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은 대단해! 사랑할 수밖에...
나는 식물이 참 좋다. 요즘처럼 색색의 나뭇잎을 보고 있자면 콧노래가 저절로 나온다.
특히 씨앗이 싹을 틔운 그 모습에는 눈을 떼지 못하겠다. 보일 듯 말 듯 작고 여리지만 허리를 곧게 세우고 당당한 연녹색을 띤다. "나도 식물이야!"라고 외치듯이 그 자태를 뽐낸다. 꼬물꼬물 흙 밖으로 얼굴은 내민 그 모습이 사랑스럽다. 너 참 대단하다고 말해주며 귀여운 얼굴을 쓰다듬어 주고 싶다. 내 아이의 웃는 얼굴을 볼 때처럼 행복하다.
아이는 어른인 나보다 훨씬 더 식물을 좋아한다. 풀을 뜯으며 놀고 냄새를 맡고 겁 없이 입으로 가져간다. 네가 살아야 내가 산다는 듯 식물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한다. 쑥개떡을 좋아하는 아이는 길가에 낮게 자리 잡은 쑥을 보며 좋아한다. 이리저리 강아지처럼 뛰어다니며 쑥이다! 쑥이다! 외친다. 맛있는 쑥개떡을 만들 수 있게 해주는 쑥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걸까? 아이는 식물의 고마움을 잘 알고 있나 보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냥 같이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다. 그 쓰임에 따라 보기에 좋거나 먹을 수도 있고 깨끗한 공기와 에너지를 만들어주니 정말 아낌없이 주는 식물이다.
어느 작가의 말처럼 식물은 우리를 유혹하고 있나 보다. 내가 잘 살아야 너희들이 잘 살 수 있다고 속삭이며 다양한 색과 모양으로 우리를 즐겁게 해 준다. 다양한 모양과 향기, 색다른 맛까지 매력이 끝이 없다. 어릴 때 시골에 살았던 나는 자연스럽게 식물과 함께였고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래서 참 좋았다. 마당에 피어있던 맨드라미, 샐비어, 코스모스, 나팔꽃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마당에 있는 식물들을 뽑고 꺾고 냄새 맡고 먹으며 놀았던 어린 시절엔 나도 자연스럽게 감사함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중학교 시절부터 20대까지는 친구가 가장 소중했다. 그때는 꽃이 좋은지 나무가 좋은지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30대가 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나의 시선도 아이의 관심사를 따라 식물과 곤충, 온갖 물체들에게 옮겨갔다. 돌마저 생명체로 대하는 아이를 보면서 나도 함께 돌을 줍고, 조개를 주워 집에 갖고 왔다. 꽃잎을 따다 주며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아이를 보며 봄에 피는 꽃이 더 좋아졌다. 떨어진 낙엽에 사랑한다고 글씨를 써서 주는 아이 덕에 가을이 온 걸 알았다. 해마다 계절마다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아이는 나에게 '엄마! 살아있는 모든 것은 나처럼 소중해요.'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우리는 나이를 먹으며 다시 자연과 가까워진다. 봄에 피는 꽃이 한없이 사랑스럽고 가을에 붉게 물든 단풍을 보고 있노라면 참 행복하다. 눈이 와도 좋고 비가 와도 좋다. 자연이 주는 모든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어린 시절에는 본능적으로 고마움을 느끼다가 나이를 먹으면 그 고마움이 피부에 와 닿는다. 마트에 가면 화분이 눈에 들어온다. 한 개라도 사들고 집에 오는 날에는 가슴이 벅차다. 길을 걷다가 깨진 아스팔트 사이에 핀 민들레를 보면 괜스레 용기가 난다. 다른 꽃은 이미 다 피고 졌는데, 혼자 늦게 핀 철쭉꽃 한 송이에게 말을 건넨다. 내가 꼭 너 같다고. 늦게 폈으니 오래오래 피어 있으라고. 살아있는 내가 살아있는 식물에게 본능적으로 말을 건다. 우리 같이 살아가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