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하고 사랑스러운
아래의 이야기는 제 경험을 기반으로 써 내려간 지극히 주관적인 저의 일기입니다.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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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차를 타고 부모님 댁으로 향했다.
첫 외출답게 얼마나 챙길거리가 많던지 트렁크가 가득 찼다.
산책 리드줄, 패딩, 방석, 캔넬(캔넬 교육 중이어서 항시 구비하였다), 사료, 배변패드, 간식, 장난감, 야크츄 정도.
사실 가족들은 새 강아지가 집에 들어오는 것에 반감이 있었다.
잠시 놀러 왔다가 돌아가는 거지만 정이 들어버릴까 봐 그런 것 같다.
특히 엄마는 작년에 강아지 별에 간 막내(우리 집에서는 막내라고 불렀다)가 일 년 넘게 심장병으로 투병하는걸 옆에서 보며 유독 힘들어하셨다.
부모님은 혹시라도 내가 이 멍멍이를 입양이라도 한다고 할까 봐 노심초사하셨다.
이해한다.
막내(강아지)가 아프고 그걸 꼬박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가족들은 그동안 속이 정말 많이 상했다.
12년을 함께 한 '가족' 같은 말 못 하는 생명체가 옆에서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지는 걸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병원, 저 병원,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교수님도 찾아가서 수술도 해봤지만 결국에는 나을 수 없는 나쁜 병이었다.
일 년이 넘게 가족들과 힘든 시간을 겪었는데 막내(강아지)가 하늘로 간 지 6개월 만에 내가 새로운 강아지를 부모님 댁에 떡하니 데려온 것이다.
부모님은 말로는 무심한 척했지만 멍멍이를 꽤 귀여워하는 눈치였다.
한 번 두 번 데리고 가는 횟수가 늘어나자 아빠는 멍멍이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놀아주기까지 하였다.
멍멍이는 우리 집 이외에 처음 가본 집이라 너무 신이 나는지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녔다.
아빠 서재에 들어가서 책 표지를 다 씹어놓고 엄마가 아끼는 금전수 나무를 잘근잘근 씹어서 혼이 났다.
배변패드를 깔아놓으면 바로 그 옆에 볼일을 봐서 엄마한테 또 혼이 났다.
엄마한테 혼이 나면 아빠한테 달려가서 무릎 위에 쏙 올라가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 괜히 귀엽고 가슴이 뭉클했다.
엄마가 푹신한 수면양말을 신고 있으면 꼭 그 양말을 신은 엄마 발꿈치를 쫓아다니면서 잘근잘근 물고 다녔다.
엄마는 발꿈치가 물린 채 소리를 지르면서 도망 다녔는데 지금 보니 은근히 즐긴 것 같은 눈치다.
금전수 이파리를 먹지 못하도록 그 앞에 펜스를 쳤는데 그 사이로 이를 집어넣어서 하나라도 깨물려고 하는 노력이 가상했다.
휴지통은 어떻게 찾았는지 아무리 치워도 귀신 같이 휴지통을 찾아서 꼭 그 안으로 입을 넣어서 뭐 하나라도 꺼내서 엄마를 열받게 했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고 몸무게가 늘면서 멍멍이는 넘치는 에너지로 가득했다.
집 안에서 해주는 노즈워크 만으로는 넘치는 에너지를 감당할 수 없었다.
산책의 횟수와 시간이 자연스레 늘어났다.
산책을 나가서 아파트 단지를 돌고 또 돌고 그 옆의 공원을 돌고 또 돌고의 연속이었다.
멍멍이는 산책을 하며 보이는 족족 입으로 가지고 갔다.
가장 좋아하는 것은 나뭇가지 그리고 마른 나뭇잎.
나뭇가지는 개껌처럼 잘근잘근 씹느라 필요했고 나뭇잎은 그냥 삼켰다.
먹지 못하도록 혼내고 줄을 당기고 훈련을 한다고 했는데도 그래도 먹었다.
이물질을 먹어서 병이 날까 봐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걸 못하게 하고 그냥 달렸다.
5미터짜리 긴 줄을 사서 운동장을 내리 달렸다.
이 멍멍이는 도무지 만족이란 걸 모르는 듯 보였다.
‘누가 이기나 어디 한번 실컷 뛰어보자’ 하고 한 시간도 넘게 뛴 적도 있다.
인간만 지쳤을 뿐.
하루는 몸살 기운이 있어서 인간은 운동장을 뛰고 싶지 않았다.
‘이 작은 악마(멍멍이)의 넘치는 에너지를 빼앗을 다른 좋은 방법이 없을까?’
작은 테니스 공을 가지고 공원으로 나갔다.
공을 던져주면 가져오긴 하는데 그다지 흥미 있는 표정은 아닌 걸 보니 달리기만 못 한가보다.
결국 그날도 뛰었다.
멍멍이를 임보 하면서 가장 잘 산 아이템은 5미터짜리 리드줄이다.
해외 입양을 가기 전에 멍멍이의 중성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멍멍이는 암컷이라 개복수술을 통해 중성화를 한다고 설명을 들었다.
