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견을 임시보호하고 ''해외입양’’을 보내다(마지막)

안녕, 나의 영원한 보호자

by 차oIIc

아래의 이야기는 제 경험을 기반으로 써 내려간 지극히 주관적인 저의 일기입니다.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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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멍이의 출국 준비와 함께 나는 일터로 복귀를 했다.


캐나다로 보내고 나서 복귀할까 고민했지만 이제는 서서히 마음으로 멍멍이를 보내는 준비가 필요할 것 같아서 예정대로 복귀했다.


출근해서 정신없이 일할 때에는 멍멍이가 곧 우리를 떠난다는 슬픈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일을 마친 후 재빨리 집으로 돌아와 문 앞에 서서 숨을 고른다.

도어록 소리가 ‘삐비빅’하고 울리면 소파에 엎드려 있던 멍멍이가 현관으로 헐레벌떡 뛰어나왔다.

안아달라고 자리에서 펄쩍 뛰어오르는 멍멍이를 안아주느라 인간은 현관에서 신발도 벗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무 말 없이 멍멍이를 안고 있으면 그 순간 인간들은 참 행복했다.

힘든 하루의 위로가 되어주었다.



‘아, 곧 이것도 끝이겠구나.’


짧고 부드러운 털의 감촉과 검은콩 같은 자그마한 코, 앙다문 야무진 입술 그리고 이제 막 점박이가 생기고 있던 꼬리.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하루하루 애가 탔다.


어느 날은 이별을 꽤 잘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이 대담했다가

어느 날은 정말 못 보낼 것처럼 슬프고 겁이 났다.


우리 품을 떠나기 직전까지 마음껏 사랑을 주고 싶었다.



나의 반려인은 그때의 기분을 이렇게 표현했다.


‘마치 애지중지 키운 딸을 멀리 사는 도둑놈에게 빼앗기는 기분이야.’


나도 딱 그런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어차피 캐나다에 보낼 수밖에 없는데 계속 불평만 하고 있을 순 없었다.


‘빨리 인정하고 가는 날까지 최선을 다 하자. 우리가 지난 4개월 동안 해왔던 것처럼.’



시간은 마치 날개라도 단 듯이 빠르게 흘렀고 이윽고 멍멍이의 출국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펫파크(입마개 착용필수)도 몇 번 다녀왔고 함께 사진을 남기기 위해 사진관에도 다녀왔다.


우리의 첫 만남은 매서운 추위의 한겨울이었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덧 나무에 벚꽃 잎 새순이 올라와 있었다.


우리기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되도록 평상시와 비슷하게 보내려고 했다.

특별한 이벤트를 만들어서 혹시 탈이 나거나 컨디션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하려고 했다.


출국 전날은 되도록 잠을 재우지 말라는 센터 담당자의 요청이 있었다.

멍멍이를 피곤하게 만들어서 비행기 안에서 최대한 잠만 재우려는 막무가내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멍멍이를 잘 모르고 하는 말이었다.


이 멍멍이는 하루 종일 바깥에서 뛰어놀고서 고작 낮잠 10분이면 풀충전되는 최신형 배터리를 장착한 강아지였다.


그렇지만 우리도 멍멍이가 수화물 칸에서 기절해서 가길 누구보다 간절하게 바랬기 때문에 충실하게 명령에 따랐다.




그리고 출국 하루 전 날.


영영 오지 않았으면 했던 그날이 왔다.

이른 오후에 우리는 반차를 쓰고 각자 집에 모여서 같이 멍멍이를 데리고 마지막 외출을 했다.

멍멍이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여기저기를 쏘다녔다.


함께 반려견 동반식당에서 밥을 먹고 펫 파크도 한 바퀴 돌았다.


느지막이 집으로 돌아와 그동안 다녔던 모든 산책코스를 다녀왔다.

잔디운동장, 너구리와 오리가 나오는 수변공원 그리고 멍멍이가 제일 좋아하는 갈대밭 언덕을 마지막으로 걸었다.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코스는 목욕하기.

목욕은 멍멍이의 피로도를 한 층 더 높이기 위한 센터 담당자의 필수 요청이었다.


이 날따라 목욕을 하는데 너무 얌전하게 잘 있어줘서 마음이 이상했다.


‘이제 떠나는 날이라고 얌전하게 있어주는 거야?’

