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오작가 Jul 29. 2022

고양아, 아프지마

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을 보면서 너무 때로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동물이 가족인 것까진 이해하지만 뭐랄까, 사람보다 때로 더 우선이 되는 것 같을 때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이 마음 때문인지, 가족들을 부양하느라 어려웠던 마음 때문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동물을 키우더라도 난 동물보다 우리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루미를 키우면서도 나는 처음부터 마음을 다 열지 않았다. 안방을 열지 않고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할까를 먼저 생각했었고, 여행을 갈 땐 어떻게 해야할까를 고민했었으니까. 안방을 열게 된 것도 계속해서 루미를 못 들어오게 하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침대 밑 바닥 청소를 하고 안방을 열어줬다. 문을 열어준 날부터 루미는 언제나 우리 옆에서 잠을 잤다. 루미는 사람을 좋아해서 언제나 사람이 있는 근처에서 자거나 놀았다. 

닫아놨던 방문을 하나씩 열어주는 만큼 내 마음도 조금씩 열렸던 것 같다.     


루미는 보통 우리 눈에 보이는 곳에 있었지만 가끔 보이지 않으면 찾는다. 

“루미야~ 루미야~” 하고 부르면 루미는 어디선가 자다가 눈을 꿈뻑거리면서 걸어나온다. 아이들은 공부를 하다가 힘들 때 루미를 안으며 힘을 얻는다. 외출하고 들어오면 총총 뛰어온다. 간식을 주면서 “앉아” 하면 앉고, “손”하면 손을 준다. 장난감을 흔들면 맹렬하게 뛰어오르고 인형에게 꾹꾹이를 해준다. 우리집은 1층이라 집에서 탁구를 치곤 하는데 그럴 때면 옆에서 주의깊게 보다가 공을 놓치면 재빠르게 달려가서 공을 치고 논다. 루미가 없던 날이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루미는 우리와 한 가족이 되고 있다.      




아직 어린 루미는 예방접종을 하느라 한 달에 한 번씩 병원에 갔다. 루미는 부정교합이 있어서인지 병원에 가면 좋은 이야기보단 걱정되는 이야기를 듣곤 했다. 동물 병원에 루미를 데리고 가는 건 아이들이 어릴 때 병원에 데려가는 것과 똑같았다. 조금만 안 좋은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무겁고 두근거린다. 폭풍검색은 덤이다.     

이번엔 예방접종을 맞고 항체가 잘 형성되었는지를 검사하러 갔다. 병원을 알아서인지 선생님을 만나면 요동치던 루미가 이번에 선생님이 꼬옥 안으니 가만히 있었다. 이제 선생님이 좀 편안해졌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던 순간,     


“어? 요즘 밥을 잘 안 먹나요?”

“네? 음... 요즘 캔을 줘도 바로 안 먹는 날이 좀 있긴 했었는데요..”     


선생님의 질문에 급히 머릿속에서 최근 며칠의 필름을 돌려본다. 루미 밥은 늘 둘째 아이가 챙겨주는 터라 둘째가 아침에 일어나면 루미는 꼬리를 세우고 총총 따라다닌다. 밥을 달라고 야옹거린다. 아이는 눈도 잘 못  뜬 채로 캔을 따서 그릇에 담아준다. ‘땡’ 종소리를 치면서 밥을 주면 루미는 허겁지겁 밥을 먹는다. 이것이 우리의 일상이었다.     


그런데 요즘 루미가 밥을 줘도 시큰둥했다. 밥을 준비해줄 때까진 야옹거리며 따라다니는 것이 똑같은데 주고나면 허겁지겁은 커녕 쓱 쳐다보고 다른 곳으로 가버리는 날들이 많았다. 조금 있다 보면 습식사료를 먹긴 했는데 그러고 보니 건식사료는 아예 안 먹은지 2-3일 됐다.      

