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견을 임시보호하고 ''해외입양’’을 보내다(1)

안녕, 나의 첫 번째 보호자

by 차oIIc

아래의 이야기는 제 경험을 기반으로 써 내려간 지극히 주관적인 저의 일기입니다.


나와 함께 12년을 지내던 개가 작년 7월 하늘나라로 갔다.

그 후 가족을 잃은 것 같은 처음 느껴보는 상실감에 힘든 날을 보냈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게 정신없이 살았다.

마음이 슬프고 정신을 못 차릴 때에는 미친 듯이 일하는 게 슬픔을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시간은 정말 빠르게 흘러 어느덧 6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작년 12월 모 보호단체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한 강아지를 보게 되었다.

심한 피부병으로 인해 유기됐다는 4개월 달마티안 멍멍이(이름 대신 ‘멍멍이’라고 칭하겠다.)

강아지의 앙상한 갈비뼈가 제일 먼저 눈에 띄었고 병원의 고정식 캔넬 속에서 꺼내달라고 울부짖고 있는 모습이었다.

안쓰러운 광경이었지만 아직 마음에 슬픔이 채 가시지 않았는지 나는 다시 새로운 강아지를 우리 집에 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었는지 스스로에게 확신이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작은 캔넬 속에서 꺼내달라고 울부짖는 멍멍이 모습이 한참을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았다.

가족과 심사숙고하며 많은 대화를 통해 임시보호 신청서를 내보기로 결정했다.


임시보호에는 꽤 많은 조건이 필요했다.

주거형태(빌라 x 오피스텔 x)

1인 가구는 불가. 아무래도 강아지가 혼자 있게 되는 시간이 많아질 것으로 예상하기에 그런 것 같다.

미성년자는 불가.

그리고 가족이 있다면 모든 구성원의 허락이 있어야 가능.

마지막으로 소통이 잘 되어야 하고 SNS계정을 만들어서 적극적인 입양홍보가 가능한 사람 이어야 한다.


임시보호 신청서를 내고 얼마 후 보호센터의 담당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멍멍이는 굉장히 어려운 아이입니다. 괜찮으실까요?’

‘혹시, 어떻게 어려운 걸까요?’

‘천방지축에 왈가닥, 손이 많이 가고 조증에 가깝다고 볼 수 있어요.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담당자는 꽤 많은 임시보호 지원자가 들어왔는데 저희의 조건이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이 된다고 했고 그렇게 저희는 ‘임시보호자’ 타이틀을 받게 되었다.

지난 12년 동안 대형견과 함께 지낸 경험으로 어떤 개든 잘 케어할 수 있다고 자신했는데 그건 나의 오만이었다.


멍멍이가 처음 우리 집에 온 날. 24년 12월 2일

3.2kg의 작은 강아지는 우리 집에 도착하자마자 자기 집처럼 뛰어다녔다.

그 모습을 보니 잘한 결정이다 싶어 흐뭇하고 한편으로는 짠했다.

'이렇게 활동적인 강아지가 그동안 병원 작은 케이지 안에서 얼마나 뛰쳐나오고 싶었을까.'


옴곰팡이와 심한 피부병으로 인해 피부는 아직 군데군데 벌겋게 된 부분도 있었고 귀 안쪽은 시커먼 딱지로 가득했다.

피부병 치료는 모두 끝난 상태였고 따로 처치와 약은 없다고 하였다.

멍멍이는 낯을 가리지도 않았고 처음 보는 저의 품에 와락 안겨있을 줄도 알았다.

‘너 참 사람을 좋아하는구나. 다행이다 입양자를 구하기가 수월하겠어.’

‘내가 정말 최선을 다해서 좋은 입양자를 구해줄게.’

‘우리 3개월 동안 잘 지내보자.’


거실 한쪽에 펜스를 치고 그 안에 배변패드와 쉴 수 있는 침대, 물통, 장난감 이것저것을 넣어주었다.

4개월의 멍멍이는 배변훈련도 전혀 되어있지 않았고 요구성 짖음도 심했다.

그리고 식분증(똥 먹기)도 있었다.


멍멍이와 함께 맞이한 첫날밤은 아직도 기억이 선명하다.

펜스 밖으로 나오고 싶은지 쉬지 않고 펜스를 달그락거리고 우리가 눈에 안 보이면 멍! 하고 짖어서 기어이 인간들이 방에서 나오게 만들었다.

