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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선비 Aug 21. 2018

오선비의 철학사 탐방 23

헬레니즘 철학 편 - 6. 갈라진 길 C


* 여러분의 철학 입문을 위해, 중요한 것을 담으면서도 최대한 쉽게 쓴 철학사입니다. 차분히 읽으시면 반드시 도움이 될 것을 약속드립니다:)


이 편은 헬레니즘 철학 편 - 6. 갈라진 길 B에서 이어지는 편입니다. 앞의 A, B 편을 먼저 읽고 오시면 좋습니다.




 이러한 기독교의 통합과정이 이루어지던 때 성(聖) 아우구스티누스가 등장하였다. 성(聖) 아우구스티누스의 철학적 견해에 있어 서양의 신학 사상은 하나의 위대한 절정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는 모든 사상들의 기독교적인 통합이었다. 성(聖) 아우구스티누스 이처럼 위대한 업적을 세웠지만, 재미있게도 사도바울이 그랬듯 성(聖) 아우구스티누스 역시 처음부터 기독교도는 아니었다. 성(聖) 아우구스티누스는 총명했지만 굉장히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다. 어린 시절의(당시의 나이 17세) 성(聖) 아우구스티누스는 출생 신분조차 알 수 없는 여인과 동거생활을 했으며 그 사이 아들을 낳기도 했다. 그리고 당시의 성(聖) 아우구스티누스는 마니교에 심취해 있었는데, 마니교는 기독교처럼 유일신 사상이 아니라, 이신론(二神論)적인 사상이었다. 마니교는 간단히 말해서 선신(善神)과 악신(惡神)이 있어서 자신이 선한 일을 할 때에는 선신이 인도함이요, 자신이 악한 일을 할 때에는 악신이 인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때마다 도덕적인 괴로움을 할 필요가 없는 사상이었다.


안젤리코파, <정원에서 찬송 소리를 듣는 아우구스티누스>


 이는 자신의 자유분방한 삶을 대변하기에 아주 좋은 사상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상에의 심취와 방탕한 생활에서부터 기독교로 개종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에 대해서는 하나의 유명한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성(聖) 아우구스티누스는 밀라노의 한 정원을 산책하던 중 어떤 목소리를 듣게 된다. "집어 읽으라!" 깜짝 놀란 성(聖) 아우구스티누스는 주변을 둘러보고,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한 권의 책이었다. 목소리의 인도대로 책을 들어 무작위로 펼쳤고, 그 페이지에 쓰여 있는 글은 이러했다(참고로 그 책은 성경인 로마서였으며, 펼쳐진 페이지는 13장 13~14절이었다). "진탕 먹고 마시고 취하거나 음행과 방종에 빠지거나 분쟁과 시기를 일삼거나 하지 말고 언제나 대낮으로 생각하고 단정하게 살아갑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온몸을 무장하십시오. 그리고 육체의 정욕을 만족시키려는 생각은 아예 하지 마십시오" 성(聖) 아우구스티누스는 이것을 읽고, 마음의 큰 변화가 일어 그동안의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기독교로 개종하게 된 것이다. 자신의 행동적인 측면을 반성함은 당연하였고, 자신의 사상적인 반성이 성(聖) 아우구스티누스에게는 더욱 중요한 일이었기에 기독교로의 개종 후에 그는 마니교에 대한 비판서를 네 권정도 쓰게 되었으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반성하는 '고백록'을 쓰게 된다.


 성(聖) 아우구스티누스는 플라톤과 플로티노스로 대표되는 희랍의 사상과 기독교의 사상을 통합하였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두 사상 간의 의견을 조율하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독창적인 창조 역시 깃들어 있었다. 성(聖)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에 있어 중요한 세 가지를 들어 본다면 하나는 인식설(認識說)이고, 하나는 조명설(照明說)이고, 하나는 시간론(時間論)이다.


