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교한 지 30분 만에 강썬님이 전화했다. 조퇴하고 싶어서 그러는 건 아니었다. 중학교 원서에 부모님 도장 찍어야 하는데, 자기만 안 찍어서 집에 온다고 했다. 강썬님 심기 상하지 않게 신발장 앞에 인주와 도장을 대령했다. 강썬님은 억울한 표정으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강썬님이 내민 원서에 도장 찍어서 잽싸게 넣어드리려고 책가방 지퍼를 열었다.
“엄마, 안 돼!”
내 자랑 같지만, 애 학교 보내는 거는 쫌 민첩하다. 이미 가방 속 내용물이 싹 보였다. 책꽂이에 꽂아놓은 것처럼 세워진 빼빼로를 봤다. 아! 오늘이 11월 11일이구나. 강썬님은 등교 안 하고 문방구나 마트 돌면서 이거 샀구나. 그런데 엄마 줄 건 없네?
이번 주 내내 강성*씨는 저녁에 약속이 있었다. 그래도 일단 저녁밥을 챙겨야 하니까 나한테 전화한다(그는 끼니때만 전화함). 나는 일하다가 받았다.
“강성*. 먼저 가. 나 걸어갈게. 오늘 하나도 안 걸었어.”
“그래? 민생연대 바자회 가서 가래떡 사서 집에 가자고 할랬는데?”
“올! 오늘 가래떡 먹는 날이잖아. 나 그리고 점심도 안 먹었어. 따뜻한 가래떡 맛있겠다.”
그리하여 강성*씨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끈따끈한 가래떡을 사러 갔다. 날씨는 쌀쌀하고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퇴근 시간이라 차도 조금 밀렸다. 오전 7시 30분에 아침 먹고 낮에 카페라떼 한 잔만 마신 나는 쫄깃한 가래떡 생각에 콧노래를 불렀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사람 일. 그로부터 10분 뒤에 나는 말을 잃었다. 가래떡은 없었다. 강성*씨는 바자회 매대에 5만 원을 주고 주말에 다시 온다고 했다.
짜증 나. 신경질 나. 이런 감정은 속으로만 생각하고 말로 하지 않는다. 그래도 강성*씨는 귀신같이 알아듣는다. 가래떡 몇 줄 사서 집에 가자고 했다. 다 필요 없고, 나는 빨리 집에 가서 샤워하고 눕고 싶었다. 이불 뒤집어쓰면 바로 눈물이 터지겠지. 아, 진짜. 왜 오늘 가래떡 데이인 거야? 나 원래 떡 안 좋아하는데!
강성옥씨는 무조건 떡을 사야 한다며 자연드림 옆 떡집에 차를 세웠다. 떡볶이 떡, 가래떡, 그리고 호박가래떡을 샀다. 따뜻하지는 않았지만 쫄깃한 떡을 집에 오면서 먹었다. 허기는 가라앉고, 나는 인내심을 가지려고 하는 성숙한 아주머니로 돌아왔다.
강성*씨는 부엌으로 가고 나는 샤워했다. 씻고 부엌으로 갔더니 새우 껍질이 싱크대 가득 있었다. 그걸 치우려고 했더니 기적이 일어났다. 강성*씨는 나를 왕파리 취급하지 않았다. 손으로 쫓아내지 않은 거다. 인간 대 인간끼리 주고받는 말을 했다. “비린내 나니까 만지지 마.” 나는 곤충이 아니니까 순순하게 따랐다.
처음 생각한 따뜻한 가래떡을 못 사서 강성*씨의 장보기 프로그램에도 틈새가 생긴 모양이었다. 요리하다가 양파랑 피망이 없다고 집 앞 마트에 사러 갔다. 러시아 격투기 삼보를 거의 두 달째 수련하고 있는 강썬님은 “아빠, 빼빼로도.” 라고 했다. 당연히 그건 내 거겠지만 확인은 필요했다. “엄마 주려고?” 아니었다. 친구들 나눠주느라 못 먹어서 강썬님이 드실 거라고 했다.
마트에 다녀온 강성*씨는 빠르게 요리를 하고 상을 차렸다. 나보고도 수저 놓고 밥 좀 퍼달라고 했다. 나는 시키는 대로 잘했다. 사진만 찍으면 되는데 강썬님이 말했다. “엄마, 사진 꼭 찍어야겠어?” 나는 강썬님 전용 독심술 수련자. 찍지 말라는 오더였다. 먹을 때 마음 상하는 사람이 생기면 안 되니까 밥상 전체 샷을 찍지 않았다.
오늘 메인요리는 새우 갈릭 버터구이였다. 강성*씨가 레시피도 알려줬다. 나는 예전에 <소년의 레시피>를 쓰던 때처럼 스마트폰에 녹음했다.
“강성*. 아까 피망이랑 양파 사 가지고 와서 어떻게 했어?”
“그냥 했어. 다지고 볶고 끝! 버터는 마지막에.”
“떡볶이 떡은 왜 넣은 거야?”
“그냥 넣었어. 있으니까. 별것도 아니야.”
“강썬이랑 나랑 완벽하게 먹으니까 어땠어?”
“(웃음) 잘했어.”
녹취를 풀고 보니까 이번에도 레시피 가르쳐준 건 아니네, 뭐.
참! 밥 먹고 나서 강성*씨는 화장실 갔다. 안 나오길래 내가 식탁을 정리하고 그릇을 식기세척기에 집어넣었다. 화장실에서 나온 그는 다시 나를 왕파리 취급했다. 손으로 저리 가라고 하더니 식기세척기에 넣은 그릇을 싹 빼서 다시 강성*씨 기준으로 집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