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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wol Jan 03. 2024

나의 공인중개사사무소 답사기

01. 집 구하기




당시에도 직방 앱은 있었지만 허위 매물 정보가 많았고, 실거래가 같은 중요 정보는 부동산에 직접 방문해야만(방문한다 하더라도 중개인과 스무고개를 넘어야만 알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는 암묵의 룰이 있었다. 지금은 직방은 물론 네이버 부동산에도 소위 허위 매물은 사라지고 확인되고 검증된 매물 정보를 다양하게 파악할 수 있고, 아실이나 호갱노노 등으로 실제 중개업소를 방문해야만 알 수 있는 정보를 언제든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지만 그때는 무조건 맨 투 맨! 페이스 투 페이스! 였다. 이건 무슨 이야기냐하면...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얼굴에 나호락호락하지 않음, 나 절대 노 호락호락임, 나 호갱 아님, 아무튼 아님을 들숨에 한 번 날숨에 한 번 쉴 새 없이 티 내야 한단 소리였다


오더 에러 : 소라빵 주문 안 했는데요

그리고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첫 번째 공인중개사사무소에 입장하고 중개인의 빨간색 마티즈에 올라탄 후 도착한 대문 앞에서! 아! (러프하게) 원하는 가격대만 말해서는 안 되겠구나! 막상 도착한 집은 대문도 멀쩡하고 집도 멀쩡했는데 집으로 가는 길이 멀쩡하지가 않았다. 차로도 굽이 굽이 골목을 돌아 오르고 이만하면 서울역이 도로 내려다 보이겠다 생각이 드는 와중에 차가 멈췄다. 멈춘 곳이 매물로 나온 집인가 했는데 당연히 아니었고 계단을 좀 더 올라 다시 길을 굽이 굽이 휘어 올랐다. 오르는 동안 달팽이 집인가 생각했다. 아니다. 뱅글뱅글 골목을 돌아 걸으며 소라빵 모양이라고 생각했던가? 첫 번째 매물은 막상 도착해 보니 너무 컸다. 집이 일단 컸고, 방도 크고 거실도 컸다. 가격대엔 맞지만, 도보로만 이동하기엔 언덕이 심하고 골목이 너무 깊었다. 뱅뱅 돌아 올라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고 게다가 외길이었다. 첫 집을 나서면서 당연지사 패닉 <달팽이>가 자동으로 머릿속에 울렸다. 아… 집에 오는 길 진짜 진짜 길다! 길어도 너무 길다!


복덕방 : 복과 덕 좀 주실 수?

우리는 무작정 다시 평지로 걸었다. 언덕은 괜찮아도 산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연말이었고 매물 거래가 많은 시기가 아니어서 문 닫은 중개사사무소도 많았다. 그러다 다른 동에 이르러 아주 아주 예전 내가 아주 어릴 때, 외할아버지께서 운영하시던 복덕방과 비슷한 모양의 중개사사무소가 골목 한편에 세모꼴로 자리하고 있었다. 문 닫은 곳만 몇 군데 지나치다 발견해서였는지, 예전 외할아버지 복덕방과 닮은 모양새여서 그랬는지, 그것도 아니면 너무 추워서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그냥 들어갔다. 중개사 선생님도 외할아버지가 복덕방 운영하셨을 때와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할아버지셨는데 추워하는 우리에게 난로에 몸을 녹이라 하시고 커피도 타 마시라고 하셨다. 각박한 서울에서(아무도 각박하게 굴지 않았다...) 처음 마주한 온정이라고 해야 할까… 몸이 녹자 마음도 풀렸다. 중개사 선생님께 이것저것 여쭤보니 우리가 거주하기엔 이 동네보단 저 동네가 나을 거라며 큰길을 건너 가보라고 하셨다. 선생님께 감사하다고 거듭 인사하고 나온 뒤 얼마되지 않아, 화려한 공인중개사사무소를 세 번째로 만나게 된다


Counting star~ 밤하늘에 펄~다 좋은데. 그래서 누구시라고요?

