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가족이 된다면
아래의 이야기는 제 경험을 기반으로 써 내려간 지극히 주관적인 저의 일기입니다.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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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번갈아 불침번을 서게 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멍멍이의 식분증을 완벽히 고쳐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낮에는 내가 하루 종일 함께 있기 때문에 먹지 않도록 계속 체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전 12부터 오전 7시까지 멍멍이에게 내 감시로부터 벗어나 맘껏 싸고 먹을 수 있는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각자 침대에서 잘 때에도 밤중에 쩝쩝거리는 소리가 나면 반사적으로 거실로 튀어나와 멍멍이 입속을 확인했다.
백발백중 쩝쩝거리는 소리는 이미 상황이 종료된 후였다.
멍멍이는 신나게 먹고 난 후 항상 인간을 쳐다봤다.
겁먹은 눈빛이 아닌 자랑스러운 눈빛.
마치 ‘나 이거 먹었다 이거 봐라.’ 혹은 ‘내가 이거 누고 흔적도 다 없앴는데 잘했지?’ 하는 이유에서였을까.
식분증 고치는 방법을 알아보니 먹지 못하도록 강아지가 싫어하는 것을 뿌려보라고 했다.
강아지들이 싫어한다는 시큼한 식초, 레몬즙, 핫소스까지 뿌려봤는데 그것마저 잘 먹더라.
그냥 인간이 매번 응가 타이밍에 맞춰서 바로 치워줘서 먹지 못하도록 반복 학습을 시키기로 결정했다.
거실에서 같이 잠을 잔 뒤로는 인간의 몸은 잠을 자고 있지만 귀는 밤새 열려있었다.
밤 중에 멍멍이가 일어나 배변패드 쪽으로 가는 기척이 들리면 인간 둘이 동시에 일어나서 휴지를 들고 대기했다.
패드에 응가를 잘 누고 인간을 쳐다보면 간식으로 보상을 넉넉히 줬다.
그럼 간식을 받아먹고 물을 찹찹 먹고 다시 이불속으로 파고들었다.
응가 불침번을 서니 식분증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어느 날은 침실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거실로 나오니 멍멍이가 패드에 응가를 해놓고 그 옆에 가만히 앉아서 나를 보고 있었다.
마치 ‘인간, 나 안 먹었어. 잘했지? 이제 간식 줘.’
깜짝 놀라고 너무 기뻐서 아침부터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칭찬을 넘치도록 해주고 간식도 패드 위에 넘치도록 주었다.
너무너무 기뻐서 응가를 치우기 전에 기념사진도 몇 장 찍었다.
그 후로도 우리는 거실에서 교대로 잠을 잤다.
아무래도 불침번을 서는 날은 밤새 귀가 열려있으니 숙면을 취하기는 어려웠으리라.
하지만 그것도 금세 적응을 해서 밤새 응가레이더를 켜고서 잠도 잘 자는 노하우도 생겼다.
이상하게 거실에서 잠을 같이 자기 시작한 뒤로 멍멍이와의 유대감이 크게 깊어진 기분이 들었다.
그전에는 내가 먹여주고 치워주고 정리해 주는 보호자의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가족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동시에 문득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곧 헤어져야 하는데, 이렇게 정이 들어버리면 나중에 힘이 들 텐데,’
우리의 별 것 없는 매일은 특별하지 않았지만 소소한 행복으로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멍멍이가 조금씩 자라고 사회화 교육이 필요해지면서 휴일에는 다 같이 펫 파크를 찾았다.
소형견 존에 들어가니 멍멍이의 적극적이고 눈치 없는 대범함에 소형견들은 질겁을 하고 모두 멍멍이를 피해 도망 다녔다.
아무래도 피해를 주는 것 같아 소형견 존에서 나와 바로 옆 대형견 존에 들어갔더니 그제야 마음껏 뛰어놀 수 있었다.
멍멍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줄 없이 맘껏 뛰놀게 되는 순간이었다.
멍멍이의 펫 파크 첫 친구는 웰시코기였다.
성격 좋은 웰시코기 형님 덕에 펫 파크의 경험이 좋은 기억으로 남았던지 그 후로는 매주마다 펫 파크를 찾게 되었다.
한 달 전 만해도 멍멍이와 산책을 하면서 다른 강아지들을 만나면 인사를 시키기 어려웠다.
멍멍이의 넘치는 호기심과 아가시절 엄마에게 훈육을 받지 못했던 터라 사회화가 잘 되어있지 않아서 선을 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래도 정말 다행인 것이 펫 파크에서 만난 많은 매너 좋은 대형견들이 그런 눈치 시그널을 가르쳐줬다.
자기 몸집의 두 세배는 되는 큰 강아지들이 한 번 ‘그르렁’하면 더 이상 들이대지 않고 꼬리를 쏙 집어넣은 채 앉아서 기다릴 줄도 알게 되었다.
