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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Jan 23. 2022

일 년 동안 기억한 선물

아버지는 1년간 나의 불평을 잊지 않고 계셨다.


일 년 동안 기억한 선물 


“지금 너희 집으로 가도 되냐?” 12월 31일, 한 해의 마지막 날 아버지께 갑자기 전화가 왔다. 지금

집으로 오신다는 거였다. 나는 그날도 근무 중이었고, 남편은 재택근무 중이라 집에 있었다. 방문하고 싶으신 이유는 이거였다. 아버지는 그날 근무를 하지 않는 날이셨고 마침 우리 생각이 났다. 오고 싶으셨던 이유는 이렇다. 


우리 부부는 아버지께 전세를 들어 살고 있다. 이 집에 들어올 때 집을 리모델링했는데, 집에 현관 등이 없었다. 나는 처음부터 불편하다고 내색했지만, 다시 공사를 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건전지로 작동되는 조명을 사서 달고 지내 왔었다. 막상 그렇게 살다 보니 또 적응이 되었다. 저녁 어두운 거리를 가로등에 의지하여 가듯, 희미한 조명이지만 거실 등 스위치까지는 버틸 수 있는 조도였다. 하여간 현관 등 없이 산지도 거의 1년이 지났고, 이미 어느 정도 익숙해진 채였다.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는 현관문을 고쳐주고 싶다고 오셨다. 우리에겐 새삼스러운 일이라 갑작스러웠다. 그래도 남편은 급작스럽게 오신다는 장인어른 때문에 허둥지둥 지저분한 거실을 치우고 아버지를 맞았다. 아버지는 어색한 얼굴로 ‘이서방 잘 있었는가.’라고 인사했다. 아버지는 등을 2개 가지고 오셨다. 우리 집에는 집 안으로 들어오기 전 바깥 대문이 하나 있는데 그곳 대문 등과, 집 내부 등을 달려는 생각이셨다. 키가 크지 않은 아버지를 위해 남편은 의자를 가져다 드렸다. 그리고 노래도 틀어 드렸다. 남편은 재택근무 중이었지만, 바로 옆에서 펼쳐지는 조명 공사 때문에 집중하기는 어려웠다. 아버지는 “자네 일 봐~ 일 해~”라고 하셨지만… 장인이 의자 위에 올라가 낑낑대고 있는데 일이 손에 잡히겠는가. 그렇게 조명등 공사를 마치고, 남편과 아버지는 순댓국을 배달시켜서 먹었다. 우리 부부는 평소 옆으로 앉아서 밥을 먹는다. 모니터를 식탁 앞쪽에 두고 TV를 보면서 양 옆으로 앉아서 밥을 먹는다. 그런데 아버지는 당연히 마주 볼 것으로 생각하고 의자를 앞에 두셨다. 그렇게 장인과 사위는 마주 앉아 식사를 했다. 그때까지 나는 사태를 모르고 정신없이 일하는 중이었다.


“아버님 연말인데, 등을 갑자기 달아주러 오셨네요?(웃음)” 


“아 내가.. 원래..” 


아버지는 내가 처음 투덜거릴 때부터 저 등을 달아주고 싶었다고 하신다. 그런데, 본인도 등을 어떻게 달아주는지 몰랐다고 한다. 아버지는 원래 전기 쪽 일을 하신 적이 있어서, 그런 부분을 약간 하실 줄 알고 계셨다. 하지만 현관 등은 달아본 적이 없으셨다. 그래서 주변에 아는 분께 수소문해 현관등을 다는 방법을 최근에 배우셨다고 하신다. 물론 돈을 내고 그냥 달아줘도 되었겠지만, 이왕 하는 거 마음에 들게 하고 싶었다고 하셨다. 그래서 하는 방법을 배운 뒤에 달아주러 오셨다고 한다. 우리가 이 집에 거주한지는 1년 정도 된다. 아버지는 1년간 나의 불평을 잊지 않고 계셨다. 갑자기 온 아버지 때문에 나는 남편에게 미안했지만, 그래도 환한 현관 등을 보며 마음이 따스해졌다.


귀가하는 매일 아버지가 달아준 등 덕에 현관이 밝다. 나조차 잊어버린 약속을 부모님은 생각하고 계신다. 딸의 약속을 1년간 간직하고 있는 다정한 마음. 그 은혜는 내가 도저히 헤아릴 수가 없다. 신발을 벗고 부엌까지 걸어가도 한참 켜져 있는 불빛이 아버지의 마음 같다. 올해의 마지막, 그리고 한 해의 시작에 가장 따스한 선물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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