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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Jan 12. 2021

첫눈을 맞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설에 대해

지키고 싶은 약속들이 있어 계절은 좀 더 아름다워지겠지

첫눈과 사랑이 이루어지는 설에 대해


A는 창문 난간 사이에 쌓인 눈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고민하고 있었다. 교수가 왔을 때 출석을 마친 지금 바깥으로 나갈 것인가? 아니면 쉬는 시간에 나갈 것인가. 단순히 교수의 시야에서 벗어날 것을 고민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지금 펑펑 내리고 있는 이 첫눈이 A가 바깥으로 나갈 때까지는 내리고 있어야 했다. 바깥에서 B가 기다리고 있었다.


B는 만난 지 100일 된 남자 친구였다. 그는 커다란 곰인형을 A에게 안겨주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첫눈을 맞으면 평생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말을 믿는 남자였다. 그는 A와 사귀게 된 가을부터, 같이 첫눈을 맞으면 좋겠다며 첫눈에 대한 로망을 계속 얘기했었다. 캠퍼스 커플인 두 사람의 수업이 겹치지 않는 시간 첫눈이 내렸고, B는 수업을 듣고 있는 A가 수업을 빠지고 나와 첫눈을 함께 맞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깥으로 나온 A에게 B는 고동색의 장갑을 건넸다. “첫눈 와. 성공이야” 그런 B의 바보스러운 웃음과 지금 샀어도 올이 빠져 보이는 싸구려 같은 장갑 덕분에 A는 웃었다. “이런 거 필요 없어 손잡으면 되지~” 만난 지 몇 분 안돼서 느껴지는 어색함을 채우는 사근한 표현으로 A와 B는 손을 잡고 걸었다. 머리 위로 눈이 떨어졌다. 첫눈은 아직 그들을 기다려주고 있었다. A는 눈썹 위로 스치는 눈발에 눈을 깜밖이며 생각했다. 


'이렇게 함께 계속 걸어가겠지'



A는 창문 난간 사이에 쌓인 눈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고민하고 있었다. 내일 출근길은 괜찮을 것인가, 쌓인 눈을 치운다면 지금인가 아니면 내일 새벽인가. 태어나서 30번째로 맞이하는 첫눈이었다. 올해 첫눈인데 어지간히도 많이 온다 싶었다. 


“아 추워 문 닫아” C가 이불속에서 외쳤다. A는 C앞에 핸드폰을 내밀었다. 


‘ [행정안전부] 오늘 15:30 서울, 인천, 경기, 충남 지역 대설주의보 발효 중, 내 집 앞 눈 치우기, 대중교통 이용………’  


“이거 봐 눈 누가 치울 거야? 내 집 앞은 우리가 치워야 되는 거야”


C가 몸을 일으켰다. “그래, 하긴 해야겠지, 체스로 정하자” 


A는 체스판을 꺼내왔다. 일어난 A의 코끝에 세차게 불어오는 겨울바람과 함께 첫눈이 코에 닿았다. A가 중얼거렸다. “에이 눈 들어오네, 이제 닫아야지” 그들은 창문을 닫고, 체스판을 펼쳤다. 


A는 첫눈을 함께 맞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을 잠깐 생각했다. 그동안 몇 번이나 전설을 이룰 용자들을 지나쳤던가. 코에 물기만 남기고 녹아버린 첫눈을 A는 손가락으로 쓱 찍어, C의 뺨에 발랐다. C는 뭐하냐는 눈으로 훑더니 체스판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냥 맞고 싶던 첫눈이 치울 것이 되었다. A는 첫눈을 맞으러 강의실을 나온 날을 떠올렸다. 지키고 싶은 약속들이 있어 계절은 좀 더 아름다워지겠지 생각하며 A는 커튼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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