야밤에 층간소음을 만들까 봐 조마조마하며 교대로 잠을 자며 밤을 지새웠다.

강아지가 밤에는 잠을 잘 줄 알았는데 아직은 새로운 환경이 어색한지 새벽에도 깨서 돌아다니고 물을 먹고 쉬야를 하며 마음껏 허용된 공간을 누볐다.

아침 해가 뜨고 정신없는 나날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출근준비를 하기 위해서 침실에서 거실로 나오니 멍멍이는 같은 공간에 사람이 있던 사실을 잊었던지 나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를 꽤에에엑! 하고 질렀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크고 처절했던지 침실에서 자고 있던 가족이 무슨 일이야! 하고 토끼눈을 하고 뛰어나왔다.

강아지는 어지간히 놀랐는지 뒷걸음질을 쳐서 벽 구석으로 기어가 공포에 가득 찬 눈을 하고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 우리 모습이 아직 많이 어색하겠지, 얘가 여기 온 지 아직 24시간도 되지 않았잖아.’

‘커다란 사람이 갑자기 벽에서 튀어나왔으니 애가 얼마나 놀랐겠어.’

꽥! 하고 놀랄까 봐 그다음 날은 조용하게 이름을 불러주며 천천히 걸어 나왔더니 괜찮았다.


아직은 펜스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요구성 짖음이 있었기에 펜스에 넣어놓고 사람들이 앞을 지나다니면 꺼내달라고 짖었다.

목청은 얼마나 좋은지 3.2킬로의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소리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멍멍이가 오고 난 후 우리 집 티브이에는 세나개 혹은 강아지 심신 안정에 도움이 되는 조용한 노래가 항상 틀어져 있었다.


요구성 짖음에는 무시가 가장 좋다고 한다.

하지만 계속 무시하는 방법을 고수하며 짖도록 놔두다가는 무책임한 이웃이 될 것 같아서 매물 차게 무시하지 못했다.

공동주택이 아닌 단독주택에서는 좋은 방법일 것 같다.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결국에는 무시하는 방법으로 요구성 짖음을 완벽하게 고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를 여기에서 꺼내줘, 밥을 줘, 간식을 줘, 나를 안아줘 등의 요구사항이 있을 때 자리에 그대로 앉으면 요구사항을 들어주는 걸로 훈련을 했다.

간식을 주며 훈련을 하니 멍멍이가 정말 똑똑한지 훈련이 잘 되었다.

세 달 동안 줄곧 세나개가 나의 멘토였다.


배변훈련은 집에 온 지 며칠 되지 않아서 알아서 바로 배변패드로 올라가 누는 모습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한번 누면 그 패드에는 다신 볼일을 보지 않고 발에 묻는 걸 싫어하는지 항상 패드의 가장자리에만 대소변을 눴다.

배변훈련이 완성되기까지도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야외배변만 하는 대형견을 키웠던 터라 나는 강아지가 실내에서 이렇게 자주 대소변을 누는지 몰랐다.


끼니도 3번에 나누어 줬더니 공복토를 하길래 5번으로 나누어주니 토하지 않았다.

어떤 음식에 대한 알레르기도 정보가 없어서 다양한 간식을 조금씩 급여하고 반응을 살폈다.

사료는 로열 캐 x 미니인도어 퍼피 사료를 먹여야 한다고 했고 후기를 보니 이 사료를 먹는 강아지들에게 종종 식분증이 있을 수 있다고 하였다.

센터 담당자에게 혹시 사료를 바꿔도 되는지 문의하니 가장 구하기 쉬운 사료가 로열 캐 x이고 어디로 입양 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사료 변경은 안된다고 하여 하는 수 없이 임시보호 기간 내내 동일 사료를 급여했다.

식분증은 우리 집에 온 지 한 달 동안은 꼬박 손을 쓸 새도 없이 빠르게 먹어치웠다.

그래봤자 새끼손가락 하나 크기의 작고 하찮은 응가였지만 배설과 섭취를 동시에 하는 멍멍이를 보며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어디에서 굶어 죽지는 않겠다는 생각도 하였다.

처음 직관 했을 때에는 처음 보는 광경에 흠칫했지만 종국엔 나오자마자 휴지를 집으러 갈 새도 없이 손으로 똥을 치워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루에 서른 개가 넘는 배변패드로 매일매일 쓰레기통은 가득 찼고 멍멍이가 똥을 먹진 않을까 항상 눈은 멍멍이를 향해 있었다.


피곤하고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던 중 문제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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