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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여행 05. 첫날밤

Switzerland Tour

by okayjjang

드디어, 날다


6월 17일, 약속장소는 인천공항 제2터미널 3층. 오전 11시 5분 출국이니, 3시간 전인 8시까지는 도착하기로 하고 버스 타고 모두 공항을 향해 달렸다. 캐리어 하나씩 끌고 옹기종기 모여 앉으니, 얼굴마다 떠난다는 설레임이 깃든다. 일상에서의 잠시 외출이 발걸음까지 가볍게 만들어 준다. 비행기도 타기 전에 날아갈 듯~


이번 여행에서는 폰 충전이 꽤 중요해졌다. 비행기 표도 폰으로 QR 스캔, 볼거리 표도 폰으로, 카드 결제도 폰으로, 네비도, 카메라도, 카톡도, 물론 본 기능인 전화도 폰으로 해야 하니 배터리 잔량이 떨어질수록 긴장감이 스물스물 올라온다. 보조 배터리와 렌터카에서 사용할 차량용 충전기를 챙기는 건 당연지사.


인천공항 제2터미널 3층


미리 신한 SOL에서 환전 신청해 둔 스위스 프랑(CHF)와 유로(EUR)를 공항 은행 창구에서 현금으로 받았다. CHF 1,000는 환율 1,443.37원, EUR 500는 환율 1,407.92원을 적용받았다. 대부분 카드로 쓸 예정이라, 현금은 비상용.


셀프 체크인을 했으니 별도의 발권 과정 없이 캐리어를 수하물로 보낸 다음, 여유롭게 커피 한잔 하고, 출국 수속 밟고, 쇼핑 타임을 시작한다. 면세점을 쭉 돌면서 미리 준비할 수 있는 가족들 선물을 줍줍. 챙길 사람이 많다는 것은 즐거움과 버거움을 동시에 선사한다. 질끈 눈을 감고 선물의 범위를 팍 줄이고, 여행 내내 둘러멜 까만 크로스백을 하나 지른다.


7월 말까지 사용해야 하는 모닝캄 라운지 이용권으로 인천공항 라운지 구경도 다녀오고, 대한항공 KE917 탑승 완료.


고양이 날다


비행기를 타고 서쪽으로 서쪽으로 날았다.


대한항공 기내식


그 안에서 기내식 두 번, 간식 한 번을 먹었고, 공항 서점에서 산 소설책 한 권을 독파했다. 틈틈이 졸다 깨곤 했다.


대한항공 기내 간식


13시간을 날아가는 동안 시차는 7시간이 마이너스되었고, 취리히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다섯 시가 살짝 넘었다. 취리히 하늘 위에서 비행기가 두세 번 선회를 하는 느낌은 있었으나 예정 시간에 맞춰 착륙했다.


취리히 공항(Zurich Airport)


국적기를 타고서 해외 나가면, 입국 수속을 밟기 전까진 외국이라는 느낌이 없다. 길게 늘어진 줄을 지나 여권에 입국 도장이 꽝 찍히고, 캐리어를 찾아서 출구를 나서는 순간 실감한다.

'우리, 외쿡 왔시오.'


15년 전의 취리히 공항과의 비교? 갖다 댈 예전 비교치가 없다. 그냥 낯설다. 표지판에서 렌터카부터 찾는다. 건물 간 이동통로를 지나 Eurocar 발견. 이제부터 귀를 열어야 한다.

'열려라 영어 귀!'


반은 알아듣고, 반은 놓치는 기분이다. 그래도 여권과 면허증 보여 주고, 계약서 사인하고, 보증금 내고, 자동차 키도 받고 다 했다. 보증금이 책정되어 있고, 신용카드로 선결제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 게다가 금액이 CHF 400이었다. 580만 원 넘게 선결제가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한도가 400만 원 정도 되는 신용카드를 2개 챙겼더랬다. 하나를 분실하더라도 대처할 수 있어야 하니깐. 한도 초과에 걸려 버벅거리는 순간, 은의 찬스.