선생님은 아주 조곤조곤 무서운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 정도 어린 고양이답지 않게 움직임이 적은 것 같아요. 지금 쑥쑥 커야하는데 몸무게가 줄면 안 돼요. 어떤 이유든지 몸무게가 주는 건 별로 안 좋은 거예요.”

“아.. 많이 큰 줄 알았는데 아닌가봐요.”

“몸무게를 재보니 한달 전보다 100g이 줄었어요.”     

“너무 더워서 입맛이 없는 건 아닐까요?”

“아니예요. 그렇다고 이렇게 되진 않아요. 조심스럽긴 하지만 혹시나 복막염이 생기면 아이들이 잘 못 먹고 체중이 주는 경우가 있어요.”     


복막염이 뭔지 처음 들은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들었다. 선생님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한참 해주셨다.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제가 걱정이 많은 편이예요. 걱정은 제가 할 테니 보호자님은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다음 달에 오시면 몸무게 체크 할 테니 아이 먹는 거 잘 지켜봐주세요.”     


떨떠름한 마음으로 루미를 데리고 집에 왔다. 집에 와서 고양이 복막염을 쳐봤다. 세상에나. 이건 너무 무서운 병이었다. 게다가 고양이 복막염은 치사율 100%라고까지 나와있었다. 습식과 건식이 있는데, 습식은 1-2달 안에 사망할 수도 있고 건식은 길면 1년 이내에 사망할 수 있다고 나왔다. 엄청난 걱정에 휩싸여 가슴이 두근거렸다.      


난 불안이 높고 걱정이 많은 편이다. 아이들 교육 문제에도, 가족의 건강 문제에도 민감하다. 한번 걱정에 빠지면 헤어 나오기 어려울 때도 많다. 40대에 들어선 후로는 호르몬의 변화까지 겹치면서 감정 기복은 더욱 심해졌다. 그런 내게 루미가 복막염일지도 모른다는 소식은 내 마음을 무겁게 하기 충분했다. 온갖 유튜브와 인터넷 뉴스를 찾아봤다. 다행히 신약이 있어 제대로 된 약만 구한다면 완치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 허가를 못 받아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가 없고 보호자가 매일 주사를 놔야한다고 했다. 덜컥 겁이 났다.     




다음날 아이 학원을 데려다주면서 의사선생님께 한번 더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 들어가 선생님을 잠시 기다렸다. 별 생각이 없었는데 갑자기 눈물이 왈칵 났다. 걱정도 되고 무서운 마음도 들었던 것 같다. 화장실에 가서 눈물을 닦고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했는데 자꾸만 눈물이 났다. 나가버리고 싶었는데 선생님을 이미 불러놔서 나갈 수도 없었다.     


“루미 보호자님! 이쪽으로 오세요!”

“선생니힘.. 흐흑...”

“아니 무슨 일이세요?”     


선생님은 황당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우는 내가 나도 당황스러웠다. 울음을 멈추고 싶은데 말을 하면 할수록 눈물이 났다.      


“선생님께서 어제 말씀하실 땐 제가 그게 뭔지 잘 몰랐는데 집에 가서 찾아보니까 엄청 무서운 병이더라구요. 그.. 뭐죠? 아 이름이 생각도 안 나네요. 그..”     


복막염이라는 이름도 생각이 안 났다. 선생님은 당연히 알았겠지만 펑펑 울고 있는 내게 복막염이라는 단어를 먼저 입 밖에 꺼낼 수 없는 것 같았다. 우는 것도 창피한데 복막염이라는 단어가 왜 그렇게 생각이 안 나던지.. 한참을 횡설수설 하다가 생각이 났다.     


“그..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그거 있잖아요.”

“네, 복막염이요..”