‘너답지 않게 왜 이래? 슬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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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밤은 거실에서 전기장판을 따뜻하게 틀고 다 함께 잤다.

오늘이 멍멍이와 함께 보내는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니 내내 기분이 이상하고 애틋했다.


무엇보다 이젠 멍멍이를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는 사실에 무기력한 감정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멍멍이가 캐나다에 가서 건강하게 잘 지내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니. 꼭 잘 지내야만 한다.



정말 보내기 싫었다.


‘그냥 우리 멍멍이 데리고 도망갈까?’


‘그냥 캐나다에 보내지 말고 멍멍이 찾으러 오지 못하게 이사 가버리자.’


지난 4개월 동안 멍멍이와 함께 울고 웃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아쉬움에 멍멍이를 잊지 않으려 하염없이 만지고 또 만진다.


‘멍멍아 캐나다 가서 우리 기다리지 말고 거기에 정 붙이고 잘 살아.

우리가 너 버리는 거 아니야.’


‘너에게 정말 좋은 보호자를 구해주리라 약속했는데 그 약속 내가 꼭 지킨 거면 좋겠다.’


마음속으로 수십 번 말했는데 우리의 진심이 전해졌을지 잘 모르겠다.




우리는 밤새 그동안 멍멍이와 함께 했던 추억을 하나 둘 떠올렸고 이윽고 출국 당일 아침이 밝았다.


우리는 공항에 마중가지 않기로 했다.

마지막 모습은 보고 싶어서 마중을 갈까 고민을 많이 했지만 그 모습을 볼 용기가 차마 나지 않았다.

나는 차마 웃으면서 캐나다 주인을 맞이할 수 없었고 멍멍이를 캔넬에 넣어서 그물망에 돌돌 싸서 수화물에 넣는 걸 쳐다볼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 상황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센터 담당자가 공항으로 멍멍이를 데려가기 위해 우리 집에 도착했다.


캐나다로 보낼 짐을 한가득 트렁크에 싣었다.

멍멍이가 비행기 안에서 긴 시간을 보내며 낯선 곳에서 무서울까 봐 체취가 묻은 모든 것을 챙겨 보냈다.


제일 좋아하던 애착인형과 담요 또한 잊지 않고 넣었다.

또 공항에서 먹일 사료도 넣고 캐나다 입양자에게 전해 줄 멍멍이에 관한 정보를 길게 적은 편지도 넣었다.



이제 멍멍이만 전해주면 되었다.

차마 손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더 서둘러서 멍멍이를 담당자에게 건네주었다.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전혀 모르는 눈치의 멍멍이는 신이 나서 센터 담당자의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차마 마지막 인사를 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 정말 마지막인 게 실감이 날 것 같아서 마주하기 싫었다.




‘멍멍이가 우리가 자기 버린 줄 알면 어떡하지?’


‘차라리 그냥 빨리 우리 잊어버리면 좋겠다. 그렇지?’


‘새 주인한테 의지해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우리는 다 잊으면 좋겠어.’


‘나는 멍멍이가 캐나다에 가서 우리가 언제 오나 기다릴까 봐… 사실 그게 제일 걱정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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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멍멍이는 4개월간 함께 지냈던 우리 집을 떠났다.




오후에 멍멍이가 공항에 도착했고 거기에서 캐나다의 입양자를 만났다는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해 들었다.


마지막으로 캔넬에 들어간 채 그물망에 싸매인 채로 들것에 들려 수화물 칸으로 들어가는 영상을 받았다.


’이제 진짜 앞으로 딱 15시간만 견디면 되는 거야. 할 수 있지? 우리가 그동안 많이 했던 놀이잖아.

좀만 참고 기다리면 꼭 꺼내줄 거야!!‘


일을 하면서 내내 나는 온통 수화물 칸에 있을 멍멍이에게 정신이 팔려있었다.

캐나다 도착까지 몇 시간이 남았는지 볼 수 있는 사이트를 통해서 실시간으로 위치를 확인했다.


무슨 정신으로 그날 하루를 보냈는지도 모르겠다.

15시간이 너무 길어서 기다리는 게 아주 고역이었다.


멍멍이가 그 안에서 무사할지 걱정이 되어 불안하고 초조해서 입술이 바짝바짝 말랐다.




시간이 흘러 드디어 입양자에게 연락이 왔다.