'패스'


렌터카 주차장에서 키를 눌러가면서 회색 투아렉을 찾고서야, 렌터카 직원이 이야기한 게 'Thirty Three' 였다는 걸 알아챘다. 수많은 단어들을 흘려 들었어도 메모리에 박혀야 할 것은 남아 있나 보다. 어쩜 끼워 맞추기인가?


취리히 공항에서 만난 투아렉

렌터카 직원이 차 키와 번호만 알려 주고 동행을 하지 않았기에 차의 외관을 쭉 돌면서 사진을 찍어 두었다. 스크래치가 살짝씩 있었으나, 눈에 확 띄는 흠은 없었다. 받은 그대로 돌려줄 수 있길 바라본다.


탈출


1차 관문의 시작이다. 차의 뒷문을 열고 공간 크기를 스캔하고, 부피가 큰 캐리어부터 자리를 정했다. 제일 큰 은의 캐리어를 가로로 눕히고, 중간 크기인 희와 현의 캐리어를 세로로 세우되 바퀴 부분이 엇갈리고 넣으니 바닥면이 꽉 찬다. 다음은 면적은 좀 작고 뽈록한 선의 캐리어를 은의 캐리어 위에 쌓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일 작은 캐리어를 희와 현의 캐리어 위에 올리고, 남은 공간에 한국서부터 동행한 종이 사과 박스를 놓는다. 사과 박스에는 소중한 양식이 들어 있다. 노트북이 들어 있는 백팩까지 넣어 보려 하였으나, 문이 닫히지 않아 포기했다. 룸 미러로 차의 후방이 살짝 보이는 정도의 공간만 남기고 뒷문을 닫았다.


사실 한방에 문 닫기를 성공한 것은 아니다. 넣고 빼고 다시 넣고 눕히고 돌리고 세우고 밀고 당기고 적어도 십 분은 씨름을 한 듯하다. 이렇게 한번 캐리어 자리가 정해지고 나니, 이동하는 내내 그 순서대로 그 자리에 넣고 빼고 했다. 바퀴 방향만 바뀌어도 문은 닫히길 거부했다. 여기서도 격납 좀 할 줄 아는 이의 손길이 한몫 단단히 한다. SM7 트렁크와 뒷자리에 1단짜리 5Kg 사과박스 33개를 싣는 오라버니만큼은 아니지만, 그 조수 수준은 된다.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건다. 옆자리는 예비 운전자 막내 은, 뒷자리엔 희, 현, 선이 나란히 앉는다. 자잘한 짐들은 발밑에 둔다.


Google Map: 취리히 發 빈터투어 着


이번 여행에서는 로밍을 하고, 혹여나 데이터가 부족할 때를 대비해서 와이파이 도시락도 하나 챙겼다. 시작하면서 도시락을 꺼내 세팅하고 하긴 번거롭기에, 로밍한 폰으로 구글 지도를 열어 '빈터투어 파크 호텔'을 입력한다. 어? 한방에 찾질 못한다.


렌트하면서 보증금 때문에 한번 버벅, 캐리어 격납하느라 땀 삐질, 이제는 네비까지 튕긴다. 솔솔 피어오르는 짜증을 꾹 누르고 트립 앱을 열어, 호텔 주소를 확인한다. 복사하여 붙여 넣고 싶은데 이 녀석은 왜 이리 글자 선택이 안 되누~ 안 급해도 된다고 하는데 왜 이리 스스로를 채근하는지 내원참.


우선 은에게 부탁해서 차의 네비에 호텔 주소를 입력하고, 그 주소를 보면서 폰의 구글 지도에도 호텔 주소로 경로를 검색한다. 넉넉잡아 30분이면 도착을 한댄다. 부릉부릉 출발!