“그게 엄청 무서운 거더라구요. 만약 그런 거라면 한달 후에 오는 건 아닌 것 같고 좀더 일찍 와서 검사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지금은 체중만 조금 줄은 상태이고 다른 증상이 없어서 복막염이라고 단정할 수 없어요. 혹시나 가능성을 이야기한 것 뿐입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하지만 보호자님께서 잘 관찰하시고 필요하다면 검사는 다음 주에라도 할 수 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눈물을 훔치면서 얼른 병원을 빠져나왔다. 왠지 다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아 부끄러웠다. 루미 차트에 진상 보호자라고 적어 놓을지도 모른다. 집에 오면서 형님과 통화를 했다. 복막염은 아닐 거라고 다독여주셨다. 평소 먹던 사료를 다 먹어서 다른 사료를 주문했었는데 다시 같은 사료를 주문했다. 뭐라도 해야겠다 싶었다.      


집에 돌아와서 하루이틀 루미를 잘 관찰했다. 여전히 잘 안 먹었다. 아주 잘 먹던 캔을 꺼내줬는데 그 캔이 특이하게 부드러운 것과 덩어리가 함께 들어있는 건데 덩어리는 하나도 안 먹고 부드러운 부분만 다 먹었다. 이가 나려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던 어느 순간, 루미 입술이 심하게 비뚤어져있는 얼굴을 포착했다. 예전에 고양이 부정교합에 대해 찾아볼 때 부정교합이 심한 고양이가 입술을 잘 다물 수도 없는 사진을 본 적이 있었는데 갑자기 그 얼굴이 보였다. 루미를 붙잡고 입을 벌려봤다. 세상에나, 이빨이 나오고 있어 오른쪽 아래 송곳니가 나오고 있어 유치가 밖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왼쪽은 이미 이갈이를 한 것 같았고 위쪽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나오는 준비 중인 것 같았다.     




루미는 이갈이를 하고 있었던 거다!!!!!     


이가 아프니 밥을 잘 못 먹고 예민해서 작은 소리에도 화들짝 놀라곤 했다. 루미는 부정교합 때문에 병원에 갈 때마다 선생님이 이를 꼭 체크하시는데 그날따라 몸무게 이슈 때문에 이빨을 들여다보지 못 했나보다.

    

마음이 놓였다. 이갈이를 하느라 많이 아팠구나. 아이들도 유치가 빠지고 새 이가 날 때 많이 아파하는데 고양이도 똑같구나. 안 먹는 사료에 북어트릿을 잘게 잘라 섞어주니 사료도 잘 먹었다. 먹어서 힘이 나니 아이가 조금 덜 예민해졌고 조금씩 더 잘 먹었다. 며칠 후에 다시 들여다 보니 아랫니는 잘 났고 윗니가 나오느라 2개가 되어있었다. 우리 루미 잘 크고 있구나!!!     




한달쯤 후엔 또 중성화를 하느라 마음이 쓰일테고, 그때쯤엔 어른 이빨이 나면 부정 교합 때문에 이빨을 몇 개 뽑아야 할테다. 더 잘생기고 건강한 고양이를 데려올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금새 마음을 고쳐먹었다. 우리의 처음 다짐을 잊지 말아야지. 쭈굴했던 루미한테 마음이 갔던 우리의 그때 그 다짐.     


“우린 루미가 아파도 끝까지 책임져야 해. 동물은 예쁘다고 데려와서 키우다 힘들다고 버리면 절대로 안 되는 거야.”     


안방은 안 열어준다던 쓸데없는 초보집사의 고집은 금방 끝이 났고, 동물한테 너무 유난이지 않냐는 마음은 그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존재인지 몰랐던 무식한 생각이었다. 세상에 아이들이 많지만 우리 아이들이 특별하듯, 세상에 고양이가 많지만 루미는 세상에 하나 뿐이다. 

내가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 절대로 알 수가 없는 거구나. 아무것도 모르면서 다른 사람에게 위한답시고 하는 말도 조심해야겠다. 이래서 나이가 들면서 말이 적어져야 하는데 난 여전히 말이 너무 많다. 쉬운 일이면 누구나 하겠지.


루미가 아프지 않아 다행이다. 우린 어느새 둘도 없는 가족이 되어가고 있다. 사랑해 루미야.

작가의 이전글 고양이 이름짓기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