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공간을 열고 어느새 1년을 앞두고 있다. 작년 이맘때 가계약을 했던 것 같아 다이어리를 찾아보니 2023년 4월 19일이라고 알려준다. 계약 후 한 달 동안은 기존 임차인이 공간을 정리하는 시간이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대신 전기 증설부터 바닥 시공 견적 확인, 가구 디자인 스케치와 제작 의뢰, 진열대와 구매해야 할 각종 집기류 정리, 사입 브랜드 정리와 거래처 등록, 서점업 등록과 도서 구입 목록 작성, 상품 디자인과 발주 등 계획한 날짜에 시공과 배송이 이뤄질 수 있도록 준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외주 작업도 많았던 시기라서 의뢰받은 작업을 하면서 동시에 공간을 준비하느라 매일 새벽 네 시 반에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았다. 살면서 그렇게 많은 시간과 마음을 쏟을 수 있을까 싶은 시간이었다. 꿈에서도 현실에서도 치열하게 고민하고 준비한 끝에 2023년 6월 7일 공간을 열 수 있었다.
공간을 만들 때 작업 테이블과 공유 테이블 외에 ‘비워둔 테이블’이라는 1인용 테이블을 구상했다. 프리랜서로 지내며 카페에서 작업을 하다 보면 2시간 이상 머무는 게 죄송할 때가 있었는데 3시간 동안 충분히 머물며 책을 읽거나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통창에 놓인 내 작업 테이블과 비워둔 테이블 사이에 직접 디자인한 책장을 두어 공간을 분리했다. 책장은 가벽의 기능을 하면서도 답답한 느낌이 들지 않게 앞뒤가 모두 뚫려 있는 구조인데 책을 사선으로 꽂을 수 있게 칸의 가로길이는 좁게, 세로 길이는 길게 하고 책장의 옆 폭은 목공으로 할 수 있는 최대 폭으로 제작했다. 내가 디자인한 책장은 여성 목수 세 명이 운영하는 파주의 목공소에서 제작해 주셨는데 못을 사용하지 않고 짜맞춤 방식으로 제작해 자세히 보면 못 자국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비워둔 테이블에 앉아 책장을 바라보면 책 사이로 바깥의 풍경이 보이기도 하고 작업하는 내 뒷모습이 보이기도 하는데 그 자체가 낯설고 새로운 경험이 되어준다. 오늘은 어떤 분이 비워둔 테이블을 채워 주실까. 비워둔 테이블이 채워진 날엔 책장 뒤편에서 조용히 책을 넘기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타닥타닥 키보드 소리가 들려오기도 한다. 나 역시 그 소리에 화답하듯 어떤 날은 책을 읽고 어떤 날은 컴퓨터 작업을 하고 어떤 날은 패드에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공유한다. 타닥타닥, 사각사각. 서로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함께하고 있다는 감각을 느끼게 해 주는 잠잠한 소음이다.
예약 알람에 익숙한 이름이 있을 때면 반가운 기분이 들고 낯선 이름이 있을 때는 어떤 분 일지 약간의 긴장과 설렘, 궁금함이 인다. 테이블 이용 손님이 돌아간 후 방명록을 꺼내 보면 어떤 날, 어떤 기분으로 이곳에 오게 되었고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한 자 한 자 정성껏 쓰여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둔 방명록이 어느새 두 권이 되었고 지금은 두 번째 방명록의 마지막 몇 페이지를 남겨 두고 있다. 최근에는 하루 간격으로 쓰인 방명록에 ‘오래 있어 주세요’라는 말이 약속한 듯 쓰여 있어 마음 한편이 찡해지기도 했다.
혼자 운영하는 공간이지만 혼자가 아닌 기분이 들게 하는 데는 비워둔 테이블을 채워주는 분들과 그분들이 남겨주신 방명록이 있어서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할 일은 테이블에 앉아 편안히 머물다 갈 수 있게 핸드드립 커피와 티를 준비하고 차분한 음악을 선곡하고 적당한 거리에 있는 것, 한결같은 마음으로 공간을 여닫는 일일 것이다.
(2024.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