게 들지 않아도 새벽에 집 문 앞까지 짜잔 하고 도착해 있는 편리함도 없고, 흔하게 판매하고 있는 수입 제품부터 신규 출시한 식품이나 제품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지만, 오일장 에는 지금 제주의 계절이 진열되어 있고 나는 그 계절을 장바구니에 담는다
오일장의 제철 채소는 모두 우영팟*****에서 나온 것이리라. 여전히 제주 사람들은 사시사철 채소를 키워내며 자급자족의 삶을 이어나가고 넘치는 것은 지인들과 나누거나 오일장에 내다 팔면서 경제 활동을 해나간다. 오일장에서 만나는 우영팟 작물로 계절이 오고 지나가는 것을 알아채고, 종종 제철을 맞은 채소와 과일을 지인에게 건네받을 때마다 계절을 실감한다
오늘도 추운 겨울을 맞아 시원하고 달콤한 제주 무를 한 입 베어 물며, 돌아오는 오일장에선 또 어떤 계절이 기다리고 있을지 디데이를 손꼽아 기다려 본다
* 왕 봥 갑서 : ‘와서 보고 가세요’라는 뜻의 제주 사투리
** 할망 : ‘할머니'라는 뜻의 제주 사투리
*** 삼춘 : 엉클을 뜻하는 삼촌이 아닌 친족과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웃어른을 부르는 제주 사투리
**** 벨롱 : ‘반짝'이라는 뜻의 제주 사투리
***** 우영팟 : ‘집 주위에 있는 텃밭'이라는 뜻의 제주 사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