이름도 화려했다. 화려한 이름의 공인중개사사무소 앞에 외제차 한 대, 국산차 한 대가 주차되어 있었고 사무소 안도 지금껏 방문했던 공인중개사사무소와 사뭇 달랐다. 되게 사무실 같았달까. 모니터가 정확하게 얼굴을 가리고 있어 끝내 얼굴을 볼 수 없던 중개사 한 분과, 우리를 마치 어제도 만난 것처럼 환대하는 중개사 한 분이 있었다. 큰길 건너 동네에 매물을 보고 싶다고 하니까 어디 보자, 매물이 지금 별로 없는 데, 로 시작해 마침 나와 있는 매물이 하나 딱 남았는데 지금 바로 계약하지 않으면 또 바로 나갈 매물이어서 결정을 빨리 해주셔야 한다 집주인 내외가 대학교 교수인데 거주하지는 않고 중개인인 내가 관리하고 나와 계약하면 된다는 이야기를 외제차 옆 국산차로 이동하는 와중에 그야말로 쉴 새 없이 이야기했다. 약간 알다가도 모를 이야기 같기도 하고 영 모르는 이야기 같기도 한 말을 하셨는데 일단 집은 내 마음에 들었다. 하얗고 관리가 잘 되어 보이는 신축 빌라였다. 원룸이긴 해도 꽤 크고 시원한 정사각형 모양이었다. 방 한편에 있는 창을 열어 보려고 하니 등 뒤에서 다소 다급하게 중개사가 외쳤다. 아! 뭐! 집에 있는 시간 별로 안될 테니까~ 직장인들이 다 그렇잖아요~ 아, 넵. 창문을 열어보니 맞은편 빌라 벽돌뷰고요. 잘 알겠습니다. 네넵... 사실 이 집은 다른 건 다 괜찮았는데 다소 높은 매물가와 집주인이 과연 누구인가... 에 대한 의문, 의심, 의구심 콜라보가 발현되는 바람에 탈락되었다


지쳤나요? 네니오

이후에 또 한 곳을 방문했지만 이곳 이야기는 차치하고, 도합 네 곳을 둘러본 우리는 지치기 시작했다. 꼭 오늘 계약을 해야 하는데. 마음의 조급함과 비례되는지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오늘 안되려나? 또 한 번 와야 하나? 갖은 생각을 하며 네 번째 공인중개사사무소를 등지고 걸어 내려오면서 한없이 복잡해졌다. 그러다 길 끝에 아까는 보지 못했던 공인중개사사무소를 발견했다. 거리에 많은 것이 변화해도 우리는 이곳에 오래전부터 있었다, 는 아우라가 풍기는 곳이었다. 부부로 보이는 중개사가 컴퓨터를 나란히 보고 계셨다. 우리가 들어가 조건을 말하자, 벽에 걸린 지도를 보고 이쯤이면 좋겠다는 거네, 그렇죠? 하고, 지갑 형태의 휴대폰을 열더니 바로 전화를 걸어 그리로 지금 가도 되냐고 묻고 우리에게 말했다. 여기서 걸어가도 되죠? 얼마 안 걸려서요. 방금 우리가 보고 온 두 개의 매물이 있던 곳이었다. 골목도 같고, 들렀던 공인중개사사무소도 지나고, 언덕도 올랐다. 네 번째 본 매물의 골목이 깊었기 때문에 우리는 눈빛을 교환했다. 제발 더 골목은 아니어라, 골목은 아니어라, 골목은 아… 미쳐 세 번을 외우기도 전에 중개사가 말했다. 여기에요!


총 다섯 곳의 공인중개사사무소를 들렀고, 다섯 번만에 집을 찾았다. 우리가 내건 조건과 부합하는 집이었다. 완벽하진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은 집. 우리가 매물을 찾을 때, 꼭 필요한 필수 조건사항엔 없었지만, 지금까지도 부부 공인중개사가 운영하는 공인중개사사무소가 여전히 그곳에 자리하는 것이 이따금 어떤 위안을 주기도 한다. 험난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미쳐 그곳들을 지나지 않았더라면 만날 수 없었던 집이었던 것 같다. 다섯 곳의 공인중개사사무소와 여섯 분의 중개사를 거쳐, 집 구하기 원정대였던 우리가 찾은 바로 그 집. 다음 집은 어디가 될지 아직 모르지만, 나는 또 공인중개사사무소를 찾을 것만은 분명하다. 물론 이때보다는 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세포 하나하나 티 내지 않더라도 말이다. 손안에 직방과 네이버부동산이 있으니까. 알잘딱깔센으로 정보를 취하고 중개소를 방문하면 되니까. 뭐, 그렇게 하더라도 내 집을 단번에 찾기란 쉽지 않고, 또 어찌 됐건 내가 찾은 그 집이 복과 덕이 가득한 집이 되는 건 또 내 마음먹기 나름, 나 하기 나름 아니겠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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