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을 열고나서 봄이 오기를 기다렸다. 여름에 문을 열어 이곳에서는 아직 봄을 맞지 못한 까닭에서다. 공간이 있는 학사마을은 하천을 따라 긴 산책로가 있는데 산책로를 따라 벚나무가 길게 늘어서 있다. 봄이 오면 이곳을 찾아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벚나무 아래서 사진을 찍곤 했다. 올해는 출근길 풍경으로 매일 만나게 될 생각에 설레었다.
3월 하순이 되었지만 연일 계속된 추위에 예상보다 조금 늦게 벚꽃이 피는가 싶더니 어느새 활짝 만개했다. 조금 이르게 출근해 오픈 준비를 마치고 잠시 문을 잠근 후 산책로를 걸었다. 들뜬 마음으로 산책로를 걸으며 벚꽃을 보다가 문득 슬퍼졌다. 추운 겨울을 견디고 드디어 꽃을 피웠는데 일주일도 채 피지 못한 채 지게 될 것이, 다시 봄이 오기 전까지는 나뭇가지만 드러낸 채 지내게 된다고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안타까웠다.
며칠 후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다가 임경선 작가가 쓴 '벚꽃 편지'라는 글을 읽게 됐다. 소설 『다 하지 못한 말』의 출간을 기념해 소설 속 주인공에게 중요한 장소였던 덕수궁 석조전에서 독자들과의 만남을 가진 작가가 그날 독자들에게 낭독한 편지였다.
‘흔들리는 사람’, ‘연약한 것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 편지에서는 벚꽃의 연약함과 유한함이 사람들을 얼마나 행복하게 해 주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단단해지려 애쓰지 말고 약해지자고 하는 작가의 편지에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다. 나의 약한 지점도 사랑해 주는 사람을 사랑하고 싶다는 작가의 편지는 얼마든 자신의 약한 면을 드러내도 괜찮다고 이야기해 주는 것 같았다.
벚꽃이 핀 일주일 동안 인스타그램 피드와 스토리에 전국 곳곳의 벚꽃 풍경이 일제히 올라왔다. 분홍빛으로 물든 풍경 앞에 선 사람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피었다. 벚꽃을 바라보며 슬펐던 마음도 잠시,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마음들을 보면서 내 마음도 다시 순해지는 것을 느꼈다.
오랜만에 차를 두고 걸어서 출근하는 주말 출근길, 산책로 초입에 있는 벚나무 두 그루가 부푼 팝콘처럼 활짝 만개했다. 다른 벚나무보다 한 주 늦게 핀 것이다. 두 벚나무 뒤로는 먼저 피었던 나무들의 벚꽃 잎이 바람을 타고 떨어지면서 꽃비를 만들었다. 뒤늦게 핀 벚나무 두 그루에 생각지 못한 선물을 받은 기분이 들었다. 제때 피지 못해도, 천천히 피어도 벚나무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2024.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