집에서 콜을 하는 훈련도 열심히 했는데 펫 파크는 우리가 집에서 맹훈련을 한 것들을 제대로 써먹을 수 있는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멍멍이가 아직 5개월의 새끼 강아지인 것을 알고 나서 다른 대형견 견주들은 다들 본인의 개가 멍멍이를 험하게 다루지 못하게 특히 신경 써줬다.
펫 파크에 갈 때마다 견주들의 이런 태도와 배려에 진심으로 감동하고 감사했다.
펫 파크에 가지 못하는 날에는 산책의 코스를 다양하게 변화를 줬다.
멍멍이가 작을 때에는 단지 앞 잔디 운동장에서 뛰어놀면 충분히 에너지 소모가 되는듯했는데 점점 자라나면서 잔디 운동장은 성에 차지 않는 듯하였다.
계속 새로운 곳으로 가고 싶어 해서 수변 공원을 따라서 쭉 산책 영역을 넓혔다.
수변 공원에서는 너구리와 오리도 볼 수 있었다.
산책을 하다가 오리를 만나면 멍멍이는 그 자리에 한참을 서서 오리 구경을 하다가 못내 아쉬운 듯 자리를 떴다.
뭐가 그렇게 궁금한 것 투성인지 길 가다가 만나는 새로운 모든 것을 다 궁금해했다.
그리고 궁금한 모든 것을 전부 다 입에 넣고 싶어 했다.
나뭇잎과 나뭇가지는 항상 멍멍이의 1호였고 잔디와 지푸라기 가끔은 작은 돌도 입에 집어넣었다.
덕분에 빠른 걸음으로 경보하며 산책을 하면서 동시에 조그만 멍멍이 입으로 무엇이 들어가는지 관찰하는 능력도 생겼다.
뭐라도 먹을라치면 재빠르게 줄을 당겨 입을 잡아 열어 확인했다.
몇 번씩 멍멍이 입 속에 손을 넣어 이물질을 꺼내느라 물티슈는 산책 나갈 때 필수 준비물이었다.
산책 후에는 집에 돌아오면 중요한 과정이 하나 더 남아있다.
아파트 단지와 길거리에 마구 뿌려진 염화칼슘에 통통하고 핑크색인 자그마한 멍멍이의 발패드가 상할까 물로 조물조물 씻기고 드라이기로 바짝 말리고 나오면 인간은 녹초가 된다.
오전 일과가 끝이 나면 인간과 멍멍이는 노란 소파에 누워 같이 낮잠을 잔다.
지금 보니 지난겨울에 감기 한 번 걸리지 않게 된 건 모두 멍멍이와 함께한 강제 산책 강행군 덕분이었다.
달콤한 낮잠에서 부스스하고 일어나면 멍멍이 점심시간이다.
멍멍이 배꼽시계가 얼마나 정확한지 14시 50분(점심시간은 15시)만 되면 주방으로 뛰어가서 사료봉투 앞에 앉아서 나를 쳐다보고 있다.
멍멍이가 우리 집에 온 지 며칠 안 됐을 때는 내가 멍멍이 식사시간을 까먹을까 봐 하루 세 번 핸드폰 알람을 해놨다.
8시, 15시, 21시
이제는 알람 소리만 들리면 자다가 깨서 주방에 가서 나를 보고 앉아서 기다린다.
한 번은 알람을 끄고 깜빡 제시간에 밥을 주지 않았더니 소파에 누워있다가 주방으로 달려 나가서 나를 한번 쳐다보고 사료봉지를 스르륵 눈으로 가리켰다.
기가 막혔다.
‘언제 이렇게 눈치가 늘었니?’
‘너는 어디를 가도 굶지는 않겠다. 정말 다행이야.’
이때 즈음이었다.
우리가 멍멍이를 입양하고 싶은 생각이 든 시점이.
우리는 서로 멍멍이 입양에 대하여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일이 잦아졌다.
그럴 때마다 나는 확신이 없었다.
‘또 아플까 봐’
‘강아지는 나이가 들면 분명히 아플 텐데, 내가 그걸 또 겪어낼 수 있을까?’
‘강아지가 힘들어하는걸 또 내 눈으로 몇 년을 보며 그 힘듦을 감내할 수 있을까?’
'너무 사랑하는 가족이 내 눈앞에서 죽는 걸 또 봐야 하잖아..'
나의 반려인은 멍멍이를 입양하길 원했고 나는 머뭇거렸다.
사실 나는 마음속으로 겁이 났던 것 같다.
나 스스로에게 확신이 없었다.
나는 강아지의 입양은 100%의 확신과 책임감을 가지고 시작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이 결정을 평생 후회할 것 같다.