그럼 그렇지. 공항을 벗어나기가 쉽진 않지. 왼쪽으로 가라길래 왼쪽으로 가고, 오른쪽으로 가라길래 오른쪽으로 갔는데, 이상하게 다른 주차장을 들어가네? 주차 바 앞에서 비상등을 켜고 큼직한 투아렉을 후진한다. 당연하게도 마이카 QM6 보다는 무겁고 큰 느낌이다. 나를 따르는 이가 아무도 없기에 낑낑거리며 차를 돌리고 큰 숨을 한번 내쉬곤 다시 엑셀에 발을 올린다. 뒤는 모르겠고, 앞과 좌우를 살펴가면서 슬금슬글 공항 탈출 성공.


스스로 이상한 짓을 할 것 같다 싶으면 손은 자동으로 비상등 위로 간다. 공항을 벗어나 편도 3차선 도로에 올라서고 나니 제한 속도를 지키는 것 외엔 크게 신경 쓸 만한 건 없었다. 1차선의 추월차선은 잘 지켜지고 있었다. 주행할 때는 2차선으로 추월할 때만 1차선을 살짝 넘나들면서 수월하게 달렸다.


빈터투어 파크 호텔(Winterthur Park Hotel) 체크인


얼마 지나지 않아 도로 표지판에 'WINTERTHUR'가 보이기 시작했다. 운전에 적응이 된다 싶을 즈음, 빈터투어 파크 호텔에 도착했다. 주차하고 실었던 캐리어를 역순으로 내리고 첫 호텔 입장.


빈터투어 파크 호텔(Winterthur Park Hotel): 입구


여권 보여주고, 체크 아웃 시간과 아침 식사 등 간단한 설명을 듣고 3개의 룸 키를 받았다. 217, 317, 410호. 숫자 1과 숫자 7을 쓰는 방식이 조금 달라 눈에 띄었다.


빈터투어 파크 호텔 룸 키(Room Key)


키는 3개, 사람은 5명. 룸메 고르기는 사다리 타기. 노트를 꺼내 선을 긋고 번호를 고르고 시작. 아무도 시비 걸지 않았건만 저리도 간단한 사다리 타기가 꼬였다.


빈터투어 파크 호텔: 사다리 타기로 호텔 룸 정하기


사다리를 타다 말고 막내 라인 은과 수, 중간 라인 현과 선이 각자 2인실로, 맏이 희가 1인실을 쓰기로 했다. 룸은 깔끔했고, 배게 위에 올려진 초콜릿과 호텔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호텔리어의 엽서는 반가웠다.


빈터투어 파크 호텔: 2인실

호텔에 도착하고 짐을 푼 시간이 오후 7시가 넘었기에, 씻는 것은 포기하고 저녁 식사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그럼, 식당을 정해야지. 호텔 로비에서 주변에 추천할 만한 식당이 없는지 물어봤더니 꼭 찝어 어디라고 하긴 어렵지만 시내로 가면 식당이 있으니 가 보라고 지도를 펼쳐 길을 알려 준다.


빈터투어 파크 호텔: 걷고 싶게 만드는 계단


빈터투어에서의 저녁 식사


호텔을 나서면서 주변 식당을 검색하고 메뉴와 영업시간, 평점을 두루두루 살펴본다. 비행기에서 내려 첫 끼인 만큼 느끼한 것은 피하고 싶었다. 저녁 8시가 넘어가는데 해가 안 넘어간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식당들을 기웃거리며 지나친다. 햄버거 집 패스, 이탈리안 레스토랑은 곧 영업이 종료되니 패스, 그러면서 아이스크림 집은 눈에 담아 둔다. 돌아오는 길에 디저트로 먹기로 한다.


빈터투어 시내


시내 서점 앞에서 발길이 멈추는 것은 자동반사다. 문이 열려 있었더라면, 배가 조금만 덜 고팠더라면 동화책 고르고 있었을 텐데.


