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맛집
은근히 먹을 곳이 없다. 인스타나 트위터에서 활황세를 타고 있는 곳에 가서 오픈런해 보기도 여러 번. 오픈 두 시간, 세 시간 전 입장 하기 위해 줄 서는 것은 예사. 입장은 고사하고 입장하기 위한 줄을 위한 줄 때문에 기다려보기도 했다. 결과는 어떠했나. 기억에 남는 집은 글쎄. SNS에서 극찬하던 사진과 실물은 판이하게 다르고 맛 역시 기대에 못 미치는 게 수 없었다. 밀려드는 사람들로 편하게 먹지 못하는 건 물론, 밈으로 유행했던 맛집 기본 요건인 ‘-하면 안 되세요’ 여러 개가 규칙인 가게도 많았다. 그러니 목으로 음식이 넘어가는 건지 뭔지. 뒤통수에 꽂히는 시선과 어느 기숙사보다 삼엄한 규칙에 등 한 번 쫙 못 펴고 후루룩 마신 적이 여러 번. 그래서 무슨 결론에 도달했냐 하면, 1. 웨이팅 심한 2. 공간이 협소한 3. 개인 사업장은…! 나중에 갈래! 아주 아주 아주 나중에!
그래도 먹을 곳은 필요하다. 내 기분에 의해서도 필요하고, 무엇보다 누군가 서울에 놀러 온다면 ‘-동 맛집’ ‘-동 오빠랑’등 갖은 방법으로 검색 후 휴대폰 스크롤을 무한대로 내리지 않아도 될! 웨이팅도 심하지 않고, 규칙도 심하지 않은 곳이! 친애하는 벗들과 시간을 쪼개고 부러 들여 만나는데, 그런 귀한 시간을 더 이상 길 위에서 허비하고 싶지도, 막상 가게에 들어가서 쫓기듯 식사만 호로록 마시고 나오고 싶지도 않은 것이다
요즘같이 바바현사(풀이: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서 호사스러운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식사란 그런 거 아닐까? 혼자보단 여럿이 좋고, 먹는 것도 좋지만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누며 대화도 나누는, 배도 부르고 입도 바쁜 시간이. 이런 귀한 시간을 쓰기 위해 나만의 메모장에 리스트업 된 곳들이 몇 있다. 앞서 협소한 곳은 나중에 가겠다고 일갈했지만 리스트에는 협소한 개인 가게도 있긴 하다. 너무 협소한데 운영 방식까지 타이트해서(한 타임에 최대 4명만 수용한다든가) 한 번 방문한 나도 이곳의 수입성이 걱정되고, 다음에 올 때 사라지는 거 아닌가 걱정되기도 하지만 다행히 아직 건재한 곳이다. 내가 이번 챕터에 소개하고 싶은 곳은 일단 그곳은 아니고 1. 프랜차이즈이고 2. 접근성도 나쁘지 않으며 3. 운영방식이 까다롭지 않고 4. 일단 맛있는 곳이다. 거기가 어디냐면
땅에 발이 닿기만 해도 기운이 차 오르는 곳, 광화문 한가운데 세종문화회관에 위치한 <오리지널 팬케이크 하우스>다. 이곳은 ‘1953년 미국 포틀랜드에서 문을 연 정통 미국식 팬케이크 전문점’이다. 이름에서 미국 냄새가 물씬 나는 것처럼 가게 인테리어 또한 우리가 미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보던 전형적인 다이닝의 ‘그것’(그것을 풀이하려고 하니 딱히 설명할 여구가 생각나지 않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과 제 생각이 ‘그것’의 어딘가와 닿아 있길 부디 바라며!)과 닮아 있다. 이곳 또한 프랜차이즈이기 때문에 광화문에만 있는 것은 아니어서 서울 어디에서든 편한 지점에 가면 될 것 같다, 지만 나는 세종문화회관 지점을 추천하고 싶긴 하다
일단 <오리지널 팬케이크 하우스> 세종문화회관점은 넓다. 주말에 이용해 봤는데, 주말이라 웨이팅이 상당할 것이라는 생각과는 다르게 점심 직전 방문한 이곳의 웨이팅은 그리 삼엄하지 않았다. 풀어쓰자면 할만한 정도였다는 이야기. 15분 내외로 바로 입장할 수 있었다. 들어가 보니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일단 내부의 테이블이 충분해 보였다. 가족단위가 사용하기 용이한 4인석이 제일 많았지만, 광화문 대로를 바라볼 수 있는 창가엔 2인석도 마련돼 있었고, 무엇보다 이용시간이 있어 테이블도 어느 정도 순환되는 것 같았다
메뉴는 팬케이크 하우스답게 팬케이크 메뉴가 주를 이루고 주력이지만, 팬케이크 외에도 샐러드나 식사류의 종류도 다양하고 옵션도 꽤나 다양해서 신중히 오더하고 즐기는 재미 또한 크다. 특히 팬케이크 옵션이 가장 많은데, 빵은 같아도 위에 토핑 되는 재료나 스프레드가 다양하다. 일단 기본 팬케이크를 주문하면 내가 집에서 골백번 부쳐대도 절대 나오지 않을 동그랗고 보기 좋게 토스트 된 팬케이크가 한 장, 두 장, 세 장도 아니고 무려 여섯 장 나온다. 내가 내 입으로 주문을 했대도 막상 테이블에 서빙 돼 곱게 포개진 여섯 장의 팬케이크를 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 그리고 생각한다. 저걸 어떻게 다 먹어...
물론 이 글을 읽게 되시는 여러분이나 <오리지널 팬케이크 하우스>를 직접 방문하기 이전의 저는 위와 같은 생각을 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전 다릅니다. 과거의 저와 현재의 저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여섯 장도 우습고 웨이터! 여기 한 판 더 줍쇼!를 외치게 될 테니까요. 과장이 심했나? 물론 나는 지독한 빵순이 본태 빵순이이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일지도. 2008? 2009년 경 김진환 제과점과 오월의 종, 브레드05와 폴앤폴리나가 홍대와 신촌 일대에 포진했을 당시 <서울 빵지순례>를 직접 기획해 한글로 네이버 지도를 그림 삽입 후, 출력. 모든 곳을 하루에 휩쓸었던 빵력(?)이 있기 때문에 팬케이크 여섯 장은 우습지… 아, 아니. 우습습죠!
나처럼 빵이 주식이 되어도 건강상태 이상 말고는 다른 이상은 전혀 없는 분들은 <오리지널 팬케이크 하우스>가 맛과 멋을 둘 다 취하고 기분 좋게 나설 수 있는 광화문 하늘 아래 외외로, 은근히 없는 맛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공간이 주는 약간의 소란함과, 따로 부탁하지 않아도 쉴 새 없이 통통한 잔(뇌피셜이긴 하지만 커피잔 컬러를 주문한 사람 옷 컬러에 맞춰 서브하는 듯 하다)에 채워주는 커피와 팬케이크에 곁들이는 시럽이 달지 않아 곁들이는 게 아니라 부어대도 괜찮은 이곳과 나는 단 한 번의 방문으로 사랑에 빠져 버렸다. 그리고 나만의 맛집 리스트 상위에 당분간 계속 랭크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오리지널 팬케이크 하우스> 이야기를 더 하고 싶지만, 더 할 수 있지만 이미 스크롤이 충분히 짧퉁해진 것 같으니 여기서 줄여야겠죠. 앞으로 서울에 놀러 올 친구들아, 팬케이크 여섯 장 시럽 콸콸콸 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