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노래 Oct 04. 2021

누군가를 앞에 두고 울 수 있는 용기

며칠을 연이어 철야 업무를 하다 모처럼 일찍 끝난 날이다. 지금 내 머릿속은 오 로지 따뜻한 이불 속에서 쉬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차있다. 그 전에 집 앞에 있는 작은 바에 들러 혼자 맥주 한잔을 하는 것도 빼먹으면 안 된다. 그건 내가 굉장히 사랑하는 행위 중 하나이다. 약간의 술은 피로로 인해 단단해진 마음을 연화시키는 능력이 있을뿐더러 나를 꿀잠으로 이끌어 주기 때문에.


그렇게 칼퇴 후 곧장 동네로 달려와 혼자 바에 앉아 맥주를 마신다. 요며칠의 치 열했던 업무는 잊고 약간 동떨어진 세계에 있는 기분을 만끽하고 있을 때, 전화 가 온다. 보통 이 시간에 오는 전화라면 회사에서 급한 일이 터진 것일 터. 불안 한 마음으로 액정을 보니 의외의 이름 세글자가 떠있다. 그녀는 나는 대학 동기 이고 주 1회 이상 만나는 사이지만 여럿 중 하나로 우리 둘을 떼어 놓고 봤을 때 그렇게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즉, 이 밤에 따로 전화할 일은 없는 사이.


“지금 잠깐 볼 수 있어?”
 친구는 헤어진 전 남친을 잡기라도 하듯 물기 어린 목소리로 나를 호출한다. 다 시 말하지만, 오늘은 정말 너무나도 간절하게 쉬고 싶은 날이다. 하지만 나는 내 휴식을 위해 울고 있는 친구를 그냥 둘 만큼 실리적인 성격이 못된다. 남자친구 와 싸운 걸까, 키우는 강아지가 아프기라도 한 걸까. 새삼스러운 연락이었기에 더욱 걱정스�럽다. 애매하게 남아있는 맥주를 한입에 털어 넣고 서둘러 그녀에 게 향한다.


그녀를 만나러 온 곳은 그녀의 집 앞에 있는 다코야끼 가게다. 서른 중반쯤 된 언니가 혼자 운영하는 가게로 다자 바가 있고 그 안쪽에서 다코야끼를 구워 내 주는 작은 술집이었다. 다코야끼와 맥주를 주문하자마자 친구는 목을 놓아 꺼이 꺼이 울기 시작한다.


“더러워서 못 해 먹겠어!”
 아, 이건 회사 일이구나. 그녀의 한 마디에 회사 일이란 것을 직감할 수 있다. 그녀와 나는 사회초년생으로 하루가 멀다고 야근을 하고, 상사에게 깨지곤 했 다. 오늘 그녀를 울린 이유는 열심히 하는데도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아 서� 다는 것이다. 나와 전혀 다른 분야의 일을 하는 그녀이지만 그 설움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실질적인 솔루션을 줄 수는 없지만, 그녀의 말에 끄덕끄덕 리액션하고, 괜찮다고 달래어 본다.

“너를 강하게 키우려고 그러는 거야.”
 나는 애써 웃으며 그녀의 편에 서서 들썩이는 어깨를 토닥여보지만, 서러움이 북받친 그녀의 어깨는 쉬이 잦아들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지금 네가 누굴 위로할 때야?’
 사실 어젯밤, 이시간만 해도 나는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지난 삼 일간 총 여섯시간도 채 자지 못했다. 아무리 사회초년생이라지만 며칠째 하루 두어 시간만 잠을 자며 일을 하다 보니 몸도 지쳐갔고 맡겨만 주면 잘 해내겠노라고 큰 소리는 쳤지만 패기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거기다 오늘은 클라이언트로부터 인격적인 모멸까지 느낀지라 일이고 뭐고 이대로 사라지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 주제에 내 마음속은 평온하다는 듯 위로를 하고, 다 큰 어른을 흉내내고 있는게 가당키나 한 일인지. 나 스스로가 위선적으로 느껴진 것이다. 그리고 힘들다며 누군가를 불러내어 스스럼없이 털어놓는 친구가 부럽기도 하다. 내 주변에는 늘 사람이 많았고, 나는 그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고 느꼈지만 지치고 힘들 때 그들에게 기대는 법은 잘 몰랐다. 내가 느끼는 마음의 무게가 혹여나 듣는 사람에게 짐이 될까 봐 지레 조심스러웠던 것이 다. 그러다보니 내 마음은 점점 무거워져 갔고 결국은 헤어나오기 어려운 우울이나 공황장애로 발현이 되며 결국 내 자신을 더 괴롭혔다. 그런데 지 금 내 앞의 친구는 오늘의 설움을 달래기 위해 나에게 기대고 있다. 그건 내 가 하지 못하는 영역의 것이다.


심지어 그녀가 목놓아 울고 있는 이 공간은 우리 둘만 있는 공간이 아니다. 앞으로 다코야끼가 먹고 싶을 때면 늘 마주쳐야할 사장언니가 있고, 우리 외에도 두어 팀의 손님이 더 있다. 가게는 꽤 좁았기에 누구라도 우리의 대 화를 엿들을 수 있다. 나의 가난한 마음은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일로 누군 가 내 이야기를 들을까 주저했을 것이며, 비난할까 걱정했을 것이다. 하지 만 이 친구는 지금, 이 순간 다른 무엇보다 본인의 감정에 충실한 것이다.

한참이 지났다. 벌겋게 부은 눈으로 다코야끼를 한 입 베어물고, 꼴깍꼴깍 맥주잔을 비우는 그녀가 귀여워 웃음이 난다.
 “그렇게 슬퍼도 맥주는 들어가?”
 민망한 듯이 웃어 보이는 그녀. 눈물에, 목청에 설움을 조금씩 섞어 보냈는 지 제법 후련해 보인다. 못해먹겠다는 말은 온데간데 없고 내일 출근을 위 해 이만 일어나자며, 남은 맥주를 마시고 헤어진다.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쩐지 마음 한 켠이 허전하다. 조금만 용기내서 나도 같이 울어볼걸 그랬나 싶다. 누구에게든 전화를 걸어 울고 싶다고, 위로받고 싶다고 말하고 싶다.

이전 03화 술꾼과 그의 아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