빈터투어 시내 서점


사람들로 붐비는 시내 거리를 벗어나 인적이 드문 경사길을 올라갈 때는 이 길에 식당이 있긴 한 건지, 지도를 제대로 읽기는 한 건지 스스로 쬐매 의심스러웠다. 그래도 이 코너만 돌아가면 뭐든 나오겠지라는 생각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빈터투어 스위스 레스토랑: Barnabas


그렇게 찾은 스위스 레스토랑, 바르나바스(Barnabas). 실내에는 여유 자리가 많았고, 야외에는 다섯 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가 하나 밖에 남지 않았다. 야외 테이블 위에 천연덕스럽게 올려진 재떨이. 그랬다, 야외는 모두 흡연석이었다. 하늘과 바람을 즐길 것인가, 담배 연기를 피할 것인가에서 하늘이 이겼다.


빈터투어 스위스 레스토랑: Barnabas 전경


어디선가 유럽 가거들랑 '여기요' 내지는 '저기요' 하면서 종업원을 부르지 말고, 가만히 눈이 마주칠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라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빈자리에 앉아도 되겠느냐는 질문에 흔쾌히 오케이 사인을 준 종업원은 멀찍이 떨어진 주방까지 왔다 갔다 하느라 바빠 보였다. 가만히 기다리기엔 우린 배가 고팠다. 다행히도 앉자마자 메뉴판을 건네주었기에 바로 해독을 시작했다.


이 때는 파파고(Papago)의 등장. 메뉴판을 이미지로 찍은 다음 기다린다. 그럼 짠하고 화면에 한글이 나타난다.


빈터투어 스위스 레스토랑: Barnabas에서의 저녁 식사


샐러드와 밥이 될만한 요리 두어 개 고르고, 입 짧은 이들의 강추로 감자튀김까지 주문했다. 주문을 한 번에 끝내면 더 빨리 먹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맥주까지 한방에 주문 끝. 기다리는 동안 의자에 앉은 채 목을 젖히고 하늘을 구경한다. 시원하다.


빈터투어 스위스 레스토랑: Barnabas에서의 맥주 타임


스위스 시간으로 여덟 시, 20 + 7 = 27, 한국 시간으로 새벽 3시다. 졸리다는 느낌보다는 배고픔이 강했고, 피곤하다기 보단 살짝 몽롱했다. 그런 상태에서 맥주는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전매특허인 얼굴의 홍조는 파란 하늘과 대비를 맞췄다.


돌아올 때는 갈 때와 조금 다른 골목으로 들어섰다. 저만치 아까 봐 둔 아이스크림 가게가 보이건만, 거기까지 갈 힘은 없다. 다시 오지 않을 기회인 줄 알지만, 과감하게 포기한다. 이제 그만 씻고 싶다. 그리고 자고 싶다.


빈터투어 시내 산책


I think...


취리히를 떠날 때, 빈터투어로 들어갈 때 우리처럼 도로 통행료를 내는 톨게이트가 있으리라고 짐작했는데, 없었다. 스위스에서는 기간에 따라 구입하여 차창에 부착하는 비넷(Vignette)으로 통행료를 대신한단다. 렌터카 전면창 왼쪽 위에 붙어 있는 고속도로 모양의 딱지가 비넷이라는 것은 뒤늦게 알았다.


한국에서 새벽 4시 반에 깨어 7시에 인천 공항 도착해서, 비행기 13시간 타고 취리히 도착. 버벅의 연속에서 벗어나 주린 배를 채우고 침대에 누운 게 밤 10시 반. 스위스 시간 오후 10시 30분은 22 + 7 = 29, 29- 24 = 5 한국 시간으로 새벽 5시 반. 우와, 꼬빡 스물다섯 시간을 움직였다. 지쳐 푹 꼬꾸라질 줄 알았는데, 오후 9시가 넘어서야 지는 해 덕분인지, 시차 적응이 안 된 덕분인지, 첫날밤의 신기함 때문인지 쉬이 잠들지 못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은의 증언은 달랐다. 잘 자라는 인사 하기가 무섭게 코 골고 잘만 자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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