매일 조금씩 멍멍이와의 유대감을 쌓아가던 중 어느 날 보호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임시보호자님, 저희 멍멍이 입양자가 정해진 것 같아요.’
‘아 정말요? 누구예요? 저희도 알 수 있나요?’
‘캐나다에 살고 있는 한인 가족이에요.’
‘예? 캐나다요?...’
‘네 부부, 자녀 2, 강아지 1로 구성된 가족이고요. 이동봉사자가 구해지는 대로 출국예정입니다.’
‘아,, 그분 입양 신청서를 저도 받아볼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우리는 입양 신청서를 읽고 또 읽었다.
캐나다에서 거주하는 한인가족. 평범해 보이는 부부와 자녀 둘 그리고 작은 소형견 한 마리.
‘아, 결국엔 해외로 가는구나.’
‘비행기는 정말 태우기 싫었는데 그럼 이제부터는 캔넬에 오래 두는 교육을 시켜야 하나.’
‘어쩌지 정말,,,,’
기분이 썩 내키지 않았다.
‘그냥 지금이라도 우리가 입양한다고 말할까.’
‘아니야, 혹시 모르지 캐나다에 있는 가족이 우리보다 더 잘해 줄 수 있잖아.’
‘그래도 지금 멍멍이를 캐나다에 보내면 평생 후회하며 살지 않을까?
심란해진 우리는 그 전화 이후 서로 얼굴만 보면 멍멍이 입양에 대해 대화를 했고 항상 내 대답만 기다리고 있는 채 우리의 대화는 끝이 났다.
처음에 보호센터에서 멍멍이를 해외로 입양 보내려 했던 이유는 멍멍이의 특성 때문이었다.
공동주택생활이 대부분인 한국에서 이렇게 짖음이 있는 개는 특히 높은 확률로 파양 될 수 있다는 센터 담당자의 판단.
이 독단적인 판단에서부터 비롯된 멍멍이의 해외입양 결정.
멍멍이가 우리 집에 임시보호를 오기 전에 병원의 작은 캔넬에 갇혀있을 때에는 정말 쉬지 않고 짖었다고 한다.
멍멍이는 이미 그 병원 유명인사였던 것이다.
사람이 보일 때마다 짖는 요구성 짖음과 지독하게 활달한 성격 덕에 관계자들은 이 멍멍이에 대한 편견이 생겨버렸다.
우리 집에 와서도 1-2주 간은 요구성 짖음이 있었고 이에 대해서도 센터 담당자와 우리 또한 걱정스러운 대화를 주고받았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은 요구성 짖음은 거의 없어졌고 활달한 성격 또한 훈련을 통해서 충분히 통제가 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우리는 이 부분을 센터 담당자에게 지난 두 달간 계속 어필했다.
‘멍멍이가 짖음도 거의 없고 이제는 많이 얌전해졌어요.’
‘공동주택에서도 충분히 생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희 이웃집 개들이랑 인사도 잘하고 사회성도 많이 생겼는걸요.’
‘멀리서 지나가는 개를 봐도 이제는 뛰어나가지 않아요.’
‘활발한 운동량은 산책으로 채워주면 돼요.’
‘해외 입양은 안 시키면 안 될까요?’
‘굳이 이 작은 강아지를 국내 입양이 어려운 것도 아닌데 굳이 해외로 보내야만 할까요?’
‘일단 저희는 괜찮은 국내 입양자가 구해질 때까지 충분히 더 데리고 있을 의향이 있으니까 너무 급하게 해외 입양으로 단정 짓지 말아 주시면 좋겠어요.’
수도 없이 질문하고 설득하려고 노력했다.
‘아 임시보호자님 그래도 얘는 해외로 가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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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치 답이 이미 정해져 있는 것 같았다. 우리만 모르는 답.
‘왜? 얘는 문제견이 아닌 그냥 활발한 강아지인데, 국내에서도 충분히 훌륭한 입양처를 찾을 수 있을 텐데.’
‘왜? 굳이 해외 입양을 고집하는 이유가 뭘까?’
담당자와 대화를 할수록 보이지 않는 커다란 벽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음이 불편한 이유가 몇 가지 더 있었다.
캐나다 한인 가족의 입양신청서를 찬찬히 읽어보며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몇 가지가 있었다.
그들의 첫 번째 강아지는 아이들의 정서발달을 위해 데려왔다고 한다.
두 번째, 이 멍멍이로 입양을 희망하는 이유는 부인이 어렸을 때부터 달마티안을 키우는 것이 꿈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세 번째, 부인은 털 빠지는 견종을 싫어한다고 한다.
‘강아지를 데려올 때 뭔가 목적을 가지고 도구로서 입양하는 사람이 믿을만한 사람일까?’
‘본인의 로망을 실현하기 위해 머나먼 한국에서부터 굳이 어린 강아지를 장시간의 비행을 겪게 하면서 까지 데려오는 사람이 과연 진심으로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일까?’
