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hwol Jan 23. 2024

나와 마타사와 흰 마들렌

03. 단골 카페




3일, 13일, 23일 이렇게 열흘에 한 번 연재하는 <별의별 소리> 이번 편은 <나의 단골 카페>입니다. 열흘이 왜 이렇게 빨리 돌아오는지. 호호호. 뒤돌아 보면 발등에 떨어져 있는 2일, 12일, 22일(조금 무서워요). 발등이 활활 타는 걸 보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이번 챕터는 나도 그렇고 날도 그렇고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았던 듯하다. 이유를 짐작하건대, 첫 번째 챕터와 두 번째 챕터는 어쩌면 나의 고유 경험을 돌아보고 기록할 수 있었다면, 단골 카페라는 것 그리고 카페라는 곳은 지금까지 경험해 온 바가 다양하고 가짓수는 넘쳐나며 게다가 나의 ‘단골’이라는 건 랭크가 쉴 새 없이 바뀔 수도 실제로 바뀌기도 하기 때문 아닐까? 허억헉...


시절별로도 좋아하는 카페가 변한다. 대학생 때는 대학가에 있는 카페에 장부 달아 놓은 사람처럼, 한 곳 밖에 모르는 바보처럼 점찍어 놓은 곳만 다녔다. 일단은 커피 맛이 내 입맛 기준에 맞아서 다니기 시작했는데 그 이후에는 카푸치노를 주문하면 위에 올라가는 시나몬 가루를 푸지게 준다거나(극호), 사장님이 개발하고 있는 메뉴라며 샌드위치를 플레이트째로 주신다거나, 동물에게도 프랜들리 한 카페여서 종종 귀여운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거나, 의자가 너무 편안하다거나, 음악이 너무 좋다거나 하는 것들


지금과 비교하면 이유가 나름 귀여운 것 같다. 사실, 요즘 내가 찾았던 카페들을 몇 군데 떠올려봐도 음악이 좋은 곳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어딜 가도 사람이 많고, 그 사람들이 모두 큰 소리로 대화하고, 나도 그중 한 명이기에 그 카페에서 음악을 틀어놨더라도 기억이 안나는 게 당연할지도. 광화문 광장 한가운데에도 좋아하는 카페가 있었는데, 아늑한 분위기와는 다르게 카페에 들어서면 온통 고요 속의 외침을 수행하는 사람들뿐이다. 바로 옆, 바로 앞사람과의 대화조차 쉽지 않아 입 모양을 바르게 해 대화를 해야 하는 지경이니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목이 쉬는 경험을 몇 번하고는 그 카페에 다시 가는 것을 포기했다


우연히 알게 되었다. 평소 구독하던 블로거가 경의선 숲길을 따라 걷다 가오픈 기간인 카페를 발견했다, 고 했다. 이후 가오픈 기간을 지나 오픈을 하고 나서도 자주 찾는다, 는 곳이었다. 경의선 숲길은 나도 종종 산책을 가는 곳이었다. 경의선 숲길을 사이에 두고 가게들이 많긴 했지만 가보고 싶던 곳은 딱히 없었는데 궁금했다. 그 궁금증을 직접 풀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은 날의 일이다. 지난해 여름, 오늘같이 한파 경보가 뜬 것과 비견하게 폭염 경보가 뜬 날이었다. 갑자기 그 카페가 생각났고 네이버 지도에 카페 이름을 입력했다. 마타사. 카페 마타사


지금껏 마타사가 경의선 숲길의 본격! 구간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마타사는 경의선 숲길이 시작되는 초입, 공덕역과 가까운 아파트 맞은편, 골목 초입 건물의 끝자락에 자리한 곳이다. 맞은편 횡단보도에 서면, 건물 외측 검은색 바탕에 흰색으로 쓰인 마타사라는 간판이 보인다. 챙겨간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들어간다. 밖은 지글지글 끓는데 카페 안은 에어컨 때문에 서늘하고, 느릿한 노래가 흐른다


고리타분한 표현이지만, 진짜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 든다. 경의선 숲길에서 많은 사람들과 그에 비례하는 개 친구들(나만 없어 고양이...)을 지나치며 파워 워킹으로 으쌰으쌰 걸어왔는데 처음 발을 들인 이곳엔 느릿한 노래와 시원한 바람이 가득 차 있다. 게다가 투명한 쇼케이스에 차곡차곡 놓인 마들렌, 퀸아망, 크루아상, 을 멍 때리며 보고 있으면 카페 구석에서 무언갈 또 만들던 사장님(으로 추측되는)이 쇼케이스를 황홀하게 구경하는 나를 가만히 구경, 아니 지켜보신다. 나는 홀린 듯이 퀸아망과 크루아상과 아이스 라테를 주문한다. 사장님이 갓 나온 크루아상 같은 온도로 묻는다. 쿠폰 드릴까요?


포장을 마치고 걸어왔던 길을 다시 걷는다. 아까는 걷는 지면이 용암이라도 흐르는 듯 뜨겁게 느껴졌는데 지금은 아니다. 손안에 하얀 봉투와 커피를 포장한 텀블러까지 들려있는데도 부대끼지 않는다. 물론 손에 땀이 조금 나서 빵 봉투 입구도 쪼그라들고 있긴 하지만. 쿠폰을 지갑 안에 넣고 숲길을 걷다 문득 떠오른다. 사장님은 내가 처음 방문한 걸 어떻게 아셨지? 카페 사장님들에게는 그런(?) 레이더가 있는 걸까? 나는 당연히, 아주 당연하게 쿠폰을 만들어 나왔다. 그 이후에도 마타사를 종종 방문해 포장을 하거나, 좋아하는 친구가 놀러 오면 내 가게도 아닌데 뿌듯해하면서 우선 데려간다거나, 멀리 친구를 보러 갈 때에도 마타사를 들러 구움 과자를 포장했다


어째, 사람들 보는 눈은 소름 끼치게 같은지 방문 빈도가 늘어갈 때마다 손님들도 늘어갔다. 마타사는 벽 한 쪽에 바 테이블과 바 체어 네다섯 개 만을 두고 있기에 카페 안에서 여유를 즐기며 혼자만의 대화를 하고 싶다거나, 소중한 사람과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면 평일 오픈 시간을 노리는 게 좋을 것 같다. 인기가 많아져도 섭섭하지 않은 이유는 동네 주민이기 때문에 나오는 여유로움이랄까, 는 몰라도 마타사는 꽤 오래 그곳에 있어줄 것 같다. 10평 정도 될까? 작은 공간에 나란히 자리한 바 테이블과, 바 체어에 앉아 뒤돌면 투명한 쇼케이스에 손이 닿을 정도(그렇다고 손을 대선 안됩니다)라거나, 작은 공간을 꽉 채우는 느릿한 음악 소리 같은 것들. 무엇보다 커피와 디저트가 끝내주게 맛꿀마기 때문에


이 글을 읽게 되는, 서울 공덕 경의선 숲길에 올 일이 있는 분들은 무조건, 올 일이 없는 분들은 이유를 만들어서, 이유가 없더라도 가볼 만한 그런 카페랍니다. 방문하시면 퀸아망 추천 드리고요. 보라색 꽃이 입혀진 흰 마들렌도 추천드립니다. 이상!







이전 05화 먹고 비우고 다시 채워니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