멍멍이가 무사히 캐나다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멍멍이가 캐나다에 잘 도착했어요. 근데,,’


‘네? 무슨 일 생겼나요? 멍멍이 상태는 괜찮아요?’


‘아니 별일은 아닌데 그 안에서 설사를 했는지 얼굴이랑 몸에 다 묻혀놨네요. 일단 물티슈로 다 닦긴 했어요.’


캔넬 안에서 설사를 했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쿵'하고 떨어졌다.


‘참다 참다 그 안에서 눴을 텐데,,’


지난 4개월 동안 집에서 한 번도 설사한 적이 없는데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 안에서 설사를 다 했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


그리고 입양자의 집은 밴쿠버 공항에서 차로 6시간을 더 가야 하는 먼 곳인데 집까지 가는 길에 한 번 더 설사를 했다는 말을 전해 듣고 한숨만 나왔다.



‘역시 컨디션에 무리였구나,,’


‘많이 힘들었어,,’


‘왜 그 먼 곳까지 굳이 멍멍이를 데려가야 했을까,,’


‘왜 그 먼 곳까지 멍멍이를 보내야만 했을까,,‘


고생했을 멍멍이를 생각하니 속이 상하고 두 인간의 이기심에 화가 치밀었다.




임시 보호를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내가 임시 보호를 했던 유기견 구조 센터에서는 구조한 대부분의 강아지를 해외로 보낸다는 것이다.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임시 보호를 시작한 다른 임시 보호자가 데리고 있던 강아지도 한 달 만에 캐나다로 갔다.


한국에서 입양이 어려운 강아지 혹은 선호하지 않는 견종, 안락사가 불가피 한 강아지들에게 해외 입양은 최후의 보루인 줄로만 알았다.

한국에서 충분히 입양 갈 수 있는 강아지를 굳이 해외로 보내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러던 중 한 저널을 발견하였고 글쓴이의 동의를 얻어 일부를 발췌해 왔다.



우리나라엔 300여 개 이상의 크고 작은 동물단체들이 있다.

단체들 외에 개인적으로 활동을 하는 동물보호가들까지 합하면 동물보호 활동가 숫자는 엄청날 것이다.

각종 온라인에는 동물보호단체와 동물보호활동가들이 올리는 매일 수천 건의 위기의 동물들이 게시되고, 후원 요청글이 넘쳐난다.

공개된 영상과 사진엔 곧 목숨을 잃을 만큼 위태로운 동물들의 모습이 노출되고, 사람들은 그런 영상들을 보면 마음이 조급해지고, 가슴이 먹먹해져 마음이 아려온다.

좀 더 잔인하고, 좀 더 열악한 환경의 동물들에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고, 많은 후원으로 이어진다.

이런 반려인들의 마음을 겨냥해서 일부 동물보호가 들을 후원금 모금에 열심이다.

케어만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유기동물을 판매하는 동물보호단체


2018년부터 우리나라는 유기동물의 재입양률을 높이기 위하여 지자체마다 입양지원비 사업을 시행하였다.

입양지원비는 전국에서 발생한 10만 마리가 넘는 유기동물들이 지자체 보호소에서 살처분이 아닌 입양으로 새 삶을 살도록 하는 한줄기 희망이기도 하다.

입양지원비사업은 전국의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유기동물보호소에서 입양한 경우 각 지역마다 마리당 적게는 15만 원에서 많은 곳은 40만 원까지 입양자들에게 동물의료비, 미용비, 등록비 등의 명목으로 지원된다.

입양지원비를 신청하려면 지자체보호소에서 입양한 입양계약서와 동물을 진료한 진료나 기타 관련 항목 내역서와 영수증 등을 지자체에 제출하면 지급이 된다.

하지만 이 또한 일부 동물보호단체와 활동가들에게 편취되고 있다.

경기도의 한 단체는 지방의 지자체 유기동물보호소에서 유기동물을 입양처리한 후 입양지원비 550만 원을 챙기고, 단체 쉼터에서 보호하던 동물들을 홍보해 재입양 보내며, 입양자에게 책임비를 받아 국가보조금편취(입양지원비부정수급), 동물보호법위반(유기동물판매) 등으로 검찰에 송치된 상태다.

충청 지역의 한 유명 활동가는 3년간 허위입양자를 내세워 175마리의 유기동물을 입양처리한 후 개들은 해외입양단체로 보냈다.

