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hwol Jan 13. 2024

먹고 비우고 다시 채워니즘

02. 장 보기




장보기. 간단한 것 같지만 간단해지기까지 거의 산티아고 순례길(소인 아직 가보지 못하였읍니다)과 같은 고행의 로드를 견딘 자만이 고수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바로 그 장보기에 대해 별별소리 해 보자


장보기는 의외로 까다롭다. 본인의 생활 주기와 지향하는 식습관에 어느 정도 맞춰 놨다 싶으면 갑자기 잡히는 약속에 냉장고 안 익숙한 식재료 존재를 새카맣게 잊기도 하고, 인스타나 트위터에서 플로우를 타는 음식이나 재료에 호기심이 생겨 생경한 재료를 냅다 주문해 냉장고를 열고 어색하게 대면하기도 한다. 너 누구세요? 달? 아니 딜이었나?


그렇다. 지금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경험해 본 바 알잘딱깔센으로 우리 집 냉장고의 효율화를 위해선 빅 데이터가 필요했다. 1. 내가 지금 어떤 식습관을 지향하는가, 2. 집에서 음식을 소비하는 주기는 어떠한가, 3. 1과 2에 상응하는 식재료 구비를 위해 최적화된 장보기 방법은 무엇인가에 관한 빅 데이터가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다. 1번과 2번에 관해선 명확한 답이 나와 있었는데 문제는 3번에 관한 것이었다. 과연, 장을 어디서 어떻게 얼마큼 볼 것인가에 관한 일 말이다. 선택지가 매우 다양하고, 선택을 한 후에도 분류가 필요하다


무슨 말이냐 하면, 우선 장보기 적합한 곳으로 집 주변 대형 마트 두 곳, 이마트와 롯데마트가 있다. 대형 마트까지 안 가더라도 채소 등을 판매하는 집 앞 슈퍼도 있다. 집 앞 슈퍼에 팔지 않는 채소나 과일이 필요할 땐 조금 더 걸어가면 (이용해 본 적 몇 번 없는) 시장도 있다. 여기도 저기도 가기 귀찮을 땐 역시 인터넷 주문이 와따 긴 하다. 주로 이용하는 앱은 초반엔 쓱, 지금은 컬리다. 이렇게 다양한데 무슨 선택을 하고 자시고 선택의 분류까지 필요하다 묻는다면. 당신, 99.99998%의 확률로다가 이렇게 되묻겠읍니다. 두 가지 경우겠지요? 집에서 밥을 안 ‘해’ 먹는 분이시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부모님과 함께 사는 귀족 영애! 가 아닐는지 조심스레 추측해 봅니다


지극히 내 경우에 따라 다년간의 빅 데이터로 픽스된 장보기 세분법은 이러하다


1. 이마트 : 신선한 재료는 무조건 발로 뛰어라 

콩나물을 주문했는데 짓물러 갈색으로 우는 콩나물을 본 적 있는가? 두부를 주문했는데 유통기한이 무려 내일까지인 것을 받아 본 적 있는가? 달걀 10알 중 3알이 무슨 일을 당했는지 알고 싶지만 알고 싶지 않았던 적 있는가? 그런 적이 한 번도 없다 해도 앞으로 일어날 테니 각오해라...라고 소리쳐 외치고 싶다. 채소나 육류 등 신선 식품을 앱으로 주문하고 당황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깻잎 한 장 들쳐보니 나머지 여덟 장이 손바닥 보다 작은 사이즈로 야무지게 숨어 있는 듯한 경험을 숨 쉬듯 한 후로는 채소와 신선식품은 번거롭더라도 이마트나 롯데마트를 직접 방문해서 이용한다. 특히 이마트를 자주 이용하는데 나만의 슬쩍쿵팁(이미 알 수 있음 주의)을 털어 보자면 <신선보장>으로 구입한 제품이 신선하지 않거나 맛이 떨어질 경우 환불해주기도 하고, 적당한 양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특화된 <990원> 채소의 양이나 퀄리티가 좋고, 특히 <유기농 코너>에 진열된 제품의 맛과 퀄리티, 간혹 가격까지 일반 매대보다 저렴한 경우가 있어 장 볼 때 필수로 체크한다


