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규님의 레시피

by 배지영


11월 1일에 국방의 의무를 마친 제규는 3주 동안 여행을 다녀왔다. 학교 복학하려면 100일 정도 남았다. 곰도 사람이 될 수 있는 시간이지만, 업장의 대표님 입장에서는 애매해서 알바로 채용하지 않는다. 제규가 눈 돌린 건 쿠팡이츠 배달 알바. 하루 6만 원씩 벌겠다는 야망을 가지고 나갔다가 벌어온 돈은 7,500원.


“엄마, 이 일 못 할 거 같어. 서울이랑 달라서 배달이 얼마 없어요.”

“놀아. 네 등록금 엄마가 줄 거야.”

“나도 뭐라도 해야지.”

“그럼 글 써.”


지난 9월에도 제규한테 한 말이었다. 그때는 흘려듣더니만 일할 데를 구할 수 없게 되자 확실히 흔들렸다. 중심을 잡고 또 다른 알바 찾으러 다니기 전에 <소년의 레시피> 얘기를 꺼냈다. 2017년에 나온 책은 4년이 지난 지금도 사랑받는 편이다. 3개월에 한 번씩 들어오는 인세를 나는 그대로 제규 청약통장에 넣어주고 있다. 올해는 1,891권.

“알바한다고 생각하고 써 봐.”

“그럴까요? 근데 내가 쓸 수 있을까?”

“쓸 수 있지. 너 저번에 사회복무요원 글쓰기 대회(참가만 해도 휴가 1일)에 낸 글 있잖아. 그거 진짜 잘 썼더라.”


생각해 보겠다고 한 제규는 다시 여행을 떠나려고 짐을 싼 새벽에 잠 안 자고 글을 썼다. 비공식적으로 제안받은 콘텐츠가 있는데, 거기에서 약간 비껴난 글이었다.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 아니고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한 소방서에서 밥한 이야기.


아부지 닮은 제규는 손이 야무지다. 소방서에서 잡일도 많이 하고(잘하는 사람한테 주로 시킴), 불 끄러 따라가서 숯검댕이가 되고, 심폐소생술 시범 보이러 초중학교에도 다니고, 사람 살리는 숭고한 현장에도 있었고, 고독사한 현장에 출동해서 난생처음 시취도 맡았다. 구급대원들을 점점 존경하게 됐다.


밥을 한 건 본부 소방서에서 1년 근무하고 동네 소방서로 옮긴 뒤다. 주간 12명, 야간 10명 정도 근무하는 소방서라 식사 준비하는 ‘이모님’이 계셨다. 이모님이 출근 안 하신 날, 강제규는 젊은 반장님한테 자기가 밥을 하겠다고 했다(소방서는 보고가 생명, 반장님은 팀장님한테 보고한 뒤에 허락 받음).


주간 야간 합쳐서 20명 넘는 구급대원들이 쓸 수 있는 식비는 5만 원 선. 제규는 영양도 생각하면서 양도 많은 음식을 해야 했다. 밥 먹다가 자주 출동하니까 간편하게 먹을 수도 있어야 했다.


지금까지 제규가 스마트폰으로 나한테 써서 보낸 글은 원고지 65매 정도. 메뉴는 마파두부, 보쌈, 비빔국수, 육회비빔밥, 돼지갈비, 돈가스, 놀래미회. 어제 새벽에 찬찬히 읽다가 울컥했다. 내가 모르는 흡연하는 제규가 나온다. 밥 먹다가 출동하고 돌아와서 컵라면을 먹으려는 구급대원들에게 따뜻한 고기를 썰어주고 국을 데워주는 제규. 이모님 안 나오는 날에 제규가 요리하니까 ‘특식 먹는 날’이라고 좋아하는 소방대원들의 칭찬에 도망가는 제규.


글에 나오는 구급대원 반장님들(소방사,교,장까지 계급을 통틀어서 반장. 소방위 이상부터 주임)도 개성 있다. 근무시간에 유니폼 입고 커다란 케이지에 유기견을 잡아올 때랑 쉬는 날 나시 입고 커다란 아이스박스에 놀래미를 잡아와서 제규한테 회 뜨라고 하면서 무용담을 늘어놓는 모습이 완전 달랐다.


다음 글이 궁금하다. 제규는 글 쓰는 거 생각보다 어렵다고 하지만 독자로서 나는 재촉과 칭찬을 동시에 하고 있다. 완결을 보고 싶다.


#소년의레시피

#사회복무요원의레시피

#완결을보고싶다

#제규가저녁마다보내주는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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