또 고양이들은 병원진료 없이 친한 병원 원장에게 허위 진단서, 허위 영수증을 발행받아 4,115만 원의 입양지원비를 편취하여 국가보조금편취(입양지원비부정수급)로 검찰에 송치되었다.

그는 지역에서 동물들의 대모, 천사로 알려진 사람으로 이번 사건으로 입양지원비 편취뿐 아니라 캣맘이나 동물구조 요청자들을 대상으로 사기를 쳤다.

동물병원에서 공급받은 동물약품을 4~5배의 이윤을 붙여 판매하거나 동물병원에서 수십만 원의 진료를 받은 후 4~5배 이상 진료비를 부풀려 구조 요청을 한 캣맘들에게 받아낸 것이다. 또 그는 시사업인 시골개중성화사업에도 손을 대 사업 대상이 아닌 개를 시골개로 위장해 중성화수술을 시켜 그 금액을 편취한 것이다. 그를 아는 측근들은 편취한 비용들은 상당수 도박 빚으로 탕진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역시 기사화되어 진정한 동물보호운동가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출처] 동물구조부터 해외 입양까지 불편한 진실|작성자 NOW




이 저널을 보고 난 뒤 마음이 심란해졌다.

내가 좋은 의도로 시작해서 정성을 쏟은 일이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내가 임시보호 하게 된 구조단체도 위 저널에 나온 뒤가 구린(?) 단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꺼림칙했다.


내심 멍멍이를 빼앗긴 기분이 들어 속이 상했는데 저런 단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쉽사리 분을 삭이기 어려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임시보호, 그 자체를 후회하지는 않는다.

오로지 센터 담당자의 판단과 결정만으로 입양을 진행시키는 체계 없는 구조단체를 통해서 임시보호를 한 것을 진심으로 후회한다.



멍멍이가 캐나다에 간 이후로 우리는 입양자의 SNS를 매일 같이 들어가 보았다.

잘 지내는지, 사료는 어떻게 먹고 있는지, 원래 있던 강아지와는 합사가 잘 됐는지, 식분증이 다시 생기진 않았는지,

궁금한 것 투성이었다.


입양자가 올려주는 영상 하나, 사진 하나를 애가 타게 기다리고 있는 우리 스스로가 어처구니없었지만 그래도 어찌할 방도가 없다.

그저 보고 싶고 궁금한 것을.


한 이주 정도가 지났을 무렵 우리는 입양자의 SNS로 멍멍이의 안부를 묻는 메시지를 보냈다.

나름 잘 적응하고 있다는 멍멍이의 안부와 함께 최근 사진을 몇 장 받았다.

그와 함께 입양자는 멍멍이에 관한 몇 가지 질문을 물어왔고 우리는 임시보호 하면서 겪은 모든 것을 적어서 보냈다.


어떤 종류의 간식은 피해야 하는지, 피부병이 있기 때문에 약용샴푸로는 어떤 성분이 들어있는 것을 사용했고 사료는 어떻게 섞어줘야 하는지 그리고 목욕을 마치고 드라이를 할 때에는 멍멍이가 큰 소리에 예민하기 때문에 귀마개로 귀를 막아줘야 한다는 등의 사소한 것들도 모두 적어서 보냈다.


4개월 동안 같이 지내며 멍멍이에 대해 알게 된 모든 정보를 메시지에 적었다.


나의 반려인은 뭐 이런 것까지 적어야 하냐며 과하다고 했지만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이건 모두 입양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멍멍이를 위한 것이었다.


우리가 겪은 시행착오를 다시 겪게 하면서 멍멍이를 고생시키고 싶지 않았다.



멍멍이가 캐나다에 입양을 간지 벌써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아직도 문을 열고 집에 들어오면 꼬리를 흔들면서 현관 앞으로 뛰어나와있을 것만 같다.

아마 당분간은 이런 쓸쓸하고 적막한 공기가 집 안을 가득 채울 것 같다.



지금은 멍멍이가 어디에 있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많이 보고 싶고 그리워서 가끔 눈물도 나겠지만 그건 내가 감당하면 된다.


어디에 있든 그저 멍멍이만 건강하고 행복하면 된다.

꿈에서 부르는 그 이름. 로아야


‘로아야. 4개월 동안 우리에게 잊지 못할 기억을 만들어줘서 정말 고마워.'

'로아야 사랑해.’


너의 영원한 첫 번째 보호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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