‘모든 개는 털이 있고 심지어 달마티안은 털이 많이 빠지는 견종에 속하는데, 이것이 나중에 파양의 이유가 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심히 되었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도 생겼다.
‘내가 키우지 않아도 괜찮은데, 정말 좋은 보호자에게 보내주고 싶다,’
‘이게 최선일까?’
‘내가 갖지 못해서 괜히 트집을 잡는 게 아닐까?’
‘지금의 상황에서 어떤 게 멍멍이를 위한 가장 현명한 선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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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맞다. 나에겐 선택권이 없네.’
해외 입양 통보를 받고 난 후에도 우리는 입양 홍보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혹시 몰라 국내에 더 적합한 입양자가 나타날 수 있잖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야.’
매일매일 개인기 영상을 sns에 올려서 매력을 어필했고 새로운 개인기 교육에 매진하였다.
앉아, 손은 기본이고 엎드려, 빵야, 돌아까지 완벽하게 습득했다.
처음에 집에 왔을 때는 밥만 보면 겅중겅중 뛰고 사료 그릇에 사료를 담는 와중에 급하게 먹을 정도로 제어가 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제는 간식을 손 위에 올린 채로 무려 30초나! 기다릴 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얌전한 멍멍이인데, 아파트에서든 어디에서든 잘 지낼 수 있는데,,’
‘이젠 짖지도 않고 정말 얌전한데,,’
‘식분증도 이제 거의 고쳤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혼잣말을 하는 일이 많아졌다.
내 마음이 조급했다.
2월도 산책과 개인기 교육으로 부지런한 매일매일을 보냈다.
그러던 중 멍멍이의 해외 이동봉사자가 구해졌고 출국날짜가 정해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캐나다의 입양 희망자가 직접 수소문해서 이동 봉사자를 구했다고 했다.
가슴이 쿵 하고 떨어졌다.
‘아직 이별 준비를 하지 못했는데,’
‘아니 나는 이별이란 걸 생각지도 않았는데,’
이동 봉사자가 구해졌다는 연락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결심했다.
‘그냥 멍멍이를 우리가 키우자.’
‘괜찮을까? 생명 하나를 다시 책임질 수 있을 것 같아?’
‘그럼 우리 여행도 자주 못 아니고 매일매일 릴레이 산책인 거 알지?’
‘잘 알지’
‘그래도 괜찮다고?’
‘응. 지금 이렇게 보내면 나 평생 후회할 것 같아.’
‘그건 나도 그래.’
‘충분히 심사숙고했지? 확실하지?’
‘세 달이면 충분했다고 생각해.’
‘빨리 담당자한테 전화해 봐.’
‘안녕하세요. 멍멍이 저희가 입양하고 싶어요.’
‘혹시 가능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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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으셨어요.’
센터 담당자와 꽤 오랜 시간 통화를 했다.
이미 이동봉사자가 구해졌고 캐나다의 입양 희망자가 너무 오랜 시간 기다려서 안된다고 했다.
우리가 임시보호를 시작할 때 즈음(12월 초)부터 캐나다의 입양희망자는 담당자에게 입양 희망 의사를 보였다고 한다.
그는 1월에 입양 신청서를 작성해서 정식으로 지원했고 센터 담당자는 이미 그때부터 해외로 입양을 보내기로 마음먹은 듯했다.
‘그래도 우리가 멍멍이를 더 잘 아는데 우리에게는 기회가 정말 없는 걸까?’
‘이대로 정말 끝인 건가?’
‘국내 입양도, 우리도 정말 안 되는 건가?’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더 일찍 입양의사를 밝힐걸,’ 하는 후회가 가장 컸다.
동시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멍멍이가 캐나다에 가서 우리한테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이곳이 자기 집인 줄 알 텐데 또다시 버려졌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우리는 정말 너를 버린 게 아닌데,,’
익숙하게 멍멍이를 안고 소파에 앉아서 티브이를 보는데 눈물이 나서 조금 울었다.
‘이 따뜻하고 코 끝을 간지럽히는 털의 느낌도 이제 얼마 안 남았구나.’
곧 멍멍이가 우리를 떠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항상 그랬듯 같은 매일을 보내려고 했는데 그 매일매일이 더 소중해졌다.
강행군 같던 산책이 더 즐거워졌고 멍멍이와 한 시간씩 뛰어다녀도 하나도 힘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매일 추억을 만들고 있었다.
그러던 3월의 어느 공휴일.
그날은 새벽부터 하루 종일 비가 왔다.
전날 펫파크에 가기로 계획을 했지만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에 진흙탕에서 뛰어놀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여 펫파크 나들이는 무산되었다.
그날은 이상하게 집 밖을 나서기가 싫었다.
산책도 나들이도 나가기가 싫었다.
‘이때 멈췄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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