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가 되었다.

살아가기

by 김옥진

입원한 내 옆에서 보호자 노릇을 톡톡이 하고 싶었던 남편은 5층에 있는 '간호, 간병 통합서비스 병동' 문 앞에서 쓸쓸히 되돌아갔다. 딱히 신청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곳에 입원을 하라고 했다. '간호, 간병 통합 서비스 병동'이란 보호자가 없이 간호사가 모든 것을 케어하는 곳으로 보호자는 들어갈 수가 없다. 이 참에 혼자 조용히 쉬라는 지인의 말에 홀로 씩씩한 척했다. 나는 오늘 환자가 되었다.


그래 볼까? 그런데 도대체 가만히 놔두질 않는다. 쉴 만하면 자꾸 뭔가를 시킨다. 수술동의서, 40000원짜리 비급여 설명, 수술 과정 설명을 들었다. 운이 좋으면 통통한 내 손과 팔에 깊이 숨어 있는 정맥혈관을 단 한 번에 찾아내는 혈관주사 잘 놓는 간호사를 만난다. 다행히도 아직 내 몸은 전쟁을 치르기 전이라서 그나마 수월히 정맥혈관을 찾았다. 20G 바늘이 꼿이고 바늘 입구에 3 way부속품을 달고 덕지덕지 반창고를 붙였다. 간호사는 손등을 거의 덮다시피 한 반창고 위에 주사를 놓은 날짜, 시간, 바늘 굵기를 검은색 매직으로 썼다. 다시 혈액검사를 해야 한다며 튜브 다섯 개에 피를 받아갔다. 나의 이름 스티커가 붙여진 종이컵에 소변도 받아오란다. 다시 1층 방사선실로 내려가 엑스레이를 누워서 한번, 서서 세 번을 찍은 후 4일 전 시행한 심전도 검사를 또 했다. 방사선 센터 접수를 키오스크 식으로 바꾸어 놓은 통에 소위 간호사인 나도 바보가 된 느낌이다. 어리바리한 환자가 된 나와 똘똘한 병원 직원과의 안 보이는 신경전이 느껴진다. 더 나이 들어, 더 아플 때는, 아파도 그러려니 하고 그냥 집에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입원을 하고 나니 내 몸은 이미 내 것이 아니다. 벗으라면 벗어야 하고 바늘을 찔러야 한다는데 싫다고 할 수 없다. 가슴을 내놓으라는 말에 쓸쓸한 젖가슴은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납작 엎드린다.

대학병원은 골목골목 사람도 많고 복잡해서 엑스레이를 찍은 후 병실로 돌아가는 길을 찾아갈 수 있을까 살짝 걱정도 되었다. 시술 부위 면도는 자동 기계로 바뀌었다. 동물병원에서 개나 고양이 털을 깎는 그런 모양의 자동 면도기로 잠깐 사이에 털이 잘려 나갔다. 약간 따갑다. 저녁밥이 나왔다. 조가 섞인 밥, 연어 조림, 산나물 무침, 뭇국, 김치, 불쌍해 보이는 색깔 없는 잡채가 차려졌다. 석이버섯 한 조각이 채쳐진 어묵 가락과 애쓰고 있다. "황후의 밥, 걸인의 찬"이라면 너무 과한 생각일까? 대량으로 만들어진 밥은 환자 각각의 상태에 따라 과학적으로 배식되는 것이겠지만 집밥만 할까? 오래 먹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음식이 담긴 플라스틱 그릇이 거슬려 더 맛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내일은 시술을 해야 하니 굶을 것이고 저녁에나 곡기를 만나니 그나마 다행이다.


시술 중 다른 이벤트가 있으면 잠깐 중환자실에도 갈 수 있다는 말에 진정으로 그렇게 되지 않기를 기도한다. 밥을 얼마나 먹었냐, 소변은 몇 번 봤냐, 등등 입원한 지 세 시간밖에 되지 않았는데 나의 생체에 대한 것들이 기록되고 있다. 오후 여덟 시가 되자 금식 딱지가 침대 머리에 붙여졌다. 밤 12시부터 일절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없어야 한다.

열 시, 야간 근무조로 간호사가 바뀌었다. 이브닝 번 간호사는 나를 어떻게 인계했을까? 건너편 침대에는 준 중환자격인 할머니의 모니터는 밤새 울어재꼈다. 넓고 평안해 보이는 병원 불빛 아래에서는 그와 반대로 조용한 전쟁이 치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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