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by 배지영




강동지랑 넥플릭스 드라마 <무브 투 헤븐>을 봤다.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아들이 아버지를 수목장으로 보내드리는 장면에서 나는 돌아가신 수산리 아버지를 생각했다. 강동지는 노무현 대통령님을 생각했다.

태어나서 내가 가장 기뻤던 날은 2009년 5월 11일.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고, 죽을 때까지 그럴 것 같다. 그날이 강썬님 탄신일이다. 나는 임신 26주부터인가 대학병원에서 누워 지냈다. 샤워도 할 수 없어서 침대에 누운 나를 강동지가, 배지현이, 영광 엄마가 씻겨줬다. 머리를 감겨줬다.

밤마다 아기 낳는 꿈을 꿨다. 엄지 손톱만한 아기는 점점 작아져서 먼지처럼 날아가버렸다. 나는 울며불며 아기를 찾으러 다니다가 깼다. 36주(폐가 완성되는 시기, 자가 호흡 가능)까지 버텨서 드디어 잡힌 출산 날, 갑자기 뱃속의 아기는 호흡을 멈춰버렸다.

제왕절개로 세상에 나온 강썬님은 다행스럽게도 몇 가지 수치만 나빴다. 밤중이라 영광에서 원광대 병원에 올 수 없는 엄마는 당신 딸이 ‘살아 숨쉬는’ 아기를 낳았다고 감격했다. 기쁨을 주체하지 못해서 술을 마시고 전화해서는 으하하하하하! 웃다가 울다가 또 웃었다.

2009년 5월 23일 토요일 오전. 산후조리 해주시는 선생님이 출근해서는 말도 안 되는 말을 했다. 진짜라고, 나보고 뉴스를 켜보라고 했다. 말을 듣기 싫었다. 아기를 안은 산후조리 선생님이 텔레비전을 켰다. 나는 기저귀를 사러 가야겠다고 나왔다. 주차장에서 주저앉아 소리를 내고 울었다. 병원에 있느라고 노무현 대통령님이 겪은 고통을 몰랐다.

2021년 5월 23일. 봉하는 멀고, 그래서 5월에 돌아가신 수산리 아버지 산소(가족묘)에 갔다. 강동지는 산소의 잡풀을 뽑고 나서 나보고 소원을 말하라고 했다. 기다리는 전화 한 통이 있지만, 성당에 다닐 때처럼 나는 속으로 우리 문재인 대통령님의 건강과 평화를 빌었다.

집으로 돌아올 때는 강동지한테 그냥 시시한 얘기를 했다.

“나 죽으면 수산리 가족묘에 묻혀야 해? 싫은데.”
“뭐가?”
“아버지 빼고는 다 모르는 어른들이잖아.”
“납골묘에 가도 다 모르는 어른들이야.”
“아, 몰라. 나는 차라리 수목장에 묻히고 싶어. 근데 수목장 검색해 보니까 비싸더라.”
“우리 맘대로 되는 줄 알아? 애들이 정하는 대로 해야지.”

우리 수산리 아버지는 죽으면 끝이라고 했다. 장손으로 태어나 평생 제사를 지냈으면서도 제사 지낼 필요조차 없다고 했다. 드라마 <무브 투 헤븐>에서 한그루 아빠 한정우는 다르게 말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기억하는 한 사라지지 않는다고.

나는 돌아가신 수산리 아버지가 가르쳐준 많은 것을 기록하고, 기억하고, 글로 썼다. 그런데 죽음에 대한 철학만큼은 드라마 대사가 더 와닿는다. 노무현 대통령님도 우리 수산리 아버지도, 나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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