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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K Mar 16. 2022

광고제 수상의 불편한 진실

그런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광고회사에서 받는 연봉을 일하는 시간으로 나누면 패스트푸드 알바생과 비슷할 것이라고. 일은 참 많은데 연봉은 이직으로 점프하지 않는 이상 한계가 보인다. 그런 광고인의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는 것이 광고제 수상이다. 대한민국 광고대상에서 상을 받았거나, 더 나아가 칸, 뉴욕, 클리오 등 세계 3대 광고제에서 상을 탄 이력이 있다면 정말로 큰 영예이다.


난 아직까지 그렇게 큰 광고제에서 상을 타 본 적이 없다. 아니 반대로, 이렇게 빠르고 인스턴트하게 돌아가는 대한민국 광고 시장에서 크리에이티브의 참신성과 완결성까지 갖춘 수상작들이 신기할 따름이다. 난 이래저래 몰려드는 일들을 쳐내느라 바쁜데 그들은 그 이상을 바라보고 해내고 있었다니. 감탄사만 나온다. 사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는 우리도 클라이언트도, 광고제 수상을 해 보자고 얘기하며 나름의 결의를 다진다. 그런데 말미에는 프로젝트를 무사히 끝낸 것만으로도 만족하게 된다. 더 나아가지 않고 왜 타협했을까. 나름의 이유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시간은 너무 없는데 제작안 수정은 너무 많다. 15년 동안 진행한 거의 모든 프로젝트들이 그러했다. 그러다보니 그냥 끝난 것 자체가 행복했다. 이 상황을 클라이언트 탓이라 돌리고 싶지 않다. 대한민국의 일들이 돌아가는 형태와 조직의 문화가 그러한 것 같다. 우리나라는 가능한 것을 더 완벽하게 만드는 게 능력이 아니라,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만드는 것이 능력을 더 대우해 준다. 충분한 시간에 제작안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 보다는 촉박한 시간에 어떻게든 완성을 해서 미디어에 내보내야 그 사람의 업적으로 인정된다. 이 환경 안에서는 아이디어를 쥐어짤 수 밖에 없다.


제작안을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치는 이유는 보고받는 사람이 바뀌기 때문이다. 클라이언트 실무를 넘어 임원의 여러 단계에 이르기까지 단계별 키맨이 받는 광고의 첫인상이 제각기 엇갈리고 캠페인의 중점포인트도 다르다. 그러다보니 무사히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 피드백의 다발 속에서 더 큰 참사를 막기 위해서는 타협을 잘 해야 한다. 우리가 꼭 지키고 싶은 파트를 사수하기 위해 그 외 다른 수정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조심스레 소신을 밝힌다. 이런 단계를 넘고넘어 마침내 마지막 단계까지 클리어하면 클라이언트 실무와 한마음 한뜻이 된다. 광고제 얘기는 어느덧 사라지고 종료 자체의 행복감이 우리 가슴을 가득 채운다.


둘째, 돈을 벌어다주는 광고가 작품성이 뛰어난 광고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맥주광고 A와 B가 있다고 치자. A는 맥주가 일상에 미치는 영향을 통찰력 있게 보여주는 측면이 있다. 반면 B는 별다른 장치 없이 요즘 가장 잘 나가는 배우가 그 맥주를 제대로 만끽하는 모습에 집중한다. 의미의 두께를 따지자면 A가 B보다 낫겠지만 판매를 견인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A보다 B가 유리할 수 있다. 물론 두 가지 다 갖춘 광고라면 금상첨화지만 말처럼 쉽게 되진 않기에, 광고의 본질이자 목적인 판매 기여에 초점을 두고 광고를 만든다. 광고제 수상감이 아니어도 제품판매만 잘 되면 문제가 없는데, 그 반대라면 화를 면치 못하리. 그러다보니 다소 투박하고 1차원적인 표현이라도 제품의 이점을 본능적으로 전하는데 유리하면 광고의 요소로 쓰게 된다.


셋째, 어느 순간부터 광고제 수상은 이상주의자들이 언급하는 오아시스 같은 말이 되어버렸다. 광고를 만들어 가는 과정의 치열함과 처절함에서 한 발 물러나 아득하게 높은 곳을 보는 사람들이 내뱉는 말처럼 여겨졌다. 그러다보니 광고제 수상이라는 구호는 서로의 파이팅을 위한 효과적인 도구로는 쓰일지언정, 그 이상의 진지한 각오로 임한다면 현실을 모르는 존재처럼 치부되었다. 다만 그런 인식 속에 누군가를 가두며 방어적인 태도만 보여준 건 아닌지 반성해본다. 본래는 광고제를 그리며 광고를 시작한 사람들인데 광고를 만들수록 광고제를 멀리하는 건 참으로 씁쓸하다. 그런 의미에서 광고제 수상의 끈을 여전히 놓치 않으며 새하얀 밤을 지새우는 광고인들에게 진심어린 존경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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