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by 배지영



2년 전엔가. 남대전고등학교에서 강연 마치고 대전복합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르신 두 분이 다가와서는 나보고 사진 좀 찍어달라며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언제 만날지 몰라요. 영영 못 만날지도 모르고. 이쁘게 찍어줘요.”

두 분이 자매인지, 학교 동창인지, 이웃인지 묻지 않았다. 나는 성심껏 “하나 둘 셋”을 말하고, 찍은 사진을 보여드리고, 다시 찍었다. 50방쯤 찍었는데 두 분 마음에 딱 드는 사진은 없었다. 나는 시간 많았는데, 어르신들은 버스 시간 때문에 아쉬워하며 헤어졌다.

어제 고양으로 일하러 간 김에 배지숙(친언니, 고양시민)을 만났다. 먼 옛날, 배지숙이 우편환으로 보내준 용돈을 기억하고 있다. 백화점에서 19만 원 주고 사준 벙벙한 코트의 브랜드도 잊지 않았다. 배지숙은 나보고 데모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라고 편지를 썼는데. 나는 공부도 못했고, 아직까지도 언니한테 배지숙이라고 부른다.

배지숙이 고양 터미널로 데리러 왔다. 나는 인터뷰 하러 바로 가야 해서 바쁘다고, 뭐 하러 나왔느냐고, 다정하지 못하게 말했다. 배지숙은 내 얼굴을 다정하게 봤나 보다.

“배지영! 근데 얼굴 왜 이렇게 부었어?”
“나도 몰라. 오늘 촬영까지 하는데. 티 많이 나?”
“남들은 모를 수도 있겠지. 근데 나는 우리 배지영이 얼굴을 알잖아.”

배지숙은 내가 일을 다 끝마칠 때까지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밥을 사준다고 해장국집에 데려갔다. 나는 선지나 내장을 먹지 못하는데. 우리가 자매로 같이 산 세월보다 떨어져 산 세월이 훨씬 기니까 식성 같은 건 모르는 게 당연했다.

저녁 6시 10분, 다시 고양 터미널. 배지숙은 촌스럽게 버스 안까지 따라 들어왔다. 문득, 대전복합터미널에서 만났던 어르신들이 생각났다. 사는 게 바빠서 언제 만날지 모르니까, 부은 얼굴로 사진을 같이 찍었다. 몇 장을 찍어도 별로였다.

“배지숙, 밖으로 나가자.”

버스에서 내려가지고 또 세 장인가 네 장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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