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라면 거스르고 싶다.
아래의 이야기는 제 경험을 기반으로 써 내려간 지극히 주관적인 저의 일기입니다.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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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뒤에서 어떤 커다랗고 무거운 손이 어깨를 감쌌다.
우리 막내(강아지)를 사랑으로 진료해 준 교수님이었다.
일주일에 딱 이틀의 진료만 오는 교수님 스케줄이 마침 나의 멍멍이 면회시간과 겹쳤던 것이다.
교수님 얼굴을 보자마자 나는 참았던 눈물이 새어 나왔다.
‘아니, 막내 보내고 새로 멍멍이 입양했어?’
‘아니요. 유기견 임시보호하고 있는데요. 뭘 삼켜서 수술하러 왔어요.’
‘나도 무슨 상황인지 아까 수술하는 거 다 지켜봤어. 수술은 잘 됐는데 얘는 뭘 또 이런 걸 삼켰대~’
‘그러게요. 저도 경황이 없어서,, 수술 잘 지도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런데 쟤가 유기견이야? 그냥 당신이 데려다 키우지 왜?’
‘저도 그러고 싶은데 해외입양으로 가기로 했어요.’
‘해외로? 굳이 왜? 그냥 당신이 키워. 전에 막내 키우던 거 보면 당신이 제일 잘 키울 건데, 개한테 당신 같이 진심인 사람이 또 누가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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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 담당자는 나와 교수님의 대화를 옆에서 모두 듣고 있다가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
‘안 돼요. 그런 말씀하지 마셔요. 얘는 이미 캐나다로 가기로 되어있어요.’
교수님은 나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고 나는 차량 맞게 새어 나오던 눈물이 쏙 들어갔다.
우리 막내가 강아지 별로 가기 일주일 전 즈음 이제는 병원에서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했을 때가 있었다.
그때 이 교수님은 마지막으로 막내에게 선물을 하나 주셨다.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했던 막내가 일주일 동안 마치 아프기 전처럼 산책도 하고 숨도 편히 쉬며 가족들과 마지막으로 행복한 기억을 만들었던 기억이 있다.
교수님 덕분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막내와 함께하는 일주일의 시간을 더 얻었다고 우리 가족 모두 생각하고 있다.
우리 가족에게 교수님은 정말 감사하고 고마운 사람이다.
교수님은 유기견인 멍멍이와 우리의 사정을 고려해서 수술비용을 꽤 많이 할인해 주셨다.
(이 자리를 빌려 항상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거실과 모든 방을 청소했다.
강아지가 집으로 돌아와서 또 무언가를 삼킬까 봐서였다.
티브이 리모컨, 핸드폰 충전기 하나까지 강아지가 닿을 수 없는 높은 곳으로 모두 옮겼다.
설마,, 하는 사소한 일이라도 다시 한번 이런 사고가 생기는 것은 미연에 방지하고 싶었다.
평소 좋아하는 인형들 중에서 눈이나 코가 떨어질 염려가 있는 인형은 모두 치웠다.
멍멍이가 퇴원하기 전에 매일 집을 정리하면서 다시 멍멍이가 돌아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살짝 걱정도 되었다.
멍멍이가 없는 이틀 동안 노란 소파에 앉아있을 때면 괜스레 외로운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은 병원에서 하루에 두 번씩 보내주는 영상들과 사진으로 보고픈 마음을 달랬다.
멍멍이가 진료실 내부를 걸어 다니는 영상.
유동식을 먹기 시작하는 영상.
테크니션 선생님한테 이쁨 받는 영상.
‘아프지 않아서 다행이야.’ 안도했다.
수술 한 지 3일째가 되는 날 오전 11시, 멍멍이가 퇴원이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센터 담당자가 병원에서 멍멍이를 퇴원시켜 우리 집으로 데려다주었다.
주차장에서 다시 만난 멍멍이는 자기 몸 만한 깔때기를 쓴 채로 나를 보자 꼬리를 세차게 흔들어주었다.
유기 상태에서 구조된 후 2개월가량 작은 병원 켄넬 속에서 살아온 기억 때문인지 멍멍이는 작은 공간에 갇혀있는걸 극도로 싫어했다.
이런 멍멍이를 또 병원의 작은 캔넬에서 지내게 만들었단 사실이 내내 미안했다.
‘미안해. 이제 정말 아프지 말자. 내가 잘 돌봐줄게.’
항생제와 소독약을 받아왔고 일주일 간의 산책 금지령이 떨어졌다.
멍멍이는 병원 생활이 피곤했던지 집에 돌아와서 좋아하는 노란 소파에 올라가 몇 시간을 내리 잠만 잤다.
장 절제술을 했으니 당분간은 소화가 잘 되는 습식을 위주로 급여해야 했고 간식과 그 좋아하던 야크츄도 일절 먹을 수 없었다.
안쓰러웠다.
‘어쩌나, 매일 산책 다녀와서 소파에서 세나개 보면서 야크츄 먹는 낙으로 살던 멍멍이인데,,’
‘빨리 회복해서 산책 나가자!’
