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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혜BaekJi Jan 09. 2021

작문 1.

‘오늘 엄마가 죽었다. 그리고 다시 살아났다.’ 이름 유시인. 풉. 웃음이 나왔다. 계속된 스와이핑으로 피곤에 절은 손가락도 잠시 멈췄다. 얼굴 없는 뒷모습 상체 프로필 사진은 성별조차 구분할 수 없거니와 그의 비장한 프로필 메시지. 다른 인간들은 어떻게든 시선을 받아보려고, 온갖 하트 이모티콘을 동원해 별의별 도발적인 ‘상메’를 써내는 마당인데 이 사람은 혼자서 선비다. 그래도 호기심에 오른쪽 스와이핑을 했다.

자칭 유시인과 매칭이 되었고 그 쪽에서 먼저 메시지를 보내왔다. ‘안녕?’이라는 평범한 메시지에 일단 성별을 물었다. 이 작자는 곧 ‘너는 내가 뭐였으면 좋겠어?’라고 되묻는다. 보통 기인이 아니라는 생각에 재빨리 ‘너 상메 ㄹㅇ이야?’로 질문을 바꿨다. 자기만의 매칭 전략이라든지, 직업이 소설작가라는 둥의 말이 나오겠거니 했는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진짜라는 것이다. 다만 5년 전이다.

‘한강의 기적’ 그의 어머니는 5년전 항간을 떠들썩하게 한 그 사람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마포대교에서 정말 몸을 던졌다. 그가 일을 하러 나간 사이에 어머니는 이미 유서까지 집에 남겨둔 상태였다. 그런데 어머니의 몸이 한강물에 닫자 마자 트렘펄린에서처럼 몸이 다시 튕겨져 마포대교에 안착되었다. 이 모습이 당시 한강 cctv에 찍혔고 동영상이 인터넷에 퍼져 말 그대로 난리가 났다. 2주동안 실시간 검색어 1위가 ‘한강의 기적’이었다. 시인의 어머니는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한강의 괴물을 취재하던 케이블 다큐멘터리는 어머니가 떨어진 부분이 우연히 한강 괴물의 탄력있는 피부였을 수도 있다는 주장을 했지만 역시 대중의 포커스는 시인의 어머니였다. 생활고를 겪은 한 시민의 자살시도가 실패한 것은 곧 ‘신의 메시지’라는 프레임이 입혀졌다. 그 기적은 영화, 드라마로 만들어져 상당한 인기를 끌기도 했다. 지속되는 경기불황과 재난사고로 우울한 대중에게 이러한 기적의 이야기가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유명세는 곧 돈이 되었다.

시인은 기적 이전 어머니와 자신들의 삶은 투명인간이나 다름없었다고 말했다. “분명히 옆집에 사람들이 사는데, 우리가 거기서 죽어버려도 아무도 모를 것 같았어. 해봤자 월세 재촉하는 집주인?” 기적 이후 그들의 삶은 경제적으로 나아졌고, 매일같이 사람들이 찾아왔다. 더 이상 투명인간이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많은 사람들이 시인의 어머니를 따라하다가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대부분 빚에 허덕이거나 가족이 없는 사람이거나 했다. 한강물은 그들을 튕겨내지 않고, 빨아들여버렸다. 신의 대리인으로까지 추앙되던 어머니에게는 곧 악마의 대리자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육 개월이 지나 대중의 관심도 시들어졌다. 그리고 ‘엄마는 사라졌어.’

‘그런데 나 지금 기적을 같이 일으킬 사람을 찾고 있어. 관심 있니?’ 이게 그의 목적이었다. 동반 자살을 하자는 것인가? 생각이 들 때쯤 ‘우리 엄마가 돌아왔거든’ 이라고 시인이 말했다. 시인은 장소를 알려줬다. 오후 한시 삼성역. 그게 다였다. 워낙 사람이 많은 장소고 더구나 오후 한 시니 무슨 큰 일을 당하겠나 싶었지만 여전히 걱정이 앞섰다. 솟구치는 호기심을 참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사람들에 섞여 유시인이 어떻게 생겼는지만 보자하고 결론을 내렸다.

오후 한 시 즈음 난 삼성역에 도착했다. 사람이 유독 많은 주말이었다. 저마다 잰 걸음으로 각자의 목적지를 향하는 도시의 사람들이 넘쳐났다. 그 곳 어딘가에 시인이 있을까하고 생각하던 찰나 앱 알림이 울렸다. ‘다 왔니?’ 너는 어딨냐고 물어보기도 전에 그는 ‘나 지금 날거야. 하늘을 봐.’라고 했다. 순간적인 긴장감과 함께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하늘마저 수많은 빌딩으로 이미 도시화 되어 있었다. ㅇㅇ호텔 빌딩 꼭대기에 뭔가가 보였다. 너무 작았지만 움직이고 있어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가 과연 저기 있는 것일까? 주변을 둘러보니 열 사람 사람 정도가 나와 같은 곳을 아무 말 없이 보고 있었다. 모두 ‘기적’을 보기 위해 시인이 초대한 사람들이었다. ‘안녕. 이제부터 진짜 기적이야’라는 메시지가 왔고, 그 사람은 하늘을 향해 몸을 던졌다.

 초대받은 이 중 한 명의 비명때문에 그가 일으킬 기적을 1000명이 목도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놀란 듯 입을 틀어막았지만 나는 그가 떨어지는 중에도 계속 그가 어떤 기적을 일으킬까 생각하고 있었다. 날개가 돋혀 날아갈까, 땅이 트램펄린처럼 그의 몸을 부드럽게 튕겨내줄까. 아무런 특별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날 이후 뉴스는 연일 ‘강남 한복판 투신자살’을 다뤘다. 사망자는 직장도 없고 가족도 없다. 완벽한 투명인간이었다. 그가 자살 전 소개팅앱을 통해 목격자를 모은 것을 토대로 방송과 언론은 희대의 자살쇼라며 사건을 프레임 입혔다. 실시간 검색어 1위는 한 주동안 ‘강남 자살쇼’이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이 자체가 기적이었다. 투명인간이 비로소 이름을 알렸으니 말이다. 그가 공장 같은 곳에서 사고로 죽었다고 해도 사회에는 그의 이름이 이렇게나 오르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삶이 괴로운 투명인간들의 죽음은 그저 숫자로 치환되는 그런 사고일 뿐이다. 시인이 내게 들려준 자기 어머니의 이야기가 진짜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가 그런 환상적인 이야기를 자기 이야기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나는 ‘기적’을 보겠냐는 바보같은 제안에도, 홀린 듯 이곳으로 왔을까. 투명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사람에게 알릴 수 있으려면 ‘환상’이나 희대의 자살쇼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일까.


- 3문단의 이미지는 중학교 만화 그리기 수업 때 어렴풋이 내 머리에 들어왔었다. 그때 이를 토대로 그린 네 컷 만화가 꽤 칭찬을 받았는데, 그것을 토대로 하나의 스토리를 구성해봤다. (뭐 지금 글을 써야하는 일이 있어서기도 하고.)  이 이야기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써졌다. 무엇보다 이야기를 쓴다는 게 정말 재밌다. 에세이로 쓰기 어색할 때, 창피할 때, 이야기를 하고는 싶은데, 이게 내 이야기라는 것을 드러내기 싫을 때, '위장막'으로 스토리는 나쁘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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