 그의 사상을 살펴볼 때에 그의 인식설을 먼저 알아보는 것이 다른 사상을 살펴보는데 앞서 첫 번째로 가장 적합할 듯하다. 성(聖)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람이란 누구나 비물질적인 정신적 존재로서, 자기 자신에 대한 직관적인 지식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사람은 여러 가지 점에서 물론 오류를 범할 수도 있지만 오류를 범하는 순간에도 나 자신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이는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떠오르게 한다(물론 시대적으로 볼 때 데카르트는 성(聖) 아우구스티누스의 훨씬 후세의 사람이다). 그는 이러한 견해를 짧은 구절로 표현하였는데, "설령 내가 오류를 범한다 할지라도, 나는 존재한다(Even if I err, I am)" 성(聖) 아우구스티누스가 자신에 대한 인식설을 확립할 때쯤에 그는 회의주의에서도 거의 벗어나 있었다. 한 때 회의주의에 매료되어 있었던 자신에게 있어 회의주의에서 벗어남은 큰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예전에도 그랬듯 회의론자들은 플라톤이 주장하던 이데아란 그것을 품고 있는 사람만이 느끼는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며, 개인이 느끼는 감각 또한 자신이 어떤 대상에서 느끼는 주관적인 소산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회의론자들이 주장하는 이데아론에 대한 주관성을, 성(聖) 아우구스티누스는 객관적인 것으로 바꿔 주장하였다. 이데아의 세계란 교회 자체의 실재를 인정하듯이, 이데아가 우리의 마음에 계시되기 이전부터 실재적인 실체이며, 우리가 이데아를 인식할 수 있든 없든 그것은 이미 존재하는 것이라 주장했다. 그에게 있어 이데아는 결코 사유를 통한 추론의 결과가 아니었다. 이데아는 시공간을 초월한 것이며, 변화하는 물질적인 것이 아닌 불변적인 것이었다. 성(聖)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데아에 대한 지식을 영원불변에 대한 지식이라 했으며, 이러한 지식을 그는 지혜라고 불렀다. 회의론자들이 주장하던 감각의 주관성에 대하여 성(聖) 아우구스티누스는 감각이란, 신체의 변화를 마음속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마음이 신체의 변화를 주의해서 보는 심적 활동이라고 생각했다. 쉽게 말해 성(聖)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있어 감각이란 신체의 변화를 마음이 느끼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신체의 변화를 주목하는 것이었다. 신체의 변화가 주가 아니라 마음이 주라는 것이었다. 성(聖) 아우구스티누스가 생각하기에 감각이란 신체의 변화를 마음이 주목하여 어떤 지식을 얻는 행위라 하였다. 즉, 감각 역시 하나의 지식을 얻는 것이기에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변화가 다분한 물질적인 것에 대한 지식이므로 이데아처럼 불변의 진리를 알아가는 지혜보다는 가치가 적다 하였다. 감각이 가져오는 이 이차적인 낮은 종류의 지식에 성(聖) 아우구스티누스는 과학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교회의 입장에 잘 맞아 들어갔다. 이는 곧 이성에 대한 신앙의 우위성을 인정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비잔틴 시대의 벽화


 둘째로 그의 조명설에 대해서 알아보자. 성(聖) 아우구스티누스의 조명이론은 플라톤의 '상기' 이론을 자신의 방식으로 표현한 것인데, 위에서 언급한 이데아의 실재성을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그의 답이 '조명 이론'이다. 플라톤은 기하학을 특히 강조했었는데, 불완전한 도형을 보면서 하나의 완벽한 삼각형을 떠올리고, 또 그 기반에서 여러 사람들과 토론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곧 이데아의 존재에 대한 증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대체 이 직관이 어떻게 해서 일어나는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조명'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성(聖) 아우구스티누스의 조명이론이다. 이러한 조명을 통해 이데아를 느끼게 되고, 곧 신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라 주장한 것이다. 그래서 그의 조명이론을 '빛의 형이상학'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인간은 모든 부분에 있어서 조명을 받을 수는 없다. 즉 지혜의 파편들만을 인식할 수 있기에 그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 파편적인 지혜들에 대한 인식은, 그의 시간론으로 이어지게 된다.