빠짐없이 하루에도 몇 번씩 공원으로 산책을 나가던 멍멍이는 하루 종일 집에서만 누워있기 지루했던지 창틀에 매달려 창문 밖을 쳐다보는 시간이 늘었다.
지루함을 달래주고자 다양한 노즈워크 장난감을 마련했다.
간식 대신 사료를 조금 넣어주었다.
커다란 넥카라를 하고 어정쩡한 자세로 노즈워크에 열심인 멍멍이의 모습을 보니 귀엽고 안쓰러웠다.
일주일이 지나 수술부위도 확인할 겸 병원에 다녀왔다.
수술 부위는 잘 아물었고 가벼운 산책은 가능할 것 같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단, 집 밖을 나설 때 입마개는 필수가 되었다.
입마개를 하고 첫 외출.
내 생각보다 의연하게 잘 적응했다.
워낙에 의사표현이 정확한 성격의 멍멍이라 거부가 심할 것 같았는데 오랜만의 바깥 산책에 너무 신이 났던지 입마개를 하고 있는 걸 까먹은 눈치였다.
뛰거나 흥분하면 완벽히 아물지 않은 수술 부위에 염증이 생길 수가 있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최대한 얌전한 코스로 반복해서 돌아다녔다.
개껌과 같이 소화시키기 어려운 종류의 간식은 모두 버렸다.
씹지 않고 삼키는 급한 성격의 멍멍이인지라 딱딱한 말린 고기간식은 급여하지 않았다.
그리고 소화불량을 유발한 만한 첨가제나 방부제가 들어있는 간식은 고르지 않고 꼼꼼하게 성분표를 보고 구매했다.
그렇게 조금씩 우리는 다시 원래의 생활 패턴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침식사- 30분 산책- 낮잠- 점심식사- 30분 산책 - 휴식 -저녁식사 - 1시간 산책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중간에 인간은 청소와 빨래도 하고 밥도 차리다 보면 정말 하루가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갔다.
멍멍이는 무럭무럭 자라서 어느덧 10킬로에 육박했다.
우리 집에 처음 올 때에는 3킬로의 자그마한 멍멍이였는데 어느새 어였한 중형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다리도 길어지고 목도 제법 두꺼워졌다.
이제는 한 손으로 안고 있기에 제법 버거운 무게가 되었다.
‘멍멍아, 언제 이렇게 커버렸니.’
'자식이 무럭무럭 자라는 걸 보는 부모의 기분이 이런 기분일까?'
내가 낳은 강아지는 아니지만 아주 뿌듯했다.
부모님 댁에 멍멍이랑 같이 갈 때면 부모님은
‘우와 멍멍이 엄청 많이 컸네?’
‘오늘은 다리가 더 길어졌네?’
집에 강아지를 데려오지 말라던 부모님은 이틀에 한 번씩 멍멍이의 사진을 보내라고 닦달하셨다.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센터 담당자에게 연락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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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멍이 출국날이 다시 정해졌어요.’
‘벌써요? 언제예요?’
‘앞으로 한 달 뒤입니다.’
‘아,, 지난주에 수술하고 이제 막 회복하기 시작했는데 장시간 비행기 탑승이 가능할까요?’
‘괜찮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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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네. 알겠습니다,,’
생각보다 빨리 떠날 날이 정해졌다.
‘빨리 캐나다에 보내지 못해서 안달이 났나.’
‘지난주에 장 절제 수술한 멍멍이를 화물칸에서 15시간 방치하겠다고?’
'도대체 이렇게 급하게 진행하는 이유가 뭘까?'
‘정말 이 담당자라는 사람은 개를 향한 마음이 진심이 맞긴 한 건가?’
‘해도 해도 너무 한 것 같아.’
나는 도무지 이해가 할 수 없었다.
‘어디서부터였을까 이런 불편한 마음이 생겨난 것이.’
‘임시보호자에게 입양에 관여할 아무런 권한이 없다는 걸 진즉에 알았더라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텐데.’
‘멍멍이를 가장 잘 아는 건 임시보호자라고 생각하는데 왜 말 그대로 임시’ 보호자’인 나에게는 아무런 결정권도 주어지지 않는 걸까.’
임시보호자는 강아지에게 숙식만 제공해 주는 안락한 쉘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애초에 임시보호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이 강아지를 잘 케어해서 평생의 좋은 보호자를 만나게 해주는 것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이 강아지에 대해 가장 잘 아는 나는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이 애초에 없었다니.’
배신감이 들었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밤중에 꿈을 꿨다.
부산에 사는 친구가 나왔다.
그러고선 본인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안 와볼 거냐고 다짜고짜 나에게 화를 냈다.
평소에 연락도 없던 사이인데 갑자기 꿈에 나와서 화부터 내는 것이 이상했다.
평소에도 꿈을 자주 꾸지만 이 날은 느낌이 조금 달랐다.
꿈에서 깬 이후로 기분이 뒤숭숭하고 아무래도 이상해서 잠을 설쳤다.
그날 오후 센터 담당자로부터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캐나다의 입양자가 부친상으로 급하게 한국에 들어오게 될 것 같아요.’
‘예? 갑자기요?’
