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종 - 페르낭 브로델 : <지중해>,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를 읽고
현대 입자물리학의 가장 큰 숙제이자 궁극적인 목표는 세상 모든 물질의 성질과 운동을 기술할 수 있는 단일이론의 완성이다. 놀랍게도 현재까지 거시세계는 '상대성이론', 원자 이하의 미시세계는 '양자역학'에 의해 거의 다 설명되고 있다. 남은 것은 이 둘을 합치는 일. 하지만 그 하나 남은 단계를 넘어서는 일이 쉽지 않아 이론 작업이 정체되고 있다. 이렇게 세상을 하나의 물리 원칙으로 설명하려 했던 발상의 아버지라면 당연히 뉴턴이다. 그는 '만유인력의 법칙'이라는 하나의 수식을 통해 기존에 관측된 천체 운동에 관한 데이터들을 깔끔하게 설명해냈다.
19세기 말, '물질의 운동처럼 인간의 역사 또한 하나의 법칙으로 설명해낼 수 있지 않을까' 고민했던 이가 있었다. 마르크스는 인간을 자본가과 노동자의 계급으로 나누고 헤겔의 변증법을 독창적으로 해석하여 역사가 혁명에 의해 단계적으로 발전한다는 ‘사적 유물론’이라는 이론체계를 만들어냈다. 마르크스가 인간을 설명하는 데 기여한 바가 있다면, 바로 한 인간의 정체성이 ‘노동’이라는 외부의 기준에 따라 규정될 수 있음을 밝혔다는 점이다. 이와 유사하게 프로이트가 이성 너머 성 충동이 지배하는 무의식이라는 정신 구조를, 레비스트로스가 아프리카의 원시부족을 연구하며 모든 인류를 관통하는 친족제도의 규칙을 밝혀냈다. 이들의 연구결과는 인간의 이성 너머에서 그동안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외부적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었다는 충격적인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구조주의의 시대가 본격화 되면서 인간은 이성이라는 집에서 집 주인의 지위를 잃고 쫓겨나고 만다. 구조에 지배당하는 인간은 더 이상 자신의 이성으로 온전히 자기 자신의 존재를 밝힐 수 없는 존재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페르낭 브로델의 <지중해>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는 이러한 구조주의적 인식의 토양 위에서 자라난 결과물이다. 브로델은 16세기 전후의 지중해와 전산업주의 시대의 자본주의를 구조적으로 파악하려 한다. <지중해>에서는 '구조(장기지속)-콩종튀르(중기지속)-사건(단기지속)',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서는 '물질문명-시장경제-자본주의'의 도식을 기초로 역사를 분석한다. 그의 역사관에 따르면 역사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없다. 역사란 한 명의 역사적 인물의 결단에 의해 전진하는 개념이 아니다.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차원의 구조들이 역학관계에 따라 맞부딪히며 만들어내는 것에 가깝다.
그러나 브로델에게는 다른 구조주의자들에 비해 특이한 구석이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그의 역사에서 법칙은 그저 거들뿐이다. 경제, 인구, 지리 등 다양한 관점에서 역사의 구조를 밝히려 했으면서도, 그 중 어느 하나의 측면이 지배적이라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계경제사란 따라서 세계의 전체사이되 그것을 경제라는 독특한 전망대에서 바라본 역사이다. 그런데 (...) 어떤 전망대를 선택하든 간에 그것은 사전에 어느 한 일원적인 설명에 우위권을 준 것"이라는 대목이 내게는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가 하나의 이론으로 모든 역사를 설명하려는 '환원론'적 유혹을 이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어쩌면 '전체사'를 서술하겠다는 집념에 있지 않았을까.
하나의 원리로 환원되지 않은 채 '전체사'를 서술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덩케르크>(2017)가 이에 대한 좋은 예시가 될 수 있겠다. 놀란 감독은 2차 세계대전의 '덩케르크 철수 작전'을 스크린에 온전히 담아내기 위해 특별한 방법을 도입한다. 덩케르크 해안가라는 하나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동시적 사건을 하늘, 바다, 땅의 세 관점으로 나눠 보여준 것이다. 참신한 연출을 통해 전장의 진실을 성공적으로 드러냈다는 평을 받았지만, 이 역시도 한 씬에 한 공간의 관점만을 보여주는데 만족해야 했다. 어쩌면 전체사라는 진리를 온전히 규명하는 작업은 '한 쪽 눈을 감은 채, 양쪽 눈을 뜨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브로델이 '구조의 영향력'과 '인간의 자율성'의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고뇌했던 흔적은, 그의 서적에 담긴 방대한 분량의 사료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안타깝게도 브로델 이후 '구조-콩종튀르-사건'의 틀을 통해 거시적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브로델 역사학'은 자취를 감춘다. 하지만 그가 이룩하려 했던 전체사의 꿈은 후배 역사가들이 인간의 역동성에 주목한 새로운 미시사로 해체되는 방식으로 계승된다. 마치 <덩케르크>에서 '하늘, 바다, 땅'으로 나누어 하나의 역사적 현장을 온전히 재현해냈듯이 말이다. 영국의 철학자 화이트헤드는 "서양의 2000년 철학사는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감히 플라톤에 브로델의 성과를 비길 수는 없겠지만, 그의 통찰이 오늘날의 역사학의 흐름에 결정적인 단절의 계기를 제공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혹시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전통적 가치규범의 혼란으로 흔들리는 오늘날, '변하지 않는 것'에 주목했던 브로델의 역사철학이 재조명 될 수 있을지를 말이다. 구조에서 출발해 인간에 닿으려던 그의 시도를 완성시키는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