마사치오, <아담과 이브의 낙원추방>


 세 번째로 그의 시간론에 대해서 알아보자. 인간은 비물질적인 시간을 느낀다. 즉, 인간은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즐기며, 미래를 기대한다. 하지만 성(聖)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한다. 과거는 지나가버렸기에 존재하지 않으며, 현재는 너무도 순간적이기에 느낄 수 없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기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처럼 인간은 시간을 느낄 수 있다 하더라도, 매우 단편적인 파편들을 겨우 인식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성(聖)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은 전체의 시간 경과를 모두 이해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변화하는 사물의 세계를 창조함으로써 시간 또한 창조하였다. 그 까닭은 시간이 곧 변화의 척도이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은 시간의 굴레에서 초월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다 한들, 하나님이 앞으로 일어날 모든 사건을 미리 아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을 외적 지배의 제물로 만들어버림 이요, 인간의 선택의 자유가 지니는 도덕적 의의들을 박탈해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들의 미래를 알고자 하는 욕망들, 가령 점술, 점성술, 예언 및 기타 미신들에 대한 것들은 악이라 하였다. 즉, 성(聖)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 같은 이성적 동물들의 자유가 양립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인간들은 그러한 자유를 통해 악을 저지른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인간의 악(惡)마저도 창조하신 것인가? 그래서 그는 이 문제를 조율하기 위하여 원죄사상(原罪思想)을 형성하였다. "하나님은 인간을 올바르게 창조하셨다. 그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자연물의 창조자이시다. 그러나 그들 자연물이 가진 오점(汚點)의 창조자는 아니시다.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 타락했고, 따라서 당연히 저주받은 까닭에 타락하고 저주받은 자손들을 낳았다" 이는 우리에게 익숙한 아담과 이브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즉, 신은 모든 것을 선하게 창조하셨으나, 죄와 악 그리고 타락함은 피조물들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죄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당연히 신의 은총이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모든 이에게 은총을 내리는가? 그렇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은총을 주고, 어떤 이에게는 은총을 주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선한 본성과 조화시키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었다. 성(聖)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어떤 이가 은총으로 구원 받음은 바른 사람을 위해 신이 주신 자비의 증거이고, 악한 사람의 파멸은 하나님이 내린 정의의 증거라고 주장함으로써 해결하고자 하였다. 물론 이러한 주장이 빈틈이 없는 것은 아니어서 이후 수세기에 걸쳐(물론 지금도) 신랄한 논쟁거리가 되었다.


 살펴본 대로 성(聖) 아우구스티누스는 희랍 사상(주로 플로티노스의 사상)과 기독교사상을 통합했지만, 희랍 사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플로티노스의 사상과 성(聖) 아우구스티누스가 발전시킨 플로티노스 사상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세상을 이해하는 관점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플로티노스의 일자(一者)는 너무도 완벽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 존재성이 태양의 빛처럼 유출되어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일자에 의한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성(聖) 아우구스티누스는 창조의 개념을 들어, 세계를 일자의 존재로 인한 당연한 결과물로 받아들임이 아니라, 세계는 하나님의 권능으로부터 오는 창조의 결과라고 생각했다. 이는 하나님께서 권능을 발휘한 것이지, 하나님이 존재함으로 인해 당연히 세계가 생기는 의미가 아니었다. 플로티노스의 유출 개념은 모든 존재하는 것에 신이 깃들어져 있어 언제나 범신론(汎神論)적으로 변할 수 있는 경향을 항상 가지고 있으나, 하나님의 권능으로 인한 창조 개념에는 범신론적인 개념이 들어올 수가 없다. 이는 완벽한 유일신의 개념인 것이다. 이처럼 성(聖) 아우구스티누스는 희랍의 사상과 기독교의 사상을 통합하고, 이성이 신앙의 아래에 있음을 인정하였으며, 이를 통해 기독교의 권위는 한층 더 두터워졌다. 그리고 중세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철학자 소개


* 성(聖) 아우구스티누스

 사도바울이 기독교의 토대를 마련했다면, 성(聖) 아우구스티누스는 그 토대에 집을 지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업적은 희랍철학과 기독교 철학을 융합하여 하나의 통합적인 철학을 제시한 것에 있다. 그는 사도바울처럼 처음부터 기독교도는 아니었으나 밀라노 정원에서의 신적인 체험을 통하여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기독교로 개종하기 전의 성(聖) 아우구스티누스는 매우 방탕한 생활을 하였는데, 개종한 후에도 과거에 살았던 삶에 대한 유혹에 힘겨워했다. 그는 그러한 심경에 대한 고뇌를 '고백록'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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