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에 아기가 태어났다. 예수님은 한 밤 중에 태어나셨지만 요 녀석은 한낮에 태어났다. 아기는 절대로 잊히지 않을 생일을 갖게 되었다. 어제 영동지역에 폭설이 온다 해서 눈 여행을 가려 계획을 했으나 왠지 모르게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여행 중에 진통이 온다는 소식을 들었더라면 많이 난감했었을 거다. 외할머니께서 누구든지 뭔가를 하기 싫다고 한다거나 가지 않겠다고 한다면 시키지 말고 보내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 주신적이 있다. 살면서 마음 가는 데로 일을 결정하는 습관이 든 것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예감 혹은 육감은 가끔씩 소름 끼치도록 맞아떨어지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오늘도 그런 날이 아니었을까!
혼자만이 느끼는 것이 아니라 멀리 떨어져 있는 태중 아기와 이제 막 진통을 시작한 산모와의 연결성이 결정적 요소로 작용했음이다. 아주 적절한 타이밍, 오고 가는 길의 기운, 보이지는 않지만 애쓰며 세상을 향하는 새 새명이 주는 기적 같은 상황이 연결성을 증명한다.
까치집 두 개가 보이는 산자락, 동쪽에서 남쪽으로 초침따라 햇살이 움직인다. 멀리, 겨울의 나무는 삭막해 보이지만 유리 창안 햇살로 분위기 나는 찻집 같은 보금자리다. 산고는 금방 끝이 날것이라 생각하니 긴장이 사라진다. 삶이 순탄하기만 하지 않은 것처럼 잠깐씩 아기가 보내는 신호에 가슴이 빌렁거리리기도 하다. 나의 심장박동을 진정시키면 아기의 그것도 잔잔함으로 되돌아온다. 말없이 어미 배에 손을 얹고 아기와 교감한다. '괜찮으니 두려워 말고 나오렴, 나의 두 손이 따듯이 너를 맞이해 줄게'
한편으로 경우의 수를 대비하는 손놀림은 재빠르다.
종착역에 다다랐는지 종종 어미는 이불을 쥐고 포효한다. 브레이크를 잘 잡는 것이 승객의 안전을 위한 행위인 것처럼 엑셀의 강약이 모두의 안녕을 좌우한다. 조절을 한다. 겁나는 마음을 애써 누르며 웃는 것 같지 않은 미소를 보내는 남자의 모습에 속으로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가 짓는 첫 미소는 그렇게 어정쩡했다.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그는 진심 미소를 지었다.
산전 진찰 중에 알고 있었던 탯줄을 하나 감고 나왔다. 아기 받는 이나 아기 낳는 이나 모두들 탯줄을 감은 아기가 무섭다. 경고를 해도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님에도 불안하다. 결국 어쩔 수 없다는 사실에 양쪽 모두 수긍을 한다. 누구의 탓도 아님을 알기만 하면 된다. 아기가 건강하기만을 바라는 마음은 양쪽 모두 같았다.
모두 안전하다.
아빠는 오늘 모차르트 아마데우스를 무대에 올린다. 바쁜 틈새에 태어나 제시간에 공연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남겨놓은 이 아기는 천재다. 아빠가 된 그는 애쓴 두 사람에게 키스와 모차르트 음악을 올린 후 총총 무대로 향했다.
다시 모차르트 음악이 흐르는 고요해진 집안, 아기는 젖을 빨고 고른 숨을 쉰다.
부엌으로 가서 장미역을 꺼내어 불려 씻는다. 마늘, 멸치, 북어채, 마른 새우, 들깨가루를 참기름 듬뿍 넣어 달달 볶는다. 모두의 재료에는 마음이 들어있다.
뽀얀 국물이 우러나고 구수한 미역국이 완성되었다.
오전부터 물만 먹었던 어미는 맛있게 첫국밥을 먹는다. 영하의 기온에 움츠려 들었던 것들이 뜨끈한 국물에 한순간 녹아버렸다. 따스함만 감도는 오후 햇살을 등 뒤로 하며 나도 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