‘이제 5개월 차인데 너무 이르지 않을까요?’
‘조금 이르긴 하는데 해외입양을 가려면 서둘러서 해놔야 해요.’
‘아 해외입양을요? 꼭 해외입양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요? 멍멍이라면 국내에서도 잘 키울 수 있는 분이 분명히 있을 텐데요.’
‘이 멍멍이 성격을 아시면서 그러세요. 아마 한국에선 키우기 힘들 거예요. 여기저기 다니면서 파양 당하는 것보다 해외로 가서 좋은 환경에서 잘 사는 게 낫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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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의구심이 들었던 순간이다.
'어라, 임시보호는 원래 이런 건가?'
'임시보호자는 그냥 하라는 대로 해야만 하는 건가?'
우리가 애초에 임시보호를 하기로 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절박한 상황의 강아지를 데려와서 사랑과 양질의 성장환경을 제공해 주고 궁극적으로는 가장 알맞은 보호자를 구해서 연결시켜 주는 것.
이번 겨울이 유난히 춥다는데 보호소에 있는 수많은 개들은 이 혹독한 겨울을 어떻게 지낼 수 있을까.
그러던 중 우연히 갈비뼈가 드러난 앙상한 멍멍이가 눈에 들어왔고
‘멍멍이를 우리 집에 데려오면 그래도 병원에서 지내는 것보다는 여러모로 좋겠지.’ 하고 생각하고 임시보호를 결정했다.
그리고 우리 집에 와 있는 한 달 동안 멍멍이가 새로운 가족에게 사랑받으려면 갖춰야 할 기본 소양을 가르치는데 열심이었다.
기본 소양이라고 해봤자 패드에 대소변 가리기와 짖지 않기, 기다리기 그리고 몇 가지 개인기가 전부였지만 말이다.
‘멍멍이에게 좋은 보호자를 구해주자’는 미션의 달성을 위해 우리는 sns계정에 멍멍이 성장과정과 영상을 올렸다.
먹고 싸고 자는 영상이 다수지만 매일 한 개 이상의 게시물을 올렸고 꽤 빠른 시일 내에 많은 팔로워를 모을 수 있었다.
멍멍이의 빼어난 외모 덕분인지 모 유명 유튜브 채널에서 연락이 와서 멍멍이의 입양 홍보를 돕겠다고도 했다.
수 일 고민 끝에 촬영 제의를 거절했다.
그 채널에서는 임시 보호자의 인터뷰가 주를 이루기 때문에 내 얼굴이 꼭 나와야 한다고 했다.
나는 모르는 사람들에게 얼굴이 비치는 건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유튜브 출연제의를 거절한 걸 아직까지 후회하고 있다.
‘그냥 눈 딱 감고 용기를 낼걸..’
멍멍이는 중성화를 마치고 집에 무사히 돌아왔다.
중성화를 하고 집에 돌아온 멍멍이가 이제는 자기 몸만 한 넥카라를 하고 온 집안을 누볐다.
‘아팠겠다. 그래도 중성화는 꼭 해야 해.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해 필요한 거야. 고생했어.’
멍멍이는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항상 있는 그 노란 소파 위에서 야크츄 뜯기에 열심이었다.
멍멍이를 임시보호한 지 한 달이 넘어가던 즈음 우리의 일상은 어느덧 멍멍이 중심으로 바뀌어 있었다.
거실에 있는 물건의 주인은 대부분 멍멍이의 것이었고 인간이 집을 비우는 시간은 최대 4시간을 넘기지 않았다.
강아지의 스트레스 해소에 좋다는 다양한 노즈워크 장난감을 샀고 다양한 간식을 담을 간식통도 마련했다.
물론 산책시간도 늘어난 몸무게만큼 시간을 좀 더 늘렸다.
분리 불안이 생길까 봐 한 달 넘도록 멍멍이는 멍멍이 침대에서 잠을 자도록 했는데 하루는 우리 침대 밑 담요 위에서 똬리를 틀고 자고 있는 걸 발견했다.
‘이 녀석이 우리랑 같이 자고 싶었구나.’
그날은 거실에서 다 같이 이불을 펴고 잠을 자길 시도했다.
멍멍이는 깊은 잠에 빠지니까 코를 골고 배를 까고 다리를 공중에 쭉 펴고 잤다.
그리고 덮는 이불속으로 파고 들어서 인간처럼 똑같이 이불을 푹 덮고 자는 걸 좋아했다.
‘아마 같이 자지 않았다면 절대 몰랐을 모습이었겠지.’
귀엽고 따뜻하긴 했지만 강아지와 같이 자는 첫날에 인간 둘은 밤새 잠을 뒤척였다.
배변패드에 소변을 보러 갔다가 물도 한 번 찹찹 마시고 다시 이불속으로 파고들었다.
새벽 네시에 야크츄도 물어다가 내 얼굴 옆에 던져두고 이불속에서 갈갈거리며 여가활동을 즐겼다.
우리가 번갈아 불침번을 서게 된 이유는 따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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