‘갑자기 그렇게 됐다네요. 그리고 캐나다로 출국하실 때 멍멍이를 직접 데려가신대요.’
‘아,, 그렇군요.’
‘그래서 출국 검역 일정도 앞당겨질 것 같아서 연락을 드렸어요. 미리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서요’
‘아,, 네.’
‘멍멍이가 빨리 캐나다에 가고 싶은가 봐요. 직접 주인이 와서 캐나다로 데려간다니 복도 많은 아이예요.’
‘,,, 그러게요. 검역일이 정해지면 연락 주셔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캐나다 입양자의 sns에 들어가 보았다.
‘아 고향이 부산이었구나.’
‘그래서 저런 꿈을 꿨나?’
‘근데 왜 하필 내 꿈에?..’
저 날의 뒤숭숭했던 기분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어쨌든 나는 앞당겨진 멍멍이의 출국 준비를 해야 했다.
장시간 캔넬에 들어가 있는 것에 거부감이 없도록 미리 훈련을 해야 했고 해외 출국에 또 무엇이 필요할지 미리 인터넷으로 찾아보았다.
걱정이 많았지만 가장 큰 걱정은 15시간 동안 대소변을 참는 것이었다.
멍멍이는 집에서도 30분-1시간에 한 번씩 소변을 누느라 하루에만 배변패드 수십 장을 썼다.
‘이젠 몸집이 커져서 음수량도 소변량도 많아졌는데 15시간을 넘게 참을 수 있을까,,’
‘인간도 15시간 참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차라리 그 안에서 싸버리면 좋겠는데 멍멍이가 그 안에서 참느라 스트레스받을 생각을 하니 도저히 비행기에 집어넣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배가 고프면 공복토를 해서 하루에 3끼를 챙겨주는 마당에 15시간 내리 공복으로 있어야 한다.
비행기를 태우기 전에는 토할 수도 있어서 밥도 많이 주지 않는다고 한다.
같이 기내로 이동하는 것이 아닌 수화물 이동은 성견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환경이어서 종종 강아지들이 급사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6개월의 어린 강아지가 이런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을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특히 이 멍멍이는 추위도 많이 타고 작은 소리에도 놀라서 잠에 들지도 못하는 예민한 성격인데 수화물칸의 소음을 15시간 내리 견딜 수 있을지도,,
한 번은 밤 중에 인간이 화장실에 간다고 방에서 불쑥 튀어나오니 멍멍이가 그걸 보고 놀라서 십분 넘게 딸꾹질을 멈추지 못했다.
잔뜩 놀란 멍멍이를 괜찮다고 달래주느라 애를 먹었던 적이 있다.
'이렇게 겁이 많고 예민한 멍멍이를 수화물 칸에 넣어 15시간 사람도 없는 곳에 방치해야 한다니..'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고 바로 실행에 옮겼다.
캔넬 훈련은 1시간부터 시작해서 6시간까지 시도해 보았다.
더 이상의 시간 연장은 내가 지레 겁을 먹어서 시도도 하지 않았다.
작은 방을 비행기 수화물 칸 같은 환경처럼 만들었다.
보일러를 꺼서 방을 서늘하게 만들고 커튼을 쳐서 어둡게 만든 후에 캔넬을 놔두었다.
캔넬 속에는 음수대를 달고 바닥에 푹신한 담요를 넣어서 최대한 출국할 때의 환경과 비슷하게 만들었다.
6시간의 긴 격리를 마친 후에는 보상(좋아하는 간식들)을 넉넉하게 줬고 칭찬도 많이 해줬다.
‘멍멍이 고생했어. 이렇게 꾹 참고 나면 네가 좋아하는 것을 잔뜩 받을 수 있는 거야.’
수시로 캔넬 훈련을 해주었다.
이제는 캔넬 속에 멍멍이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데 거부감도 조금 줄어드는 것 같아 보였다.
워낙에 겁이 많은 멍멍이는 어두운 방 속 캔넬 안에 들어가서 오랜 시간 갇혀있는 것 자체가 지금은 스트레스겠지만 ‘기다리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저 인간들이 나를 꺼내주는구나’하는 믿음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집에서 미리 대처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저 그 안에서 15시간 동안 무사하길 바랄 뿐이었다.
캔넬 훈련을 하면서 센터 담당자가 가장 미웠다.
굳이 멍멍이를 해외로 보내서 이런 고생을 하게 만드는지 매일 속으로 욕했다.
특히 겨울에는 집 안에서도 추위를 타서 하루 종일 전기장판 위에서 이불을 덮고 있는 마당에 굳이 그 추운 캐나다로 보내는 건 무슨 생각인지 아니 생각이란 걸 하는 건지 의심스러웠다.
‘멍멍아, 캐나다의 겨울은 영하 30도래,,’
‘여기보다 10도는 더 떨어질 텐데 추우니까 전기장판 세게 틀어달라고 그래. 꼭 그래.’
멍멍이는 인간이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지도 전혀 모르는 눈치다.
자기가 곧 캐나다에 가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마 출국하는 날 아침까지도 몰랐던 것 같다.
그리고 멍멍이의 출국 준비와 함께 나는 다시 일터로 복귀할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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