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키우던 용이 있었다. 사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 누구라도 나를 미친X 취급할 거란 걸 알고 있다. 무당조차도 감히 네가 뭔데 용을 키웠냐고 하지 않을까?
그런데 내가 키우고 싶어서 키운 건 아니었다. 약 2년 전. 평소처럼 일하고 있었는데 김보살이 계속 집구석의 장롱을 쳐다봤다. 대체 저기에 뭐가 있는 것일까... 또 귀신이 있는 건 아닐까 괜스레 걱정됐다.
“집에 연기 같은 거 꼈어?”
“뭔 소리야...?”
말도 안 되는 소리에 김보살을 바라봤다. 김보살은 장롱 앞에 서더니 한참 동안 한 곳을 바라봤다.
“여기에 뭉게뭉게 피어있는 건 뭐지...?”
그렇게 말해도 내가 알까. 이상한 눈으로 김보살을 바라봤다. 김보살은 혼자서 매우 심각한 상태였다. 나도 심각해졌다. 이 집에서 앞으로 몇 년은 더 살아야 하는데 습기가 많이 차서 안개처럼 뭔가 생긴 건 아닐까 하고.
김애동에게 연락하니 김애동이 집에 찾아왔다. 그리곤 장롱 앞에 가서 자리를 잡고 앉더니 뭉게구름이 있다는 곳에 손을 올리고 눈을 감았다. (*이때만 해도 자기가 무당의 길을 갈 거라곤 생각도 못 했고, 그저 이런 걸 좀 느끼는 정도라고만 생각했던 때다) 한참을 가만히 서서 있던 그녀는 눈을 뜨더니 말했다.
“밥 먹을 때 밥 좀 바쳐주거나 해봐.”
...?
갑자기 나에게 왜 이런 일이? 눈으로 보이는 김보살도 아니고, 뭔가 느끼는 김애동도 아닌 일반인인 나? 아무리 장롱을 바라봐도 아무것도 없는데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이게 정말 맞는 것일까?
김보살도 가서 가만히 그 뭉게구름이라는 것 앞에 서서 바라보았다.
“잉어...? 용...? 인 거 같은데? 비닐 같은 게 있는 거 같아”
‘아니 그러니까 왜 우리 집이냐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았다.
“아직 뭔지 모르겠지만, 잘 자라면 보답할 거야.”
보답이라니. 급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존재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용과의 동거(?)가 시작됐다. 매번 밥을 먹을 때, 흰쌀밥을 한 공기 더 퍼서 근처에 두었다. 김보살이 말하길 밥을 퍼서 두면 그 위로 뭉게구름이 몰려온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생각나는 말이 있었지만 차마 말하진 않았다. ‘그냥 밥에서 김 나오는 게 그렇게 보이는 거 아니냐고.’
이렇게 믿지 않았지만, 해서 손해 보는 게 없고 잘되면 좋은 일. 그런 것이라면 해 보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나이기에 매일매일 한 끼는 꼭 챙겨주게 됐다. 그리고 김보살은 틈틈이 우리 집에 찾아와서 뭉게구름의 상태를 살펴봤다.
“어, 꼬리가 나왔다. 뭐지? 꼬리가 우리가 아는 용 꼬리가 아닌데? 물고기 꼬리 비슷해.”
“그럼 용이 아니라 잉어 아니야? 등용문 있잖아.”
“그런가...?”
잉어라서 조금 실망(?)한 나에게 잉어도 충분히 복을 불러다 준다는 말에 다시 기분 좋게 챙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소 불순한 마음으로 밥을 주기 시작한 나는 보이지 않는 이 존재에게 정이 가기 시작했다. 기도해야 더 빨리 자란다는 말에 사소한 기도를 드렸다.
거의 매일 같이 위염에 시달리던 나였기에 ‘오늘은 위가 안 아프게 해주세요.’ 혹은 ‘오늘 일 하는 게 무던하게 흘러가게 해 주세요.’ 같은. 사실 복권을 기도해 봤는데 이 아이는 그럴 힘도 없을뿐더러 복권에 당첨될 운이 있는 사람이나 알려주지 아니면 알려주지도 않는다고 했다. 속상하지만 위가 안 쓰리고 일이 무던하게만 흘러가도 참 다행이지 않나 생각하며 늘 같은 기도를 드렸다. 플라시보 효과일지 모르겠지만 정말 위는 아픈 횟수가 줄어든 것 같았다.
그렇게 알지 못한 존재와의 동거를 시작한 지 3개월쯤 지났을 때, 그 아이가 용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 사건이 있었다. 김애동이 뭉게구름에 손을 대고 앉으면 기가 충전되는 느낌이 든다고 손을 가져다 댔는데, 김보살이 ‘우와~’라고 감탄했다. 순간적으로 김애동의 몸에 뭉게구름이 탔는데, 어깨 위에 용이 자리 잡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용이 된 지 8년 정도 된 애기라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우리는 이무기가 1,000년 동안 수행해야 용이 된다는 것과, 8살이라는 애기를 합쳐서 ‘천팔짤(1008살) 용용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그렇게 ‘용용이’라고 부르는 게 일상이 됐다.
시간이 지나 김애동이 신을 모시게 되면서 용용이를 볼 때마다 부러워(?)했는데, 용용이는 내가 챙겨주는 첫 사람이라 그런지 내가 주는 대로 다 먹었고 덕분에 입이 현대화(?)되었다. 하지만 김애동이 모시는 신님은... 과일, 성수 같은 것밖에 안 드시기 때문에 김애동은 매일 과일을 사러 나섰고, 틈틈이 성수를 뜨러 다녔다.
하루는 용용이가 김보살 꿈에 나와서 ‘초밥을 먹고 싶다.’고 했다나...
용용이는 달걀 프라이를 좋아했는데, 용용이를 잘 키우려면 매일 달걀 1판은 먹여야 한다고 했다. 죄송하지만 그럴 수 없다고 했다. 달걀은 누가 다 먹을 것이며, 달걀값은 어떡할 것인가. 현실적으로 못하는 건 못하는 것. 대신에 내가 밥을 먹을 때마다 자주 챙겨주기로 했다. 그 덕분인지 더디지만 꾸준히 몸집을 키웠는데, 어느새 비늘 하나가 내 장롱 한 개만해졌단다. 푸른빛을 띠면서도 오색 찬란한 빛을 가진 비닐이라 볼 때마다 예쁘다고 했다. 김보살의 눈을 단 한 순간만이라도 가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용용이가 다 크고 나면 한 번이라도 볼 수 있을까?’ 내겐 일어나지 않을 상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