2. 쓱 : 나를 홀리는 그 이름, 1+1

내게 쓱을 빼놓고 먹고 사니즘을 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쓱(SSG)은 신세계에서 운영하는 장보기 배송 시스템으로 내가 원하는 시간에 맞춰 당일에도 받아 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급하게, 손쉽게 식재료나 생필품이 필요할 때 주로 이용하는데 특히 쓱 배송은 생필품 주문을 주로 이용하는 편이다. 부피가 큰 롤휴지나 무거운 세제, 헤어 제품, 비누 등 생필품은 어떻게 그렇게 한 날 한 시에 똑떨어지는지 별로 안 궁금하긴 해도 미스터리다. 매장에 가서 구매할 수도 있지만 집까지 들고 오는데 무리가 완전 있으므로 주로 앱으로 주문한다. 무게 때문인 탓도 있지만,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일반 슈퍼보다 할인률이 높기도 하고 꽤 자주 1+1 행사를 하기 때문에 야무지게 이용하면 생활에 도움이 된다


3. 컬리 : 9,000 원 쿠폰? 어림도 없지. 11,000 원 쿠폰이여, 내게 오라

컬리는 쓱에 비해 당일에 배송받을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 점을 상쇄시키고도 남을 새벽배송을 강점으로 내세운 장보기 배달 어플이다. 당일 오후 11시까지 주문을 완료하면 늦어도 다음 날 아침 7시까지는 문 앞에 배송이 완료돼 있다. 컬리의 장점은 쓱에는 없는 핫한 오프라인 매장의 음식이나 밀키트가 다양하게 입점되어 있다는 것과 흔히 해외배송으로 직구나 구매대행을 통해 구입해야만 했던 식료품 등이 입점돼 있다는 점인데 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점보다 컬리 최대 강점이 무작위(가 당연히 아니겠지만)로 날아오는 쿠폰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4,000 원 쿠폰, 7,000 원 쿠폰, 9,000 원 쿠폰 등 다양하지만 그 무엇보다 매력적인 건 11,000 원 쿠폰이다. 물론 배송 합계 금액이 50,000 원 가량을 초과해야 사용할 수 있는 쿠폰이긴 한데. 컬리에서만 판매하는 제품들로 장바구니를 채워놨다가 11,000 원 쿠폰이 들어왔다는 알림이 오면 바로 주문을 때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나는 주로 위 세 가지 방법으로 장보기를 활용한다. 직접 발로 뛰어 신선한 재료를 미리 준비해 가져간 장바구니에 차곡차곡 담는 기쁨, 1+1 세일을 기다렸다가 필요한 생필품을 앱 장바구니에 담는 기쁨, 궁금했던 해외 제품을 만원 가량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할인해 바로 다음날 새벽에 마주하는 기쁨. 이 모든 품으로 오는 기쁨은 오로지 나만을 위한 것이다. 그 누구도 아닌, 나를 먹고살아 움직이게 하는 품을 최소로, 그 기쁨을 최대로 하는 자력의 메커니즘을 나는 즐긴다. 언제는 바쁘고, 때로는 귀찮고, 가끔은 우울해서 장보기를 유기하면 나를 유기하는 기분까지 들기도 한다. 냉장고를 열면 달걀 10알이 빼곡히 있고, 주방 찬장을 열면 키친타월과 아직 사용하기 전인 세제가 있고, 욕실 수납함을 열면 1+1으로 미리 구입한 치약과 비누가 가지런하다. 모든 것이 동시에 똑떨어지기에, 동시에 낙하하는 것 중 나를 포함시키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장을 본다. 비웠다면 부지런히 채워야겠지. 채웠다면 부지런히 비우면 된다. 장보기는 다름 아닌 나를 채우고, 나를 단련하는 일, 나를 바로 보는 일 이기 때문에 어쩐지 소홀할 수가 없다








이전 04화 왕 봥 갑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